〈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 데이비드 와일 지음, 송연수 옮김, 황소자리 펴냄
지진으로 열차가 연착되는 걸 기찻길 노동자만 몰랐다.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2명이 숨졌다. 2016년 경주 지진 때 KTX 김천구미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숨진 이들은 코레일 외주업체 소속이었다. 코레일 관리자는 열차 연착 사실을 외주업체 공구장(외주업체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과 작업반장들을 불러 모아 전했다지만, 그날 작업할 노동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들은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코레일 관리자가 동행하지 않은 한 팀의 작업반장이 관리자와 통화한 뒤 팀원들과 일을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철도 관제와 소통할 무전기가 없었고, 작업반장이 아닌 두 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긴박하고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 분산된 고용구조가 어떻게 ‘조율 실패’를 초래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의 빈번한 산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노동정책 구상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이 쓴 〈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를 읽고 이것이 한국만의 일이 아님을 알았다. 저자는 한때 대규모 인원을 직접 고용하던 대기업이 고용을 털어버리면서 오늘날 일터가 바위틈처럼 갈라진 ‘균열 일터’로 변했으며, 그 결과 불평등이 확대되고 노동자들의 인권이 침해될 뿐 아니라 사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미국 사례도 풍부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대기업이 단지 ‘탐욕스러워서’라고 단정하는 대신 언제부터, 왜, 어떤 사적 계산법에 따라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추적하고, 대기업 대규모 고용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공정책이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점이다. 현실에 발 디딘 대안을 모색하고 균열 고용을 결정하는 ‘기업의 이해관계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는 접근은 우리 노동 현실에도 울림이 크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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