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양파라도 썰어볼까
다마무라 도요 지음, 권남희 옮김, 이마 펴냄

“요리는 ‘주어진 자료를 어떻게 조합할까’ 하는 일종의 정보처리 퍼즐이다.”

요리는 취미나 기호가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 느긋하지만 원칙에 충실한 저자만의 독특한 요리론과 함께 일상 속에서 꾸준히 써먹을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레시피를 소개한다.
일식·중식·양식을 넘나드는 건강하고 기본에 충실한 요리들을 마치 함께 요리를 하듯 풀어간다. 이 책의 독자는 요리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먹을 요리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 아마추어들이다.
어떤 규칙이나 남의 말에 연연해하지 말고 일단 한번 요리를 시작해볼 것을 권한다. 초심자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칼이나 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요리부터 프랑스 코스 요리까지 다룬다. 최소한의 식재료와 향신료 정보를 알려주며 이를 이용한 다양한 팁도 제공한다.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말’이 차별의 현실과 만날 때 어떤 폭발력을 갖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 동성애에 반대하는 ‘의견’ 정도는 제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던 저자가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닫고 성찰하는 과정이 진솔하게 담겼다. 그는 ‘토론’을 빌미로 노골적인 혐오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만나고, 당당하기만 하던 인권운동가가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혐오가 단순히 표현을 넘어 공격과 공포, 그리고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을 목도했다.
책은 혐오 표현이 무엇인지 개념화하고 이것이 왜 문제인지 분석한다. 실제 사례로 든 한국의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보면 우리 사회가 과연 ‘공존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동시에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에카 쿠르니아완 지음, 박소현 옮김, 오월의봄 펴냄

“그저 모두가 똑같은 양의 쌀을 얻을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독재자는 32년 만에 물러났다. 1998년의 일이다. 인도네시아는 그날 이후 새로운 에너지로 들끓었다. 가장 큰 변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문화 예술이었다. 검열이 사라진 자리에 이야기가 자랐다.
인도네시아 소설이라니 낯설 만도 하지만(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묻는다. “인도네시아를 아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전혀 낯설지 않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식민지와 ‘위안부’라는 단어를 떼어놓을 수 없듯, 인도네시아도 그랬으니까. 소설은 호러와 무협과 로맨스를 능숙하게 뒤섞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주인공 데위 아유는 그런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의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전쟁은 인생을 신파로 몰아넣고 싶어 하지만 때로 삶은 전쟁보다 강하다.


햇볕 장마당 법치
이종태 지음, 개마고원 펴냄

“장마당에서 법치가 싹트다.”

사회주의 북한에서 주택 시세가 오르내린다. 자생적 민간 자본가(돈주)들이 제조업은 물론 건설업에까지 참여한다. 은행이 없는 북한에서 대출과 송금, 통신판매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의 힘이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시장화 현상을 이전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과 대비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려 노력한 책이다.
특히 개성공단을 소재로 시장과 법제도의 선순환을 서술했다. 국내 보수 세력들이 이적행위로 몰아붙여온 개성공단 사업이 오히려 소유권 강화, 회계, 강제집행권 등 친시장적 제도를 법제화하고 심지어 북한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켰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개성공단 등 경제특구를 매개로 북한의 시장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촉진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시베리아 시간여행
박흥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여운형과 김규식도 이 길을 달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가본 적이 있다. 분명 오후 2시였는데, 기차역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켰다. 모스크바 기준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겪은 셈이다. 책 제목을 보자 그때가 떠올랐다. 실제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타임머신 구실을 한다. 기차를 타고 미래로도 과거로도 달릴 수 있다. 여로에는 역사 속 세상을 움직인 이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미래를 향한 희망도 묻어 있다. 철도 기관사이자 ‘철도 덕후’로 유명한 저자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3개 나라 13개 도시를 지났다. 18박19일 철도 여행기를 읽다 보면 덩달아 마음이 두둥실 뜬다. 100년 전 같은 열차를 탄 망국의 조선인, 사회주의 혁명가, 조선 독립투사의 사연 또한 흥미진진하다.


35년
박시백 지음, 비아북 펴냄

“결론부터 말하면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한, 그리고 치열한 항일 투쟁의 역사다.”

2013년 완간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마지막 권 (20권)의 부제는 ‘망국’이었다. 동학농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쳐 무너진 왕조를 담담히 그려가던 박시백 작가는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열사 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독립투쟁의 길은 추위와 배고픔, 고문과 투옥, 총살과 교수대 그리고 가족의 고난과 곤궁이 예정된 길이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2018년 벽두 박시백 작가가 돌아왔다. 〈조선왕조실록〉이 막을 내린 바로 그 지점부터 다시 시작했다. 1권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2권 ‘3·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3권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을 한 번에 펴냈다. 총 7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책을 통해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경험을 할 것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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