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 벡델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전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발견하며 자신의 ‘참 존재’를 깨닫는다. 그녀는 대학 도서관, 동성애자 모임, 그리고 침대에서 이 문제를 탐구했다.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 고백했다. 따르르르릉, 어머니 전화다. “네 아빠는 게이란다.” “응? 잠깐만요?! 뭐라고요?!” 그리고 넉 달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정원을 가꾸던 아버지는 잡초를 옮기다 트럭에 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직업은 장의사였다. 아무리 유능한 장의사라도 자신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법이다. 벡델은 숨진 아버지를 마주하고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했던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강요가 사실은 아버지 본인의 성 정체성에 대한 반발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벡델은 아버지의 죽음에 무덤덤하면서도 자신의 고백과 아버지의 죽음을 자꾸만 연결 지었다. 모두가 교통사고로 여겼지만, 벡델은 자살이라 믿었다. 죄책감은 그 시절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게 했고, 벡델은 기이한 가족사를 그래픽노블 〈펀 홈:가족 희비극〉으로 기록했다.

〈펀 홈:가족 희비극〉 앨리슨 벡델 지음, 이현 옮김, 움직씨 펴냄

〈펀 홈〉은 벡델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문학의 세례를 내려준 스승이다. 벡델의 아버지는 부업으로 고등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벡델은 대학에서 영문학 수업을 들을 때 오히려 아버지와 더 많이 토론했다. 

그래서인지 〈펀 홈〉은 지적인 영문학 텍스트로 충만하다. 이 책은 제임스 조이스, 카뮈, 피츠제럴드, 오스카 와일드 등 다양한 문학적 맥락과 상징을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 관계와 연결 지어 풀어낸다.

흔히 퀴어(성 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 콘텐츠라면 정체성 혼란과 함께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사랑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펀 홈〉은 모든 것을 전복한다. 자신이 퀴어임을 깨닫는 순간, 오히려 아버지가 퀴어임을 알고 충격을 받는 퀴어라니. 벡델이 드디어 자기 삶의 주도권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아버지에게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아버지가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심지어 정원 일을 도와주고 베이비시터를 하던 이웃 청년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면 자식은 어떤 기분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아버지와 관련된 유년 시절의 기억 따위는 깡그리 지워버리려 할 것이다. 벡델은 오히려 더 맹렬하게 자신과 아버지의 과거를 밝혀나간다.

더 맹렬하게 밝혀낸 아버지의 과거

〈펀 홈〉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그리스 신화의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에 비유해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아버지인 명장 다이달로스는 집을 세우고 가정을 일궜다. 신화와 달리 현실 세계에서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땅속에 묻혔고, 이카로스인 벡델은 〈펀 홈〉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날아올랐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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