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일주일 만에 현장에 투입됐다. 사장까지 여섯 명인 서울 성수동의 작은 공장이었다. 500℃까지 달궈진 아연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에 부으면 지퍼며 버클이며 단추 따위가 쏟아져 나왔다. 1시간에 많으면 5000개씩, 하루 10시간 이상을 꼬박 씨름하며 10년간 일했다.

3년차쯤 되어 일이 손에 익었을 때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응시했다. 꼭 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에 합격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만큼 일했으면 나도 조금은 쉴 자격이 있지 않을까. 2016년 11월, 김동식씨는 서른셋 자신에게 처음으로 휴식을 선물했다. 모아둔 돈이면 1년쯤 쉴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차피 제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이었다. 주위에서는 여행이라도 가라고 조언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디를 가야 할지, 가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서 막막했다. 공장을 그만두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늦잠 자기였다. 퇴사한 첫날, 해가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김씨는 오래, 그리고 마음껏 긴 잠을 잤다. 한 공장에서 10년을 근속한 노동자가 마지막 달에 받은 월급은 180만원이었다.

ⓒ시사IN 윤무영김동식씨(오른쪽)는 1년6개월 동안 단편소설 300편을 써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를 눈여겨본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왼쪽)가 그의 소설집을 기획했다.
“그게, 그때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집에 왔다가 어느 날부턴가 아주 오지 않았다. 1985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씨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2000년 대구로 올라왔다. 바닥에 타일 붙이는 기술을 배우려고 했는데 일이 없어서 기술을 익힐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PC방에 취직했다. 일을 시작한 이래 불경기가 아닌 때는 없었다. 그래도 PC방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취미도 특기도, 해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도 딱히 ‘배운 적’ 없는 남자는 대신 어떤 상황이든 적당히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누구도 그에게 희망이나 장래를 묻지 않았다. 먼저 서울에 터를 잡은 외삼촌이 2006년 김씨를 자신이 일하는 공장으로 불렀다. 학교 밖 청소년이었던 그는 성인이 되기까지 그 어떤 세대로도 호명받지 못했다.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다는 수많은 ‘대책’의 사각지대에 그가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10년간 만든 건 작은 부품만이 아니었다. 김씨는 손으로 단추를 만들며 머릿속으로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짓고, 허물면서 처음으로 욕심 같은 게 생겼다. 포털 사이트에 ‘글 쓰는 법’을 검색했다.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글이라는 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요.” 기승전결, 간단명료, 접속사 최소화. 그대로 썼다. 김씨의 첫 글은 ‘복날은 간다’라는 닉네임으로 2016년 5월13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올라갔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연이어 달리는 댓글이 신기했다. “그때 댓글이 없었으면 안 썼을 건데. 뭐라도 반응이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럼 하나 더 써볼까, 하면서 1년6개월 동안 하다 보니 300편을 썼네요.”

어떤 날은 아침저녁으로 보통은 2~3일 간격으로, 일하면서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쓰고 다시 고쳐 쓰던 단편소설을 올렸다. 김씨의 글을 기다리는 수많은 독자 중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아무튼, 망원동〉을 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가 있었다. “처음에 10편쯤 읽었을 때는 그냥 재밌는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했는데 30편, 50편, 100편….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이게 가능한가? 여러 사람이 닉네임을 공유하면서 쓰는 건가? 외국 사이트에서 번역해서 올리는 건가? 그래서 만나자고 했죠.”

ⓒ시사IN 신선영‘김동식 소설집’에는 노동하는 인간이 부품 취급당하는 사회가 등장한다. 위는 울산의 한 조선소.
궁금증을 참지 못한 김민섭 평론가는 지난해 10월 김동식씨를 격주간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의 ‘김민섭이 만난 젊은 저술가들’의 인터뷰이로 섭외했다. 그와 인터뷰하는 한 시간 남짓, 김민섭 평론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실례와 무례 사이를 오갔다. 김동식씨가 자주 가는 카페가 없다고 했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제 또래의 청년이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써본 경험이 전무하다고 했던 때의 당혹스러움이 이어졌다. 그때 결심했다.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출판 생각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어요.”

이런 작가가 어디 숨어 있었나

그 길로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에게 연락했다. 김 평론가를 통해 김동식씨의 단편 몇 편을 받아 읽게 된 한 소장의 첫 반응은 이랬다. “이런 작가가 어디 숨어 있었습니까?” 이런 단편이 300편이나 있다고, 20편쯤 추려서 책 한 권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하는 김 평론가에게 한 소장은 다시 물었다. “이런 글이 300편이나 있다면서 왜 한 권만 냅니까?” 한 소장은 소설집의 기획과 책임편집을 김 평론가에게 제안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명작가의 책을, 무려 세 권으로 묶어 내는 무모한 일이 그날 시작됐다.

“책을 내려면 얼마를 드려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출판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만난 자리에서 김동식씨는 김민섭 평론가에게 담담하게 물었다. 김 평론가는 또 한 번 당황했다. 그동안 김동식씨에게 출판 제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가 책을 내려면 김씨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럴 돈은 없어서” 거절해왔다. “‘돈 안 듭니다’라고 말씀드리자마자 출판이 급물살을 탔죠(웃음).”

책으로 묶은 글 66편의 절반은 김동식씨가, 절반은 김민섭 평론가가 골랐다. 어느 곳에서도 발표되지 않은 신작 6편도 포함됐다. 원고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1권에, 요괴·외계인·악마가 등장하는 작품은 2권에, 그리고 현실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물은 3권에 묶는 식이다.

완성을 하든 못하든 지금도 사흘에 한 편씩은 꾸준히 원고를 쓰고 있는 김동식씨는 지난 몇 달 사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계속 어리둥절하다. “제 글이 그렇게 분류될 수 있는 건지도 몰랐어요. 저는 그냥 그때그때 ‘재미’만 생각하고 써서. 글의 주제라는 것도 생각하고 쓰는 건 아니라서…. 저는 쓰고 나면 잊어버려요.”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던 김민섭 평론가는 김동식씨의 이런 반응이 되레 놀랍고 재밌다. “소설 읽고 논문 쓰는 게 제 일이었는데. 소설의 본령이라는 게 뭘까, 동식씨가 재미라고 했잖아요. 그거거든요. 오늘에 와서 문학이 가장 많이 잃어버린 부분이기도 하고. 근데 인간 내면을 탐구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글이 계속 나온다는 게 연구자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는 거죠.”

지난 12월27일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가 ‘김동식 소설집’ 1~3권으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임프린트 ‘요다’를 통해 동시 출간됐다. 1쇄는 각 2000부씩 총 6000부를 찍었고 일주일 만에 3쇄를 찍었다. 소설의 재미는 판매량으로 일단 증명됐다.

김민섭 평론가는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글을 쓰면서 먹고살 수 있는 주요 방법이 등단이잖아요. 소수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서 자격을 부여받아야 ‘작가’라는 이름을 얻고. 그게 잘못된 방법이라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고 그 콘텐츠가 사랑을 받는다면 그걸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일단은 전통적인 방식의 출판으로 ‘증명’해야 했고요.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단편보다 좀 긴 분량의 글도 밀도가 떨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동식씨가 내놓을 장편이 정말 궁금하고…. 그보다도 제가 영상 쪽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판권을 살 거 같아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김동식씨의 소설집을 한 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서 1권인 〈회색 인간〉을 한 번 더 읽고, 나머지를 ‘아껴’ 읽은 후 페이스북에 이런 감상문을 남겼다. “짧은 소설이니 복잡한 구조도 없고, 결말을 오랫동안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이게 뭐지 하는 순간에 뒤통수를 친다. 책을 읽다 보면 8분마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셈이 된다.”

그런 이야기가 무려 66편이다. 그리고 이 호들갑은 직접 책을 펴들고 확인해보면 ‘과연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독자의 멱살을 잡아채 한순간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끌고 가는 서사에는 격식도 문법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소설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글 쓰고 돈 벌어 글 쓰는 공간도 나아지길”

김동식표 소설의 반전은 대단한 트릭이나 정교한 구조에 있지 않다. 인간에 대해서, 노동에 대해서, 한국 사회를,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극단에 몰린 사람들이지만 결국 악착같이 희망을 노래하고 짐승 대신 인간이기를 선택한다.

김동식 소설집 1권 〈회색 인간〉에 실린 단편 ‘돈독 오른 예언가’ 속의 사내는 한국을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공짜로 일하십니까? 자신의 능력을 무료로 제공합니까? (중략)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착취당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래도 된다고 수긍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가진 능력에 맞는 당연한 대가를 받길 바랍니다.” 이 문장은 어쩌면 김동식씨가 스스로에게 건넨 조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김민섭 평론가는 새해 목표가 하나 생겼다. 김동식씨에게 책을 보내기 위해 집 주소를 받고 나서 생긴 목표다. ‘반지층’이라고 적힌 주소의 마지막을 더듬으며, 그전에는 어디에 살았느냐고 물었다. 예상한 대로 옥탑방이었다. “그래서 저는 동식씨가 다음엔 2층 전세로 갔으면 좋겠어요. 계속 글을 쓰고, 그 글로 돈을 벌어서 글 쓰는 공간도 나아지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도록 제가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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