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전국 단위 종합 일간지는 연말이면 의례히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의 말에 따르면, 2017년 출판계는 어느 해보다도 페미니즘 열풍이 거셌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은 해마다 평균 30종 정도 출간됐으나 올해는 78종이나 나왔다.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2.1배 높았다.” 그러나 내가 살펴본 여러 신문(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 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에서는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 2017)가 몇 군데에서 선정되었을 뿐, 여성주의 강화 학습에 필요한 대작은 간과되었다. 특히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아르테, 2017)는 하필이면 12월 초에 발행되는 바람에, ‘올해의 책’ 물망에 아예 오르지 못했다. 2018년 ‘올해의 책’은, 2017년 12월에 출간된 이 책을 심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지영 그림

미국에서 페미니즘이 가장 크게 영향력을 확대한 때는 1970년대 초반이었다. 1972년 의회는 남녀평등 헌법수정안을 승인했고, 1973년에 미국 대법원은 낙태를 합법화했다. 여성해방이 막 승리를 움켜쥐려는 순간, 페미니즘을 질식시키려는 거대한 ‘백래시(backlash:반발·반동)’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미디어와 우파가 합작한 ‘페미니즘 죽이기’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보여준다.

1980년대 페미니즘 백래시의 총대를 멘 것은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타임〉 같은 주류 언론이었다. 이들은 근거가 없는 통계와 검증되지 않은 심리학을 빌려와 페미니즘을 무력하게 만들 여러 가지 인식 틀(frame)을 유포했다. 먼저 이들은 여자가 많이 배우거나 혼기(20대)를 놓치면 영영 결혼과 멀어진다는 괴담을 상식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직장 여성은 자궁내막증과 스트레스 등으로 불임이 될 확률이 높다는 위협이 덧붙여졌다. 상식이 된 괴담은 줄줄이 이어진다. 여성해방은 여성을 까칠한 독신녀로 만들어 우울증을 앓게 한다, 여성운동은 멀쩡한 주부를 가난한 이혼녀로 만든다,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는 범죄자가 된다….

“여성에게 고통의 주범은 부실한 결혼”

반(反)페미니스트 진영이 퍼뜨린 허구는, 미디어와 학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많은 독신·직장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 중매회사의 전화번호를 누르게 하거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1980년대의 인구조사는 대졸 여성과 30대 여성의 결혼 가능성이 반페미니스트 진영이 퍼뜨린 수치보다 최소 3배에서 최대 23배나 더 높았다. 또 성공하기로 결심한 여성에게 자궁내막증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주장은, 직장 여성의 유산율이 가장 낮으며 35세 이상 여성들이 그보다 더 어린 여성에 비해 사산이나 조산 혹은 아픈 아기를 낳을 가능성이 전혀 높지 않다는 검증된 통계에 무너졌다. 직장을 가진 독신 여성은 기혼 여성보다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으며, 이혼 여성은 이혼 직후에 가난을 겪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부유하게 된다. 어린이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폭력 가정에서보다 훨씬 안전하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나 사교성과 독립성이 훨씬 뛰어나다.

여성의 건강에 대한 20년치 연방 데이터를 검토한 사회연구소와 건강통계국의 1985년 연구 보고서는 반페미니스트들의 괴담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우리가 검토했던 세 가지 요인(고용·결혼·자녀) 중에서 여성의 건강과 관련 있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일관된 요인은 단연 고용이다.” 여성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기는 주범은 일이 아니라 부실한 결혼이었다. 1987년에 나온 또 다른 연구도 이런 결론을 뒷받침한다. “여성 우울증에는 두 가지 큰 원인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었다.”

페미니즘 백래시가 한창일 때, 주류 언론은 태연하게도 독신 남성의 자유롭고 호사스러운 생활양식을 예찬했다. 〈뉴욕타임스〉는 잘 꾸며진 독신자용 아파트 쪽마루에 전기기타를 뉘어놓고,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꼬나문 채 독서(그때는 아직 인터넷이 없었다)에 열중한 남자들의 삶을 ‘성숙한 결정’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배우자를 찾는 독신 남성의 수가 독신 여성보다 많으며, 독신 여성보다 독신 남성이 신경증에 걸리거나 자살할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 이혼으로 당장 생활의 질이 떨어지고 수명이 단축되는 것도 남자다. 반페미니즘 진영은 “싱글 남성들의 많은 두려움을 싱글 여성들에게 떠넘겼다”라고 말했다.

〈백래시〉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아르테 펴냄
‘독신녀에게는 결혼을 채근하고, 기혼 직장 여성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페미니즘 백래시의 핵심이다. 이 핵심은 남성성의 확립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남성성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있지만, 절대 버리기 어려운 것이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호황기에는 여성주의에 우호적이었던 남성이 불황기에는 적대자로 뒤돌아선다. 여성에게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결책은 더 이상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지 않다.

“1980년대를 거치며 중간 계층이 줄어들고 심한 양극화가 나타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중간계급 가족이 소득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맞벌이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남성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중간계급 남성들은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곤경에서 구해준 사람은 자신이 부양해야 한다고 믿었던 아내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백래시가 기승을 떨친 1980년대는 미국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심은 도널드 레이건의 재임 기간(1980~1989)과 정확히 일치한다. 부와 권력을 쥔 남성들은 자신의 탐욕을 은폐하기 위해 중산층과 빈곤층 남성에게 ‘여성’이라는 희생양을 지목했다. 이때 주류 신문과 잡지는 자신들의 주요 구독층인 남성 고객에게 부응하고자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백래시에 부역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기독교계는 왜 페미니즘 때리기에 나섰을까? “빅토리아 시대의 성직자들처럼 뉴라이트 성직자들은 거의 여성으로 구성된 성도들에 의지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 성도들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점점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불만을 느낀 목사들은 최소한 이런 여성들의 입이라도 막으려 했다.” 지은이는 “반(反)페미니즘적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라면서, 여성해방을 자기만족적인 쇼핑으로 치환하려는 소비 자본주의의 술책에 여성해방을 팔아넘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페미니즘 백래시가 조만간 한국에도 상륙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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