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30년 전 기록된 여성의 현재

밴쿠버·김상현 (자유기고가)

〈시녀 이야기〉
The Handmaid’s Tale
2017년 북미 지역 온·오프라인 서점가는 캐나다 작가들이 지배했다. 아마존 집계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가, 시는 루피 카우르의 〈해와 그 꽃들(The Sun and Her Flowers)〉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 모두 캐나다 출신이다. 애트우드는 지난 몇 년 동안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번 거론되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는 “정작 상을 받았어야 할 사람은 애트우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루피 카우르는 소셜 미디어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으로 시를 발표해 유명해진 이른바 ‘인스타포이트(인스타그램+시인)’ 그룹의 선두 주자다. 국내에도 〈밀크 앤 허니-여자가 살지 못하는 곳에선 아무도 살지 못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카우르의 데뷔 시집은 출간된 지 2년이 지났다. 출간 이후 지금까지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앤드메일〉이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픽션 부문 10위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1985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2017년 5월 동명의 10부작 드라마로 미국에서 방영되면서 출간된 지 30년이 넘은 원작도 서점가를 휩쓸었다. 미국의 온라인 영화·드라마 서비스 중 하나인 훌루(Hulu)가 기획 제작한 드라마 〈시녀 이야기〉는 높은 완성도로 에미상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골든글로브상에서도 최우수 드라마·여우주연·여우조연 부문 후보에 올랐다. 30년이 넘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은 시대의 비상한 상황, 특히 전체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미국의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 오바마 시절 시행된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책들을 거의 대부분 폐기하거나 개악한 트럼프 행정부의 폭주는, 출판계의 다종다양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의 기획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 사회규범과 윤리 기준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거나 거꾸로 물구나무 세웠다. 특히 여성을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폄하하는 트럼프의 시각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논란거리였다. 2005년 당시 방송 진행자 빌리 부시와 주고받은 그의 성추행 발언은, 30여 년 전 애트우드가 상상했던 묵시록적 미래 사회의 양상과 놀라울 정도로 근사하게 겹친다.

〈시녀 이야기〉는 스스로를 ‘야곱의 자식’이라 부르는 근본주의 기독교 집단이 미국의 대통령과 대다수 국회의원을 살해하고 수립한 ‘길리아드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그린다. 쿠데타로 정권을 접수한 기독교 재건주의자 그룹은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미국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온갖 해괴하고 급진적인 명령과 정책을 발동한다. 재빨리 모든 종교를 억압해 자신들의 교리에 맞게 통합하고, 사회조직을 구약성서에 기초한 군사적 계급 모델에 맞춰 재편한다. 여성의 권리를 박탈해 성적 노리개 정도로 전락시키는 한편, 전 세계적 불임 현상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얼마 남지 않은 가임 여성들을 ‘시녀’로 강제 차출해 길리아드 정권의 간부들 집에 배치한다. 일종의 ‘씨받이’인 셈이다. 시녀들은 독서도 금지당한다. 동성애 행위를 하다 발각되면 ‘성 역할에 대한 배신(Gender Treachery)’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진다.

ⓒEPA마거릿 애트우드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다.
주인공 오프레드(본명은 준 오스본이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개명되었다)는 길리아드 정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실상을 묘사한다. 이들은 주로 나이와 가임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사회 계급으로 분류되고, 옷 색깔도 청색·적색·녹색·줄무늬·백색으로 나뉜다. 지배 계급의 부인들은 청색, 시녀들은 적색, 요리와 집안 시중을 드는 이들은 녹색, 하층 계급 여성들은 줄무늬 옷을 입도록 되어 있다. 어린 소녀들은 흰색 옷을 입는다. 이밖에 비밀경찰을 지칭하는 ‘눈(Eyes)’, 나라 밖으로 도망치려는 이들을 잡는 ‘사냥꾼(Hunters)’, 그리고 지배계급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비밀 유곽의 ‘요부(Jezebel)’도 등장한다.

오프레드는 이미 결혼을 해 딸까지 있지만 ‘시녀’로 분류되어 길리아드 공화국의 사령관인 프레드 워터포드와 그 아내인 서리나 조이의 집에 배치된다. 자신의 본명과 가족을 분명히 기억하고 그리워하지만 엄격한 규칙과 감시하에서 침묵하고 복종하며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기를 갈망한다. 소설은 사령관과 오프레드의 관계, 사령관을 통해 드러나는 길리아드 공화국의 모순된 실상, 사령관 부인의 개입으로 만나는 운전기사 닉과의 내밀한 관계, 그리고 공화국을 무너뜨리려는 저항세력의 활동 등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1939년생인 애트우드는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제뿐 아니라 실험하는 장르도 다양하다. 1843년에 벌어진 캐나다의 유명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삼은 〈알리아스 그레이스〉도 같은 이름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국내에도 넷플리스에서 ‘그레이스’라는 제목으로 방영 중이다). 또 그는 좀비를 내세운 게임에 필자 겸 오디오판 내레이터로 출연하기도 했다. ‘매드 애덤 3부작’으로 불리는 소설들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비롯된 생물학적 대재난의 미래상을 다루기도 한다. 애트우드는 이렇게 비상한 시대 상황을 다른 누구보다 멀리 내다보고 뛰어난 작품으로 구현한다. 북미 지역에서 요즘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또 어떤 화제작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중국

인공지능 불씨를 나누다

베이징·양광모 통신원

〈지능혁명〉
智能革命
2017년 중국 최대 온라인 서점 ‘당당왕(當當網)’의 경제·경영 분야에 〈지능혁명〉이 가장 앞줄을 차지했다(국내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지능혁명〉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저자는 리옌훙이다. 그는 중국 최대 포털인 ‘바이두’의 설립자이자 회장이다. 중국 국민은 스마트폰을 켜고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바이두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젊은 나이에 창업에 성공해 바이두를 다국적기업으로 발돋움시켰다. 토종 IT 신화를 일구며 그는 중국인의 자랑이자 자존심으로 통한다.

리옌훙은 책에서 미래를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인공지능의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인터넷이 발전하고 데이터의 축적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진화해나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인공지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 혁신의 핵심은 데이터와 지식, 사용자의 체험이 유기적 순환체계를 이루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데이터를 구축해나가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대로 이젠 기계가 단순히 데이터만을 처리하지 않는다. 기계는 데이터 속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알고리즘 체계로 인식해 다양하게 누적해가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뇌처럼 신경망을 구축해 컴퓨팅 작업을 한다.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인간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양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정보를 축적하고 처리한다. 이는 음성인식, 자율주행 자동차, 번역, 길거리 주소 식별과 같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활용되고 있다. 알파고가 커제와 이세돌을 연이어 격파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리옌훙은 중국 인공지능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한다. 그 중심에는 그가 설립한 바이두가 있다. 검색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바이두의 특성상 엄청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사용자가 검색창에 입력한 정보를 통해 시시각각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검색 엔진을 통해 정보를 얻는 행위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즉, 사용자들의 검색은 바이두의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는 효과를 낸다. 검색 엔진이 찾은 결과는 사용자 평가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바이두 검색 엔진은 지금도 끊임없이 인류의 자연언어를 학습한다. 그 결과 바이두는 은폐된 허위 정보를 식별하고, 광고와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구분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사용자 7억명과 모바일 사용자 12억명이 클릭을 통해 쉴 새 없이 바이두의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고 있다.

ⓒGoogle 갈무리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의 설립자이자 회장 리옌훙.

중국의 국가정책도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10월 열린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식 업무 보고에서 인터넷·빅데이터와 함께 인공지능을 실물경제와 융합해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중국 과학기술부는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을 플랫폼 기업으로 삼는 국가 차원의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 및 중대 IT 프로젝트’ 추진을 발표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상하이와 우한 등도 2020년까지 인공지능 산업 규모를 16조원과 8조원 이상으로 각각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부에 이어 지역까지 인공지능 불씨가 옮아 붙은 모양새다.

리옌훙은 책에서 바이두의 목표가 인공지능의 불씨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 생활을 개선하고 국력이 강해지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을 위대한 스마트 문명국가로 이끄는 데 바이두가 핵심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애국심까지 살짝 건드리며 이 책은 당분간 베스트셀러 앞자리를 내주지 않으리라 보인다.

독일

‘돼지가 걷고 있는’ 브뤼셀의 양면성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수도〉
Die Hauptstadt
2017년은 유럽연합의 기초를 다진 ‘로마조약(유럽경제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해 1957년 3월25일 프랑스·룩셈부르크· 이탈리아·서독·벨기에·네덜란드 등 6개국이 서명)’ 6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하지만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유럽연합의 회원국 안에서는 반(反)유럽연합, 또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외치는 극우 정당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소설가 로베르트 메나세는 소설 〈수도(Die Hauptstadt)〉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다룬다. 소설은 유럽연합의 수도 격인 브뤼셀을 무대로 하고 있다. 브뤼셀은 유럽연합의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자리한 곳이다. 유럽인들에게 ‘브뤼셀의 관료주의’는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정치체제의 무능력을 상징한다. 메나세의 소설 〈수도〉도 바로 브뤼셀의 관료주의를 정면으로 다룬다.

‘저기 돼지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다.’ 소설은 브뤼셀 중심부를 걷고 있는 돼지 한 마리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아우슈비츠의 마지막 생존자는 창문을 통해 브뤼셀 거리를 걷는 이 돼지를 바라본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매우 상징적인, 나아가 농도 짙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다. 소설 속에서 돼지는 인물과 사건을 연결하는 상징이다. 메나세는 독일 국영 라디오 방송 〈도이칠란트 풍크〉와 한 인터뷰에서 “돼지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돼지는 과거 유대인을 모욕할 때 사용되었으며, 수용소를 의미하거나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동시에 돼지는 행운과 행복을 상징하며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닮은 동물이기도 하다.

‘돼지가 걷고 있는’ 브뤼셀이라는 도시도 양면성을 띤다. 브뤼셀은 유럽연합 관료주의의 온상이자 수많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뻔뻔한 도시로 변질되었다. 작가는 브뤼셀이 ‘더러운 돼지’로 들끓는 도시이지만 동시에 ‘복돼지들’로 가득한 도시라는 점을 항변한다.

ⓒEPA오스트리아 소설가 로베르트 메나세는 소설 〈수도〉를 통해 유럽연합의 의미를 역설했다.
소설 속에는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핵심 사건은 유럽연합 60주년을 기념해 집행위원회가 기획한 캠페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집행위원회의 문화부는 캠페인을 통해 완고하고 무능력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자 한다. 문화부 직원은 아우슈비츠와 그곳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를 캠페인에 등장시키려 한다. 집행위원회 측은 캠페인을 통해 유럽연합에 남아 있는 민족국가적 욕구들을 길들이는 데 효과적이리라 보았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한다.

메나세는 오랫동안 민족국가 이후 유럽연합이라는 체제가 갖는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유럽연합을 긍정하는 시각에서 글을 써온 작가이다. 그는 유럽연합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브뤼셀에 거주하며 소설을 준비해왔다. 〈도이칠란트 풍크〉와 인터뷰하면서 메나세는 “지금 같은 유럽연합의 위기 속에서 유럽연합을 단순히 지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것 또한 어리석다”라고 주장했다. 메나세에게 유럽연합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민족국가 이후 유럽이 이루어낸 현명하고 논리적인 결과다. 그는 유럽연합을 통해 다시 유럽에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메나세의 소설이 아우슈비츠를 유럽연합의 ‘윤리적 수도’로 설정하고 있다고 독일 신문 〈디 타게스차이퉁〉은 지적하기도 했다.

이 소설로 메나세는 2017년 10월 ‘독일출판협회 문학상(Deutscher Buchpreis)’을 수상했다. 문학상 선정위원회는 “소설은 문학적으로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은 스스로를 재인식할 수 있다. 후세대는 이 시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문학상 수상과 함께 〈수도〉는 〈슈피겔〉이 집계하는 2017년 베스트셀러 문학 부문 8위에 올랐다.



프랑스

“소설이 아니라 소외된 사실이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일일명령〉
L’ordre du jour
2017년 11월 발표된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 상은 리옹 출신 작가 에리크 뷔야르의 〈일일명령(L’ordre du jour)〉에 돌아갔다. 1903년 제정된 공쿠르 상은 프랑스의 4대 문학상 중 하나다. 상금은 10유로(약 1만270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상작은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일일명령〉도 프랑스 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이번 공쿠르 상 수상작이 주목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프랑스 아를에 있는 악트쉬드(Actes Sud) 출판사를 불과 6개월 전까지 운영한 사람은 현 문화장관 프랑수아즈 니생이다. 또 9월에 출판된 책들을 기준으로 수상작을 발표한 이전 원칙과 달리, 〈일일명령〉은 4월29일 출판됐다. 가장 이슈가 된 점은 장르의 특이성이다. 에리크 뷔야르는 수상 소감에서 “픽션은 우호적인 ‘복화술’을 필요로 하는 권력의 편에 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일명령〉은 소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뷔야르는 실존 인물, 실제 사건들을 중심으로 역사 속에서 ‘소외된 사실’을 모아 분석하고 살을 붙여 글을 써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수상작인 〈일일명령〉도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일명령〉은 두 가지 실제 사건으로 구성된다. 1933년 2월20일 독일의 주요 기업인들과 히틀러의 만남, 그리고 1938년 3월12일 독일-오스트리아 합병이다. 기업인들의 나치 협력 약속 장면으로 시작해서 히틀러와 오스트리아 총리 슈슈니크의 만남, 유화 정책을 위한 영국 외무장관 핼리팩스와의 대면, 오스트리아 침공을 계획하는 괴링의 명령 등 히틀러와 나치당의 행적을 담았다. 뷔야르는 책의 첫 부분부터 “우리의 일상은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돌보고, 옷을 입히고, 빛을 밝혀주고, 도로에 데려다주며, 잠을 재워준다”라며 일상을 파고든 독일 주요 기업들(BASF, 지멘스, 알리안츠 등)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 다음 그는 “부패란 대기업들의 억제할 수 없는 직무”라며 기업들이 나치당에 경제 원조를 약속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EPA〈일일명령〉을 쓴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2017년 프랑스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독자들은 지금도 숭배되는 ‘경제 권력’의 부패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진다. 철학 교수 마리즈 에멜은 “뷔야르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현했다. 정경유착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의 ‘악’을 분석했다”라고 평가했다. ‘나치’를 소재로 삼은 기존 작품들이 주로 히틀러와 당원들에 초점을 맞춘 반면 뷔야르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굴해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독일-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자살 현상도 작가의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준다. 뷔야르는 〈라누벨 레퓌블리크〉와 한 인터뷰에서 “합병 다음 날 4명이 ‘자살’했다고 신문 부고란에 났는데, ‘동기는 알 수 없음’이라는 문구도 있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라고 소개했다. 이 부고 이후 당시 오스트리아 언론이 더 이상 부고를 게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그의 관심을 끌었다. 뷔야르는 “그들의 고통은 집단적이었다. 그들의 자살은 다른 누군가가 저지른 범죄다”라며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독일 점령하의 평범한 오스트리아인들이 겪는 괴로움을 이야기에 녹였다.

에리크 뷔야르는 이야기를 창작하지 않는다. 주목받지 못했던 과거 사실을 이야기에 담아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픽션도, 역사서도, 에세이도 아닌” 〈일일명령〉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고 있다.

스웨덴

부유하고 희망차게 분열된 도시

스웨덴·고민정 통신원

〈그들은 어머니의 눈물에 젖으리라〉
De kommer att drunkna i sina mödrars tårar
요하네스 아뉴루는 〈그들은 어머니의 눈물에 젖으리라(De kommer att drunkna i sina mödrars tårar〉로 2017년 아우구스트 문학상 소설부문 상을 받았다. 아우구스트 상은 스웨덴출판협회가 수여한다. 스웨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통한다.

소설은 테러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화가로서 실제 테러 협박에 시달린 라르스 빌크스를 연상케 하는 풍자 만평가의 사인회가 예테보리의 한 서점에서 열린다. 서점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의 타깃이 되는데, 자살 테러범 세 명 가운데 한 소녀가 변심을 해 대형 참사를 막는다. 테러범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는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을 담당했다.

테러 사건이 터지고 몇 년 후 테러리스트 소녀의 심리를 분석한 의사가 소설의 화자인 ‘나(요하네스 아뉴루의 분신)’에게 연락한다. 테러리스트 소녀가 그의 저작을 읽었고, 만나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한다. 이슬람교도인 화자는 소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가 쓴 글이 소설에 교차되어 삽입된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폭력에 반감을 가진 화자는 소녀와 거리 두기를 한다. 소녀는 자신이 미래에서 온 난민이며, 미래의 예테보리에서 이슬람교도들은 시민권 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고백한다. 소녀는 또 예테보리의 이민자 게토 지역에서 자랄 때 경험한 즐겁지 못했던 추억도 이야기한다. 화자 역시 같은 이민자 게토 지역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 살고 있는 가족, 친지, 이웃들이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종교적 차이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얼마나 가난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안다. 소녀는 폭력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왔다고 믿지만, 테러리스트라는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어디서부터가 환상이고 진실인지 독자나 화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Google 갈무리요하네스 아뉴루는 이슬람교도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편견을 소설로 그려냈다.
소설은 구성이나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고 곳곳에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 요하네스 아뉴루는 스웨덴에서 이슬람교도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편견을 작품에서 그려냈다. 작가는 2015년 프랑스 파리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후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2017년 초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톡홀름 중심부에서 트럭 돌진 테러가 터졌다. 테러에 대한 공포심은 소설의 주 배경인 예테보리에도 실제로 만연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 높은 콘크리트 벽을 세워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시의원들이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겉으로는 희망차고 관광객과 투자가 증가하는 스웨덴 제2의 도시지만 예테보리는 경제적으로 격차가 크고 소외된 이민자 게토가 있는 ‘분열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트램을 타면 시내 중심에서 20분 내에 가장 극빈층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사고 다발 지역에 갈 수 있고, 또한 20분 내에 가장 부유한 백인들만 모여 사는 지역에도 갈 수 있다.

요하네스 아뉴루는 아버지가 우간다인이고, 어머니는 스웨덴 보로스 출생이다. 2003년 시인으로 데뷔한 그는 시를 마치 힙합처럼 사운드 음악으로 창작해 앨범으로 제작하거나 디제이와 협업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민자 밀집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소년들과의 문학 창작교실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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