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지가 확대되면서 제도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처음 학교 급식에서 시작된 복지 바람은 몇 년 사이에 보육, 기초연금, 아동수당을 불러왔다. 이 복지들은 정부 예산, 즉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이다. 이와 함께 사회보험도 전환의 계기를 맞고 있다. 이전에는 사회보험을 둘러싸고 국민건강보험의 빈약성, 국민연금기금의 정치적 사용 등 부정적 이야기가 많았다면 점차 우리 생활을 지켜주는 안전망으로 여기는 분위기이다. ‘문재인케어’라는 신상품이 등장하고 국민연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보험에 대한 불편한 심정은 남아 있다. 사회보험이 민간보험에 비해 유리한 제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마음이 흔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신뢰의 문제이다. 사회보험의 보장성이 더 강화되기를 바라지만 정말 이 제도가 공평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긴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나라가 관리하는 사회보험에 그대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사회보험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갈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입자 스스로 사회보험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가입자가 사회보험에서 얼마를 내고 받을지를 정하고, 또 운영 과정에서 의사결정권을 지닌다면 미우나 고우나 책임져야 할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면 현재 사회보험에서 가입자의 참여가 봉쇄돼 있는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회보험 운영에서 가입자 몫이 존재한다. 직접 보험료를 내는 당사자임을 감안한 의사결정 구조이다. 예를 들어, 국민건강보험에서 최고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가입자 대표, 의료공급자 대표, 공익위원이 각 8명으로 구성된다(가입자 대표에 사용자 단체 2명 포함). 가입자가 실제 보험료율, 급여 적용 항목의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최고 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20명 중 12명이 가입자 대표이다(사용자 단체 3명). 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도 10명 중 6명이 가입자 대표로 참여한다(사용자 단체 2명).

 

 

ⓒ연합뉴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2월27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과연 시민이 사회보험의 의사결정에 자신의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시민 강의 때, “우리가 내는 건강보험료를 누가 결정할까요?”라고 물으면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가입자 대표가 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고 말해주면 정말 그러냐고 되묻는다. 나아가 ‘암 수술, MRI, 초음파 등 우리가 받은 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도 동일하다’고 설명하면 더욱 놀란다.

왜 가입자들은 사회보험의 의사결정 구조를 모르고 있을까? 일반 시민의 책임은 결코 아니다. 정작 사회보험의 주인임에도 이러한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임은? 우선 제도를 주관하는 정부가 가장 비판받아야 한다. 여러 정부 위원회가 그러하듯이 사회보험의 의사결정 과정도 상당히 형식적이다. 국민연금기금위원회는 두세 달마다 열리는 회의체에 머문다. 심지어 정부가 선임하는 일부 가입자 단체는 실제로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가입자 대표가 사회보험 신뢰 형성에 결정적 역할

사회보험은 우리나라 전체 복지 재정에서 3분의 2를 차지하고 앞으로 비중이 더 높아질 예정이다. 사회보험이 시민의 든든한 벗으로 서야 복지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사회보험의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는 가입자들이 사회보험의 주인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회의 운영을 내실화해야 한다. 가입자 위원의 대표성도 점검해 부적절한 선임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위원을 교체해야 한다.

가입자 단체 역시 획기적으로 활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입자의 의견 수렴이 활발할수록 사회보험 개혁에 가입자의 뜻이 온전히 반영될 수 있다. 당연히 사회보험에 대한 가입자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2018년에는 조직의 일상 활동에 일반 가입자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의사 대변 체계를 마련하기 바란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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