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표절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사과받지 못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지은이의 책을 표절한 기자가 표절임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표절이 아니라고 우길 수 없는 수준이었고 그 양도 꽤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물’을 ‘매대’에서 빼는 건 상식이다. 작가가 굳이 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인터넷 언론사는 미안하다면서도 피해자가 “그러니 이제 그 글을 내려달라”고 하자 표절한 문장만 오려내고 전체 글은 못 내리겠다고 버티면서 이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가진 거라고는 책 한 권 달랑 있는 무명의 젊은 작가는 표절당한 자체도 충분히 힘든 일인데 언론사의 이 이해할 수 없는 억지와 무시에 절망을 품게 된다. ‘식당에서 수프를 먹다가 바퀴벌레가 나오면 바퀴벌레만 건져내면 되는 거냐. 수프 자체를 버리고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명쾌한 비유를 들어가며 항의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언론사잖아”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조정래나 황석영의 글이 표절됐어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흉보다가 닮는다’는 말이 책 읽는 내내 떠올랐다. 그 언론사는 이른바 진보 진영의 잘나가는 언론사로서, 최선을 다했다며 세월호 유가족을 방치하고 무시하며 나아가 능욕한 전 정권을 누구보다도 비판해왔다. 지은이도 당신들이 과연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었다. 물론 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진정 원하는 사과가 어떤 것인지 귀담아 들어볼 생각 없이 힘의 논리만 믿고 “사과했지 않느냐. 대체 뭘 더 하란 얘기나?” 하며 피해자를 무시하는 일본 아베 정권과도 닮았다고도 성토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 거리로 나선 이의 정체성이 마침 작가이다 보니, 그의 투쟁은 주변에 각기 다른 이유와 다른 무게로 찬바람을 맞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고, 그의 투쟁 기록은 약자들의 항변을 보듬는 르포 취재가 되기도 했다. 아직 젊은 작가는 프레임 바깥에 서서 세상을 보는 근육도 함께 키우게 된다. 분명 피해자의 기록임에도 분노라는 단어보다는 부끄러움과 깨달음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한다. 억울하고 서러운 와중에도 유머의 힘을 잃지 않았던 건 그만큼 ‘나보다 더 힘든 이들’ 옆에서 겸손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 사건 일지를 넘어 강자에게 자존심을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북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어려운 ‘제대로 사과하기’에 대한 매뉴얼북이 되기도 한다.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젊은 세대에겐 동병상련에서 오는 통쾌함을, ‘뭘 그런 걸 가지고…’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에겐 뜨끔해져 얼굴 벌게지는 경험을 하게 할 책이다.
기자명 오지혜 (배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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