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김슬옹 박사가 짓고 박이정출판사에서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이다. 우리 문화와 문명의 코드가 그대로 숨어 있는 ‘훈민정음해례본’의 요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세세하게 번역하고 편집해놓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쓰여온 우리 말법을 바탕으로 정음을 만들어 그 쓰임새와 이치까지 낱낱이 설명해놓은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나는 소리꾼으로서 발성의 대체를 알기 위해 오랜 기간 훈민정음 해례본을 벽에 붙여두고 깨달을 때까지 의문을 품고 연구해왔다. 판소리 발성은 우리 언어의 이치에 따라야만 성음을 올바르게 구사할 수 있다. 그래서 난 훈민정음 해례본을 완전하게 알고자 온 힘을 다해 읽고 또 읽었다. 또 해례본을 강독하기 위해서 〈주역〉이나 음양오행 사상이나 〈천부경〉과 〈황제내경〉 같은 철학서와 의학서들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 이러한 인문·과학·철학적 지식이 기반되어야만 해례본의 원리를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글이 매우 편리하고 과학적이라고 찬탄하지만, 정작 그 이치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천지인 삼재라든가 혹은 원방각 이론 같은 것이 지닌 원리를 우리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만 인식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그러한 관념적인 것을 천지 음양오행 철학에 근거해 물리적으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

김슬옹 박사는 이러한 훈민정음의 이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을 펴냈다고 말한다.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뜻으로 정음을 만들었으나, 창제 원리가 매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김슬옹 지음
(주)박이정 펴냄
우 철학적이라 해례본을 읽고 알기에는 사실 어려움이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해석한 책이 여러 권 있지만 그중에서 김슬옹 박사의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자세하게 풀어냈다. 이 책은 또 찬찬히 정독하면서 내포한 물리적 흐름을 정밀하게 음미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천문학적이며 자연적인지 더듬어가는 묘미가 굉장할 것이다. 집현전 학사들과 세종이 고심했던 철학적 원리가 문장마다 알알이 박혀 있다.

인류 모든 민족의 음악은 반드시 그 나라 말법에 따라 형성되기 마련이다. 말법의 음운에 따라 노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말법의 음운은 바로 음악의 호흡과 발성과 장단과 직결된다. 말이란 그 민족의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경·감정과 환경적인 정서를 말로 형상화한 일종의 약속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언어적 구조와 원리를 알면 우리 문화와 문명의 코드를 극명하게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배일동 (명창)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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