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표지보다는 띠지가, 제목보다는 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대개 컨텍스트가 텍스트를 압도하기 마련이다. 해직 5년 만에 복귀해서 MBC 파업의 상징이 되었고, 그 와중에 얻은 복막암과의 또 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용마 기자가 열 살 된 쌍둥이 아들을 위해 쓴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더구나 내 처지에서는, 만난 지 30년이 되어가는 동문수학한 후배로서, 그리고 동료 정치학자로서, 또 그 장난꾸러기 쌍둥이의 머리를 양손으로 쓰다듬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을 있는 그대로 읽기가 애초에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것은 오늘을 사는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개인사(個人史)나 자서전으로서가 아니라 보편성의 눈을 가지고 읽기를 권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 책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에 취직했으며 IMF 시대(외환위기)를 겪었던, 이제는 중년을 지나는 어느 세대의 구술사(口述史)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386 세대’의 회고담이나 후일담이 예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인 스스로도 ‘386 세대’인 저자가 취하는 비판적인 시각은 흥미롭고도 치명적이다.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또한 현재사(contemporary history)에 대한 생생한 날것의 기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저자가 현직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했던 시기여서 더 그렇겠지만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한 기자로서의 분석과 해부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밀하다.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아닌 노무현 정권의 뼈저린 실패가 후반부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는 저자가 말하는 “바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림이 구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보편성은 한국 정치의 문제점에 대한 제도론적 진단이다. 언론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저자가 출입했던 검찰과 경제부처, 외교·통상부처 등을 구성하는 엘리트 관료들의 문제는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지닌 보편성은 오늘의 의미를 미래와 관련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오늘은 우리의 아들딸이 살아갈 미래로 이어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사실, 알고 보면 누구나 정해진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으며 어떤 세상을 남기고 갈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의 끄트머리가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부모가 어떤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라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미래로 띄우는 편지이자 아빠의 숙제라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이 바로, 우리 모두 그 편지를 쓰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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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게 많은’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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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축하하는 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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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지난해 이맘때 감기 몸살을 크게 앓았다.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고 점점 숨을 쉬기 힘들어져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한쪽 가슴이 뿌옇다. 이물질이 차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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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이라는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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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문학평론가·문학편집자)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장기이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일을 의학적·심리적·철학적·문학적으로 재구성한 한 편의 훌륭한 서사시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디테일은 장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