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미국 연방대법원 비사를 다룬 밥 우드워드의 〈The Brethren: Inside the Supreme Court〉(번역서 〈지혜의 아홉 기둥〉) 같은 명저가 나왔다. 권석천의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밥 우드워드는 워런 버거 대법원장 시대를, 권석천은 이용훈 대법원장 시대(세칭 ‘독수리 오형제 대법관 시대’)를 기록했다. 이용훈 대법원장과의 인터뷰만도 2~3시간씩 한 녹취록 16개가 나왔고 당시 대법관들, ‘이용훈 코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전·현직 판사들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최고의 사관에 의해 한 시대의 정사가 나온 셈이다.

이 책만은 평소처럼 거리를 두며 읽을 도리가 없었다. 읽는 내내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무거워졌다 반복해서 몇 번씩 덮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끄트머리 어딘가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를 시대의 기록이자, 현재진행형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 시기까지 정치·사회적 격변기와 그 충격파가 법원을 흔드는 생생한 과정이 잘 서술되어 있는 책이지만, 나는 오히려 서문에 등장하는 ‘독수리 오형제 대법관’ 중 한 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적 이슈가 대법원에 올라오면 일단 입장부터 정해집디다. 그건 상대편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법관은 오직 법에 따라 판결할 뿐 개별적인 ‘입장’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법원의 ‘입장’ 또는 ‘신화’를 깨는 솔직한 토로이기 때문이다. 법관도 인간이고,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얼마나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심리학과 뇌과학이 훨씬 더 잘 설명한다. 법관이 완벽하게 무색투명하고 중립·객관적이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권석천 지음
창비 펴냄
라는 가정은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이다. 법관은 직책상 주관적 편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법관에게도 ‘입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중요한 것은 입장의 다양성이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구색 맞추기로 한두 명 끼워주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체 의견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정도여야 의미가 있다. 이용훈 코트의 ‘독수리 오형제’는 바로 그 최소한을 충족하였기에 치열한 토론과 새로운 판례, 그리고 많은 소수의견을 남길 수 있었다. 법원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책을 가장 잘 요약하는 한마디는 전수안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인용한 김훈의 글이다. 알피니스트 라인홀트 메스너를 묘사한 문장이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이 시대, 이 책, 그리고 이 책을 쓴 과정 자체까지 이보다 더 잘 요약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자명 문유석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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