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에 처음으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을 접했다. 가장 먼저 펼친 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니면 〈ABC 살인사건〉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그때까지 읽었던 다른 추리소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내가 원하던 추리소설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막상 그 세계를 접하자마자 ‘내가 원했던 게 이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독자를 현혹시키는 풍성한 미스디렉션,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는 무수한 용의자들, 호화로운 배경과 매력적인 탐정, 치정과 탐욕이 얽혀드는 감정의 전투.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크리스티의 작품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그중에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공인된 대표작들을 먼저 독파한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겅중겅중한 독서가 이어졌다.

시모쓰키 아오이의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은 그때의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책이었다. 수십 년 동안 미스터리 애호가이자 평론가로서 단단한 내공을 쌓아온 저자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전 작품을 통틀어 작가로서 무르익어가는 단계적 업그레이드 과정을 추적하며 작가가 즐겨 사용하던 인물과 드라마 유형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저자는 크리스티의 작품을 “현 시대의 따끈따끈한 신작으로서 읽고 평가할 것”이라는 엄격한 기준에 맞춰 한 권씩 읽어나갔고, 그 결과 어디서도 보지 못한 분석이 연달아 등장한다. 일반적인 선입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시모쓰키 아오이 지음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펴냄
견과 달리 크리스티가 작품마다 굉장한 트릭을 만들어내는 종류의 작가가 아니었다는 냉정한 평가도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걸출한 후대 작가들이 수없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전이자 전범으로 읽히는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낸다. 이를테면 “〈ABC 살인사건〉을 좋아하는 독자는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널리, 리 차일드, 잭 컬리를 즐길 수 있다”라는 의견이라든가, 〈밀물을 타고〉를 읽고 난 다음에야 요코미조 세이시가 왜 애거사 크리스티를 흠모했는지 이유를 깨달았다는 평가는 고전이 세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근거를 재차 입증한다(동시에 ‘트릭’과 ‘진범 찾기’만이 추리소설을 읽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도 입증한다). 가끔 일본 출간물에서 감탄하게 되는 지점인 집요한 아카이빙과 성실한 집필이 유독 돋보이는, 그야말로 ‘집대성’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애거사 크리스티 백과사전’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티의 걸작으로 〈커튼〉을 꼽은 게 무척 기뻤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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