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영국에 와서 그것도 오래 살고 있다. 공부를 마치면 곧바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니, 길어야 2년 정도 살게 되리라 생각했다. 취직까지 하여 여기서 산 시간이 이제 10년을 꽉 채워간다. 사람 일이란 참 알 수 없구나 싶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영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영국인들의 속도 쉽사리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말하는 영국이란 어디인가. 그리고 영국인이라면 누구를 말하는가.

한국어로 영국이라고 일반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 잉글랜드(England), 세 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 다른 존재를 지칭한다. 유나이티드 킹덤(정식으로는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라고 하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라는 네 ‘나라(country)’의 정치적 연합체를 말한다. 한편 그레이트 브리튼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및 그 부속 도서들을 뜻하며 북아일랜드는 여기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니 두 명칭은 엄밀히 따지면 혼용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잉글랜드는 유나이티드 킹덤 중 한 ‘나라’에 불과한 것이니, 이 정도 되면 한국어로 ‘영국’이라고 말할 때 정확히 무엇을 일컫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영국은 없다’라는 이 책 첫 번째 장의 다소 도발적인 제목은 이를 지적하는 것이겠다. 한국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영국’은 없다. ‘영국인’도 없다. 위 네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을 서로 명확히 구분 짓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국에서는 저 모두를 그저 ‘영국인’이라고 일컫고, ‘영국’이라는 명칭으로 여왕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이 섬나라를 대략 불러버리는 것이다.
 

〈영국이라는 ______ 나라〉
고정애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이 책은 영국에 대한 매우 꼼꼼한 설명서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인조차도 모를 일들에 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흔히 보는 인상기나 여행 책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나 상태를 밝은 눈으로 알아보고, 그것이 왜 그러한지 부지런히 찾아보거나 때로는 직접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고,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을 다시 과거와 현재 때로는 영국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써냈다.

대개의 한국인들에게 유럽은 관광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을 벗어나기 위하여 출발하되, 잠깐 머물다 가는 곳. 더구나 영국은 그중에서도 여행의 시작 아니면 끝에 잠시 들르는 나라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영국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저 관광지를 가도 영국의 과거가 현재에게 속삭이거나 때로는 호령하는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이 어떤 나라로 보일 것인가. 제목의 빈 칸을 채우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기자명 김세정 (영국 GRM Law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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