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시장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해온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사진)를 12월7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천공항 정규직들은 ‘공개경쟁 없는 비정규직 직접고용 전환은 무임승차’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를 나눠서 보는 게 필요하다. 하나는 중요한 직위는 공개경쟁을 통해 채용해야 공정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에 넓게 퍼진 정의관이다. 좋은 일자리에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어야 하고, 특히 공공부문은 민간부문보다 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누구나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원칙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 원칙은 절대시되어선 안 되지만 무시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원칙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이것은 일반적인 정규직 전환의 경우이고,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직종은 다를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그런데 정규직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또 하나 숨어 있는 게 있는 것 같다. 시험을 통해 들어온 우리는 자격이 있는데 이 사람들(비정규직)은 그 정도의 자격이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다. 그 부분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도대체 그럼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게 뭐냐는 문제인데, 시험을 통해 들어왔다고 하는 게 꼭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자격은 아니다. 너희는 시험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동료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선민의식이다.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에 미달하는지 안 하는지는 별개로 따질 문제다. 그 사람들도 자격이 다 있는데 자기들이 시험을 보고 들어왔다는 것을 통해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경비에 맞는 시험을 만들면 된다는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서 크게 보면 세 가지 목표가 충돌한다. 트릴레마(3중 딜레마)다. 하나는 공개 채용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회적 원칙·룰·가치다. 물론 어떤 시험으로 하느냐는 다른 얘기다. 모든 시험을 정규직 관리자 뽑듯 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을 펴는 건데 그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공개 채용 원칙을 적용하면, 기존 비정규직은 다 자리를 내놓고 너희들도 다 와서 공채 시험에 응하라는 게 되니까 기존 비정규직 자리를 위협해선 안 된다는 원칙과 충돌한다. 세 번째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화한다는 원칙이다. 이 세 가지 원칙 중에서 어떤 것도 절대화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떤 것도 무시되어선 안 된다. 각 사업장이나 직종에 따라 이 세 가지 원칙 중 어떤 게 중시되어야 하는지는 다 다르다.

비정규직 문제는 민간에서 심각하기 때문에, 우선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줄이고 이걸 성과로 삼아 민간에서도 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가 된다. 공공부문은 언제까지 정부가 하라고 하지 않으면 잘 안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원칙 사이의 충돌을 생각하면 언제까지 완성하라는 건 무리라 보이고, 이 정부 임기 내내 계속되어야 한다. 시한을 너무 촉박하게 하거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자체를 너무 절대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규직 반발의 핵심은 직접고용인 것 같다.

‘이 사람들이 직접고용이 많이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불이익은 없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우선 위신이라고 하는 면에서 지금까지 특별한 존재였는데 비슷해진다는 게 기분 나쁠 수도 있고,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면 그들이 들어옴으로써 내가 누리던 특권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 사람들이 조합원이 돼서 노조에 들어와 본인들이 소수파가 되면 힘의 관계가 기울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사IN 이명익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직원 등이 붙인 무기계약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내용의 포스터.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지금의 공기업 임금체계에서 전혀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들어올 경우 정규직들은 ‘쟤네랑 우리는 하는 일이 다른데 다르게 대우받아야 하지 않나’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여기엔 합리성이 있다. 예를 들어 무기계약직인 사람들이 우리도 호봉제를 달라는 게 지금 제일 큰 이슈가 되고 있지 않나. 아마 대개의 경우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 차츰차츰 이쪽(정규직화된) 직무에도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식으로 갈 공산이 크다.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결국 공공부문이랑 민간부문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어떻게 해야 되나?

그게 다음 포인트다. 삼중 딜레마의 해결이 어려운 이유, 특히 공개 채용이라는 원칙과 비정규직에게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유는, 그 배경은 뭔가? 공기업이 좋은 일자리여서 그런 거다. 만약 별로 좋은 일자리가 아니면 정규직도 별로 여기에 목맬 필요가 없고, 공개 채용할 필요도 없다. 해봐야 사람 오지도 않잖나. 사람들이 공개 채용을 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거기에 가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인 거고, 비정규직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비정규직도 거기 계속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인 거다. 공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민간부문보다 생애소득을 고려하면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거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필요가 있겠지만, 임금체계 등등 이런 문제가 생기면 민간부문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대개 공기업의 근로조건은 기본적으로 정부 방침에 의해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독점이니까, 시장 원리보다는 국가정책에 따라 그 기업이 이익이 나느냐 안 나느냐가 결정된다. 예를 들면 한전 같은 경우 전기요금에 의해 결정된다. 공기업은 민간부문보다 항상 독점의 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고, 정부 정책이나 정치적 요인에 의해서 근로조건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게 계속 민간부문보다 높다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공공부문이 ‘지대(rent)’라는 뜻인가?

그렇다. 공기업은 렌트 맞다. 공기업의 근로조건을 좋게 만드는 중요한 논리는 모범 사용자가 돼서 앞서서 민간부문을 견인한다는 거다. 그게 되면 좋은데, 안 되면 격차만 벌어진다. 현대자동차가 바로 그런 경우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논리는 우리 임금이 높아지면 그걸로 나머지를 다 끌어온다는 건데, 그게 안 되면 끌어오는 게 아니라 격차가 벌어지고 특권층이 된다. 공기업도 그럴 우려가 있다. 그래서 공기업은 예를 들면 고용 형태라든지 고용안정성이라든지 인격적 관리라든지 민주적 노사관계라든지 노동자 경영 참가라든지 이런 쪽에서 모범 사용자가 되면 되는 것이지 임금까지 높여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기업은 임금에서 모범 사용자가 돼선 안 된다. 다르게 보면 이 사람들은 고용 안정 등 여러 면에서 이점을 누리고 있으니까 임금은 손해를 보는 게 사회적으로 형평성이 있다. 지금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공공부문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 기조에는 찬성하지만, 민간부문과의 형평성이라는 것을 고려하며 동시에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엔 특권적 지위가 늘어나고 과거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새로이 심화하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정규직화를 통해 그만큼 혜택을 줬으면 공기업은 한동안 임금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들도 무기계약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나섰다.

궁극적 해결책은 정규직 쪽을 고치는 것이다. 근데 그게 어려우니까 얘기를 못 한다. 이걸 안 고치면 계속 차별로 남는다. 금방은 어렵더라도 임금체계에 직무적 성격을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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