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이주영 지음, 나비클럽 펴냄
그녀는 투명인간이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존재. 튀는 행동도 하지 않고 내성적이고 평범해서, 졸업 앨범에서 보면 ‘아 맞다, 얘도 우리 반이었지’ 하고 겨우 기억하게 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선명하게 만들어준 이는 친구들이었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별명을 붙여주고(그녀의 별명은 ‘설사’다), 충동적인 장난에 끼워줘 함께 벌을 받게 했다. 말려야 할 것 같은 일을 오히려 응원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남들이 입시에 찌들어 있을 때 홀연히 일본으로 가서 대학에 입학하고 번역가와 통역사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방송국에서 구성작가와 PD로 일했다. 그러다 로마로 떠나 이탈리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거기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파리로 간 뒤에는 화가로 활동한다.

세상 사람들이 ‘독특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무렵 그녀는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선택한 한 가지(남편) 때문에, 선택하지 않은 무수한 것들과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를 지루하게 했다. 지루함은 다시 우울함을 불렀다.

투명해진 그녀를 채색해준 이도 친구였다. 귀국해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꺼내면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엄마가 ‘하나같이 비정상’이라고 했던 친구들이 그녀를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준다.

인생은 늘 삐뚤빼뚤하다. 결국 기억하는 건 우리를 삐걱거리게 만든 굴곡이다. 그 굴곡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옆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사람과 대단한 관계만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책을 읽으며 친구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떠올리게 된다. 조금 결이 다른 〈응답하라 1988〉을 보는 기분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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