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초기였습니다. 저는 MBC에서 작은 인터뷰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초대 손님은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당시 박 이사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고소를 당했거든요. 인터뷰 끝날 때쯤 국가기관에서 개인을 소송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방송 후, 저는 바로 잘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MBC에서 사라졌습니다. 뉴스만 빼고요. ‘검찰에 소환된다’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재판을 받는다.’ MBC 뉴스만 보면 저는 천하의 흉악범이었지요. 뭐, 그런 시대였습니다.
ⓒ시사IN 양한모

박근혜 정부 때였습니다. SBS 〈힐링캠프〉에서 가수 이승환 형을 초대했습니다. 형은 노무현 전 대통령 헌가를 발표한 후 방송에서는 사라지다시피 했거든요. 프로그램 사회자는 김제동. 담당 PD는 류승완 감독, 만화가 강풀과 저를 방청석으로 초대합니다. 이승환·김제동·류승완·강풀 그리고 저는 소문난 절친이거든요. 대표 블랙리스트들이기도 했지요. PD에게 말했어요. “잘 알아보세요. 절대 못 나가요.” “괜찮아요. 이 정도도 못 내겠어요?” “저는 절대 안 될걸요.” “괜찮아요.” 방송 촬영할 때까지도 저는 불가능할 거라고 했지요. 그런데 방송국 높은 분까지 내려와서는 “괜찮다”라고 했습니다. 녹화는 즐겁게 끝났습니다. 사랑 얘기, 사는 얘기…. 정치 이야기는 없었지요.


그런데 방송 한 시간 전쯤, 담당 PD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위에서 “주 기자는 안 된다”라고 했다며, 제가 나온 부분만 자르겠다고. 얼마나 급했는지, 다 자르지도 못했어요. 저는 팔뚝과 목소리만 나왔지요. 네이버 뉴스를 찾아보니 제가 천하의 재미없는 놈이어서 통편집됐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국정원 직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보면 큰일 난다고 윗선에 무조건 자르라고 했다”라고 하더라고요. 뭐, 그런 시대였지요.


시대가 변했나 봐요. 방송국에서 자꾸 전화가 옵니다. 10분 전에는 MBC와 인터뷰했습니다. 8년 만입니다. 얼마 전에는 신동엽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인생술집〉에 이승환 형과 나갔습니다. 우리에게는 〈힐링캠프〉의 상처를 힐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기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포털 검색어에서도 이승환 형과 제가 번갈아 1위에 올랐습니다. 다음에서는 오래, 네이버에서는 잠시 1위를 했어요. 네이버에서는 우리 같은 ‘골드 블랙리스트’는 검색어에 잘 올리지 않거든요. 이날도 이승환 형이 검색어 1위를 할 때, 10위권 검색어에 ‘이승환 나이’가 있었습니다. ‘주진우’가 1위를 할 때, 10위권에 ‘주진우 기자’가 있었습니다. 


‘가카’의 손과 발은 꼼꼼하고 성실합니다. 아직도…. 저는 이번 주에 재판을 받았고, 다음 주에도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명박 국정원이 사찰해서 고소한 사건입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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