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이라는 게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현실 밖의 일이라 여기며 살던 팍팍한 어린 시절, 처음 동해안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해 여름 자가용도 없었거니와 도로 사정도 녹록지 않아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몇 시간에 걸쳐 동해에 다다랐다. 이런 고생스러운 기억은 모두 삭제되었고, 내게는 난생처음 보았던 그 바다, 끝없이 펼쳐져 있던 바다의 기억만이 오롯이 남아 있다.
먼 친척 민박집에 짐을 풀고, 열한 살인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바닷가로 갔다. 밀물과 썰물이 쉼 없이 반복되는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튿날은 얕은 바다에 몸을 담가보았다. 바닷속에는 꼬물꼬물 움직이는 작은 물고기와 이름 모를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바다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저 수평선 너머엔 뭐가 있을까. 저 바다로 나아가면 무얼 만나게 될까. 바닷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 건 아닐까.
그다음 날에는 엄마와 수영 시합을 했다. 엄마의 미소가 햇살처럼 부서지던 여름이었다.
‘나만의 바다’를 만나 꾸는 꿈
〈나만의 바다〉는 어린이에게는 상상력을, 어른에게는 ‘나만의 바다’를 환기시키는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소녀는 가족여행이 정말 싫었다. 친구들과 놀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익숙한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는 가족을 따라 휴가를 떠났고, 심심하기 짝이 없는 바닷가 네모난 집에서 시무룩하게 지낸다. 소녀는 셋째 날 마지못해 바다로 나간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담그자 이따금 바닷물이 ‘따듯하게’ 느껴진다. 다음 날 소녀는 침대에서 뛰어나와 곧장 바닷가로 달려 나가 바다 위에 몸을 누인 채 시간을 보낸다. 서서히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바다의 시간은 늦는 법도 없고, 급히 서두르는 법도 없어. 누가 누가 빠른가 겨루지도 않지.” 소녀는 바다에서 마음을 열게 되고 나만의 바다를 가지게 된다. 저 바다를 통째로 가져갈 수 있다면, 아니 어항에 ‘나만의 바다’를 담아 도시에 있는 집으로 가져가게 된다면, 내 생각들을 거기서 마음껏 헤엄치게 할 텐데, 하며 소녀는 꿈꾸기 시작한다.
휴가가 끝나가는 마지막 날 밤, 처음에는 그토록 집을 떠나기 싫었던 소녀는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진다. 오빠에게 바다를 가져갈 방법을 물었지만, 바다를 가져갈 수는 없다는 말에 실망하던 소녀는 깨닫게 된다. 바다와 함께 보낸 시간들, 내면의 대화들, 나만이 아는 비밀들…, 그 바다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자신이 보았던 바다의 여러 얼굴들, 곧 잔잔한 바다, 반짝이는 바다, 휘몰아치는 바다, 먹빛 바다 그 어떤 모습의 바다이든, 내 고유의 바다는 내가 어디 있든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는 것을.
이 책은 여름휴가를 떠나 처음 바다를 보고 경험한 한 소녀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는 내 안에 있었고, 내가 우주이며, 내 마음이 모든 것이라는 놀라운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나만의 바다〉는 캐나다어린이책협회가 선정하는 2016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십대로부터 수십 년 세월을 지나온 지금의 내게, 여전히 그 바다는 내 안에서 일렁인다. 엄마가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아도 엄마의 미소는 늘 내 맘에 살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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