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점점 플라스틱이 되어가고 있다. 바다 속에 흘러들어간 5㎜ 이하 크기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체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애써 외면해왔던 해양 미세 플라스틱 오염 공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자료는 꽤 충격적이다. 굴·담치·게 등 국내 해양생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고, 플라스틱에 중독된 해양생물은 활동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사 결과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해양 미세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 위해성 연구’의 일환이다. 정확하게는 국내 ‘연안(육지에 맞닿은 얕은 바다)’의 해양 환경오염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지난해 조사치다.

조사 대상 해양생물은 굴·담치·게·지렁이 4종이다. 굴과 담치는 물을 걸러 먹기 때문에 수중 오염 실태를 잘 보여준다. 지렁이와 게는 바다 밑바닥에서 퇴적물을 걸러 먹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해저 오염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해양 미세 플라스틱의 환경 위해성 연구’ 문건에 해양 미세 플라스틱 오염 실태가 드러나 있다.
조사 대상 지역은 경남 거제·진해 연안이다. 양식장이 밀집한 이 지역은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가 심각한 곳이다. 2015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전국 해안 12곳을 대상으로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경남 거제 앞바다의 경우 1㎥당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평균 21만 개 들어 있었다. 해외 평균보다 8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같은 방법으로 조사한 싱가포르 해역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 수보다 100배 넘게 많았다.

해양생물 4종의 내장과 배설물 등을 분석한 결과 139개체 중 97%(135개체)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한 개체에서 미세 플라스틱 입자 61개가 나오기도 했다. 미세 플라스틱이 쌓여 장이 팽창한 개체도 있었다. 국내 해양생물에 미세 플라스틱이 축적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현권 의원이 공개한 자료 가운데 더욱 민감한 부분은 이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작성한 ‘해양 미세 플라스틱의 환경 위해성 연구(중간평가)’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이 실제로 해양생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드러난다.

연구팀은 동물 플랑크톤을 40일 동안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시켜 만성 독성 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생존율이 감소하고 발달 지연 현상이 나타났다. 또 어류를 대상으로 독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된 어류가 대조군에 비해 이동거리가 짧고 속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미세 플라스틱의 체내 축적으로 활동성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이는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독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지만, 미세 플라스틱이 실제로 생물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국내 최초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다. 당장 국내 어민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

ⓒAP Photo2014년 11월4일 인도 뭄바이의 콜라바 인근 해변에서 인부들이 플라스틱과 해양 쓰레기를 줍고 있다.
개펄 수산물이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 없어

다만 이번 연구에는 전제가 있다. 우선 미세 플라스틱 체내 축적을 조사한 굴·담치·게·지렁이 가운데 굴은 양식 굴이 아닌 자연산 굴이었고, 게는 우리가 흔히 먹는 꽃게류가 아닌 작은 무늬발게였다. 일부 언론에서 이번 연구를 보도하면서 양식 굴과 꽃게를 관련 사진으로 사용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 또 이번 연구에 쓰인 무늬발게와 자연산 굴은 주로 개펄에 서식한다. 미세 플라스틱은 물보다 가벼워 수면 위쪽에 뜨는데,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개펄이 오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연구를 주도한 홍상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은 “양식 굴은 바닷물 속에 잠긴 채 자라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산 굴보다는 미세 플라스틱에 덜 노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수산물을 해감하는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 농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개펄 수산물이 위험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세 플라스틱이 축적된 해양생물을 사람이 섭취할 경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세계적으로 아직 연구된 바가 없다. 이번 연구의 핵심 메시지는 국내 해양생물이 미세 플라스틱에 심각하게 노출되었고, 그 결과 발달이 지연되고 활동성까지 떨어졌다는 점이다. 국내 바다에도 해양오염으로 인한 미세 플라스틱 공포가 덮쳤다는 경고다.

2015년 사단법인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이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해양오염의 심각성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전국 40개 지역 해안(동해 10곳, 서해 18곳, 남해 12곳)의 해양 쓰레기를 분류한 결과 플라스틱 종류(55.6%)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플라스틱류에는 어구를 비롯해 페트병·포장재 등 생활용품이 포함된다. 넓게 보면 플라스틱류에 포함되는 스티로폼(14.7%)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담배꽁초·불꽃놀이 용품(5.6%), 유리(4.8%), 외국발 쓰레기(4.7%), 나무(4.7%), 금속(3.8%), 종이(2.3%), 의류·천(2.3%) 순서였다. 현재 해양오염의 주범이 플라스틱이라는 조사 결과다.

문제는 바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9월 미국 비영리 언론기관 오브미디어(Orb Media)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수돗물 83%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연구팀이 전 세계 14개국 수돗물 샘플을 채취해 조사한 결과다. 미국 수돗물 94%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고, 인도 뉴델리는 82%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75%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유럽 수돗물 72%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수돗물 조사에서 한국은 빠졌지만, 거제 등 국내 해안의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감안하면 상황은 심각하리라 보인다. 환경부도 국내 수돗물 미세 플라스틱 오염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나섰다. 홍상희 연구원은 “일회용품 규제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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