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의 한 시대가 끝나고 있다. 지난 9월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양적완화로 엄청나게 불어난 연준 대차대조표의 자산을 축소할 계획을 발표했다. 위기에 맞서 비상수단을 동원하여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대불황에서 구했던 중앙은행이 이제 보통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양적완화란 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작동할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금융자산을 매입하여 본원통화를 증가시키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은 2014년 10월까지 양적완화를 3차례 실시해 약 9000억 달러이던 자산을 현재 4조5000억 달러까지 늘렸다.

미국이 가는 길을 다른 선진국들도 그대로 따랐다. 이미 2001년 양적완화를 실시했던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로서 2013년부터 국채뿐 아니라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대한 간접투자를 포함한 ‘양적·질적 완화’를 실시 중이다. 많이 늦었지만 유럽도 2015년부터 양적완화를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양적완화도 되돌리겠다는 역사적 결정을 내린 셈이다.

양적완화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대부분의 연구들은 양적완화가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한다. 최근 잉글랜드은행(영국 중앙은행)의 보고서는 양적완화가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었고 장기 금리를 하락시켰다고 주장한다. 비판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들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산출 수준은 위기 이전 장기 추세보다 15%나 낮고 고용률도 낮으며 수요 부족으로 생산성도 떨어진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하다고 비판한다. 한 보고서의 제목처럼 ‘무슨 회복?’이라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물가인상률이 너무 낮다. 미국의 실업률은 4.2%로 완전고용 수준이지만 임금 상승이 정체되는 바람에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 개인소비지출 부문의 물가인상률은 올해 2월 전년 대비 2%를 잠시 넘어섰지만 최근 더 낮아져 8월에는 1.4%에 그쳤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도, 중앙은행이 필립스곡선의 실종 같은 최근의 물가 인상 동학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의 금리 인상이나 ‘양적완화의 되돌림’도 우려할 만한 일이다. 물론 연준은 경기회복세가 견조(堅調)하며 결국엔 물가인상률 역시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3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3%(연율로 환산했을 때)를 기록할 정도로 호조이며, 9월의 개인소비지출 부문 물가인상률도 1.6%로 이전보다 높아지긴 했다.

또 다른 비판은 양적완화로 자산시장의 버블이 심화되고 경제가 다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각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미국의 주식시장과 전 세계의 채권시장이 버블이라는 우려가 높다. 올해 초만 해도 연준은 순한 비둘기 같았다. 지난해 11월 옐런은 총수요의 정체가 총공급까지 억압하면서 장기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경기 회복이 가속화되자 연준은 본격적인 통화정책 정상화와 양적완화를 되돌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는 경기 회복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앙은행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연합뉴스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6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옐런은 이날 연설에서 물가 상승률 목표(2%)를 밑도는 저물가의 지속 가능성을 제기하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 조절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기 회복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앙은행

섣부른 긴축은 실수가 될 수도 있다. 대공황 이후 경제가 회복되자 1936년 연준은 자산시장 과열을 우려하며 지급준비율을 높여 긴축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1937년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졌고 2차 세계대전 무렵이 되어서야 회복될 수 있었다. 연준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자산 축소가 오랫동안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라 강조한다. 나아가 옐런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미래에도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다시 동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양적완화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지만, 중앙은행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어쩌면 기나긴 정체를 바탕으로 비전통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