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받아본 어느 월간지에서 흥미로운 대담을 읽었다. 다름 아닌 미당문학상 존폐 여부를 놓고 벌어진 논전이었다. 미당 서정주의 삶과 문학을 긍정하는 동시에 미당문학상을 옹호하는 편에서는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시인 한 명과 최근 간행된 〈미당 서정주 전집〉(은행나무, 2017)의 간행위원이기도 했던 문학평론가 한 명이 나왔다. 한편 폐지론자 쪽에서도 똑같이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한 명씩 나섰다. 편집으로 순화된 지면인데도 혈투의 열기가 생생하게 감지되었다.

〈미당 서정주 전집〉
서정주 지음
은행나무 펴냄

미당문학상은 2001년 제1회 수상자를 낸 이후 올해 17회 수상자를 낸 만큼, 상의 존폐를 왈가왈부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듯하다. 게다가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가히 한국 시단의 ‘올스타’라고 해도 될 정도다. 여기에 서정주에 대한 판단을 삼가면서 그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에 아무런 자각이 없는 채로 후보 되기를 수락했던 무수한 시인들과, 이 상의 본심과 예심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인사들까지 합하면, 한국 문학계는 미당에 의해 오염되고 내파되었다고 해야 맞다. 노벨상의 재원이 다이너마이트로 번 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아무런 허물이 되지 않듯이, 미당문학상의 성공으로 미당의 과거사는 햇빛 쏟아지는 마당에 널린 빨래처럼 뽀송뽀송하게 세탁되었다.

초기에 미당문학상 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기는 했지만, 한동안 조용했던 폐지론자들의 목청이 올해 들어 다시 높아졌다. 혹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사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적폐 청산’이 문학계에서 본보기로 찾아낸 것이 미당문학상이라고 말한다.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올해 들어 폐지론자들이 목청을 드높이게 된 근본 원인은 미당문학상의 광폭 행보에 있다. 미당은 근대주의(모더니즘 문학)와 사회주의(경향파 문학) 모두를 물리치고 ‘생의 구경적(究竟的) 탐구’를 자신의 시업으로 삼았던 시인이다. 한국 시단에서 그의 이름이 대표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전통의 미학과 정신이다. 미당문학상은 이러한 미당 본래의 성격에 충실해야 했다. 그랬다면 설혹 한 인물을 기념하기에 부적당한 오점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무슨 대수랴. 선배 문인의 이름과 후광을 걸고 주어지는 문학상들이 그 선배의 문학 정신을 올곧게 계승한 경우에 주어진다는 합의가 미당문학상의 경우에는 확실한 허구가 되었다. 미당문학상은 미당의 시 정신을 살린 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당을 오욕에서 건져내고 그를 영광스럽게 해줄 시인에게 주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당문학상 심사위원과 수상자들이 미당의 미학이나 정신세계는 물론 정치관과도 맞지 않는 김수영문학상이나 5·18문학상을 중복 심사하거나 수상한다는 점이다. 올해 5·18문학상을 놓고 벌어진 파동도 미당문학상과 연관된 인사들이 심사를 한 데다가, 미당문학상을 받았던 이가 5·18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벌어졌다. 미당문학상이 한국 문학계를 오염시키고 내파시켰다는 주장은 이런 뜻이다. 미당문학상과 그 옹호자들의 광폭 행보는 의식 있는 문인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상이 제정되고 17년째가 된 지금 새삼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세월이 걸러놓은 친일 부역 작품

ⓒ이지영 그림

미당의 옹호자들은 미당의 과거사에 대해 그가 ‘정치적 백치’였다거나 정신분열증을 앓은 ‘광인’에 가까웠다는 궁색한 변명을 자주 내놓는다. 하지만 한국 문학 연구자들은 서정주가 해방 직후 시단의 주류였던 ‘정지용류’의 감각파를 밀어내고 그 빈자리에 자신과 김영랑·김소월을 대입한 치밀한 인정 투쟁의 기획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능지수 180이 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변호한답시고, ‘이 사람은 정신병자입니다’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되지 말라. 미당 옹호자들은 미당을 사시로 보는 문인들만 설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순진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이들이 돌파해야 하는 것은 한 줌의 문학계가 아니라 그의 이름이 등재된 3권짜리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이며, 16권짜리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이다. ‘문예작품을 통해 본 친일 협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료집 제16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의 「항공일에」를 비롯한 「송정 오장 송가」 등을 보면, 시국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녀온 1급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성실히’ 활용한 시, 즉 상당한 시적 형상성이 뒷받침된 세계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해방 후 ‘살기 위해서 친일했’으며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서민적 고백을 여러 번 남겼지만, 해방 이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권력을 향해 적극적 협력을 거듭해온 생의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친일’은 한시적 사건이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와 한국 사회의 서민적 삶의 방식을 통어하는 프로그램의 일부가 노출된 형태였다고 보는 시각도 성립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 20권짜리 〈미당 서정주 전집〉이 나왔다. 이 결정본 전집을 만든 간행위원들은 미당이 쓴 친일 부역 작품을 모조리 누락했다. 세월은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작품만을 걸러놓는다. 예컨대 우리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남긴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만을 기억할 뿐,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섰고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잘 모른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그의 전력과 무관한 독립된 작품으로 읽히고 있다. 그러므로 부역 작품을 전집 속에 넣어 미당의 잘못을 후세의 귀감으로 널리 광고할 필요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들은 자신들이 존중하고 싶은 미당의 상(像)만을 남겨놓고자 했다. 이것이 미당 옹호자들이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을 돌파하는 방식이다.

1948년에 설치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좌절되지 않았다면 미당문학상도 생겨날 리 만무했다. 미당문학상이 이륙하는 데 활주로 노릇을 한 1~3회 수상자들(정현종· 황동규· 최승호)은 경멸받아야 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현암사, 1997)에 이렇게 썼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머리에 똥을 싸게 하는 것이다. 상을 받는 사람은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상은 누구 머리에 똥을 싸고 싶어 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똥을 쌀 권리가 있다. 상을 받는 사람은 그들의 상을 받겠다고 나설 만큼 저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극도로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만, 삶과 생존이 위협받을 때만, 그리고 사십 세까지만 상금이 딸려 있는 상 혹은 그저 단순한 상이나 표창을 받을 권리가 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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