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와 가오리가 물밑 마실에서 마주친 모양이다. 꽃게 눈은 뻗고, 가오리 눈은 벙긋하다. 날개와 꼬리에 감도는 떨림이 가오리의 곤두선 신경을 여실히 드러낸다. 꽃게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는 이웃인지 나 잡아먹을 놈인지, 순간 가려야 할 테지. 도화서 소속 화원 장한종(張漢宗, 1768~1815)이 남긴 〈어개화첩(魚介畫帖)〉 속 한 장면이다. 전통 시대에 물고기와 갑각류 등 수중 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어해도(魚蟹圖)’라고 한다. ‘어해도’는 다산과 출세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게 그림은 과거 시험의 1등을 뜻한다. 게의 등갑을 1등을 뜻하는 ‘갑(甲)’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꽃게는 봄에는 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맛의 진객이다. 6월 산란기를 앞두고 암게는 알을 품은 채 영양분을 온몸에 가둔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가을에는 겨울잠을 앞두고 닥치는 대로 먹으며 살을 찌운다. 가을 꽃게찜·탕의 풍미는 한국인에게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게장은 어떤가. 봄에 알밴 암게로 담근 게장의 깊은 맛도 진미지만 가을철 게장도 그에 못지않다. 6월에서 8월 사이 금어기를 무사히 넘긴 수꽃게는 손질하기 버거울 정도로 힘이 세다. 서해 먼바다 섬에서는 그놈을 깨끗이 씻어 염도 높은 집간장에 바로 빠뜨린다. 그러고는 장물 달일 것도 없이 독에 잘 눌러, 그대로 익혀 닷새 안에 먹어치운다. 그 쩡한 맛은 장맛과는 또 다르다. 가을·겨울 잘 익은 물김치 맛을 떠올리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장한종이 그린 〈어개화첩〉 속 ‘게와 가오리'.

꽃게는 조상들에게도 친숙했다. 실학자 이수광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 꽃게를 기록했다. 꽃게의 팔팔함에 대해서는 “억센 갑각류는 범과도 다툰다(螯强鬪虎)”라고 했다. 산 꽃게를 손질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표현이다. 헤엄치는 발에 대해서는 “뒷발이 납작하니 얇은데 노 모양으로 생겨 그것으로 물을 밀어 헤엄친다”라고 했다. 꽃게를 영어로는 ‘Blue crab’ 또는 ‘Swimming crab’이라 한다. 여느 게가 주로 옆으로 걷는 데 견주어 꽃게는 수영의 명수이다. 그 추진력이 바로 이수광이 쓰고 장한종이 그린 노 모양 뒷발에서 나온다. 이어 그 이름을 설명했다. 속칭 ‘관해(串蟹)’라고 하는데, 등딱지 양쪽으로 뿔처럼 내민 모양이 꼬챙이 같다고 했다. ‘관해’를 한국어로 읽으면 ‘곶게’다. ‘꽃’이 아니다. ‘串’은 호미곶 할 때의 그 곶(cape), 즉 바다로 삐죽 내민 지형을 뜻한다. ‘꿰다’의 뜻일 때에는 ‘관’으로 읽으며, 꿰거나 찌르는 꽂이, 꼬치, 꼬챙이도 ‘串’이다.

정약전(1758~1816)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남긴 설명도 재밌다. 정약전은 꽃게를 시해(矢蟹), 곧 ‘살게’라고 했다. 꽃게 눈 쪽에 송곳처럼 삐죽 내민 데가 화살촉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어서는 역시 “게는 잘 기어 다니지만 헤엄은 능숙하지 않은데, 이 게만은 유독 부채 모양의 다리로 헤엄을 잘 친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그 맛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감미(甘美)롭다”로 표현했다. 뾰족한 데에 착안한 이름풀이는 이수광과 통한다.

숭어·잉어·게·자라 등속의 비늘과 껍질을 살펴보고 따라 그리며

장한종은 어해도 분야에서 최고 소리를 들은 화가다. 장한종과 거의 동시대인인 유재건(1793~1880)은 〈이향견문록 (里鄕見聞錄)〉에 이렇게 썼다. 장한종은 “젊어서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속을 사다가 그 비늘과 껍질을 자세히 살펴보고 따라 그렸다. 완성될 때마다 그림이 사물과 닮았음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삐죽한 모서리와 눈가, 노와 닮았고 노처럼 쓰는 뒷발, 동세가 깃든 집게발, 몸통의 빛깔과 굴곡 등을 글로만 보아 무슨 재미인가. 관념 전에, 우선 내 앞의 사물 앞에서 최선을 다한 기록자에게 다시금 존경심이 솟는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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