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김정현. 〈어서오세요, 305호에!〉(2008년 3월3일 네이버 연재 시작, 2011년 9월22일 연재 종료)의 주인공이다. 인문계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졸업해 회계세무학과에 갓 입학했다. 고교 시절에는 계주를 뛰거나 축구부 부장으로 활약하는 등 운동신경이 꽤 좋은 편이었다. 굴곡 없이 살아온 스무 살 김정현. 살아온 인생처럼 무난하고 평범한 대학 생활을 꿈꾸던 그의 일상은 룸메이트 ‘김호모’를 만나 급변한다.

첫 악수부터 김호모는 묘했다. 끈적끈적하게 손가락을 휘감았다. ‘게이 포르노’를 즐기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정현은 소망했다.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길, 자신의 첫 룸메이트는 자기와 같이 여자 친구와의 연애에 대한 수다를 떨고 인스턴트 음식과 술, 담배, 야동에 찌들어 사는 인물이기를. 그의 소망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처음 함께 먹는 끼니에서 “남자 취향은?”이라는 질문을 받기에 이른다. 밥알을 내뿜으며 자리에서 도망친 정현은 고민한다. ‘왜 저런 게 존재하는 거야’ ‘동성애 전염되는 거 아닌가?’ ‘남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 변태 아닌가? 기분 나쁘다’ 등.

ⓒ이우일 그림
어쩌면 이것은 성 소수자를 대하는 여러 방식 중 꽤 악의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의 반응은 어딘지 익숙하다. 해마다 퀴어 축제가 열리고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그 축제에 찾아가 성 소수자를 전염병으로 취급하고 죄악시하는 호모포비아들을 도처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꾸준히 받지 않은 ‘성적 다수자’가 동성애자를 처음 만났을 때 태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집을 뛰쳐나온 김정현은 거리에서 ‘정상 가정’의 풍경을 보며 처음으로 깊이 생각한다. ‘20년 동안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동성애자는 언제부터 어디서 존재하고 있었던 거지?’

김정현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다. 김호모의 성 정체성을 아무에게나 말하다가 학과 동기인 오윤성한테 그것이 아웃팅(성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알려지는 일)이라는 폭력이라며 혼이 난다(15화). 김호모의 죽마고우이자 자신의 선배에게 김호모의 커밍아웃을 강제하다가 그의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기도 한다(34화). 한편으로는 김호모를 간병하러 온 친구들에게 ‘사람과 마주하면서 그런 걸 상상하고 신경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실례’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고(18화), 자신이 철저히 이성애주의자로서 한 인간을 ‘정신병자나 변태’로 취급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19화).

조금씩 할 수 있는 방식대로 공존하는 법을 모색하며

변화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김호모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서로 닮은 구석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면 다름을 불편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약자를 배려하려 노력할수록 피로해지고 죄책감이 든다. 그의 곁을 잠시 떠나기로 하고 305호를 나올 때는 “네가 나쁜 것도 아니잖아, 그만 사과해”라는 위로에 홀가분하게 그 마음을 떨어내지만(24화), 막상 밖에서는 자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술자리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그를 적극 변호하는 등 신경을 끄려야 끌 수가 없다. 정현은 하나씩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성 소수자와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나간다.

그의 변화에 주변은 감응한다. 가까이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던 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동성애자이면서도 호모포비아인 오윤아,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 정나미, 남자와 여자를 모두 좋아하는 양성애자 이시한 등 성적 다수자만 있을 것 같던 그의 세계에 실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현이 처음에 꿈꿨던 평범한 대학 생활은 아니었다. 하지만 뻔히 존재했던 이들을 20년 만에 보게 된 이 상황이 좀 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의 모습이었다. 10월24일 김정현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와 그의 친구들이 공존하는 세계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여겨질 수 있길 바란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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