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악수부터 김호모는 묘했다. 끈적끈적하게 손가락을 휘감았다. ‘게이 포르노’를 즐기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정현은 소망했다.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길, 자신의 첫 룸메이트는 자기와 같이 여자 친구와의 연애에 대한 수다를 떨고 인스턴트 음식과 술, 담배, 야동에 찌들어 사는 인물이기를. 그의 소망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처음 함께 먹는 끼니에서 “남자 취향은?”이라는 질문을 받기에 이른다. 밥알을 내뿜으며 자리에서 도망친 정현은 고민한다. ‘왜 저런 게 존재하는 거야’ ‘동성애 전염되는 거 아닌가?’ ‘남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 변태 아닌가? 기분 나쁘다’ 등.
어쩌면 이것은 성 소수자를 대하는 여러 방식 중 꽤 악의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의 반응은 어딘지 익숙하다. 해마다 퀴어 축제가 열리고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그 축제에 찾아가 성 소수자를 전염병으로 취급하고 죄악시하는 호모포비아들을 도처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꾸준히 받지 않은 ‘성적 다수자’가 동성애자를 처음 만났을 때 태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집을 뛰쳐나온 김정현은 거리에서 ‘정상 가정’의 풍경을 보며 처음으로 깊이 생각한다. ‘20년 동안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동성애자는 언제부터 어디서 존재하고 있었던 거지?’
김정현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다. 김호모의 성 정체성을 아무에게나 말하다가 학과 동기인 오윤성한테 그것이 아웃팅(성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알려지는 일)이라는 폭력이라며 혼이 난다(15화). 김호모의 죽마고우이자 자신의 선배에게 김호모의 커밍아웃을 강제하다가 그의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기도 한다(34화). 한편으로는 김호모를 간병하러 온 친구들에게 ‘사람과 마주하면서 그런 걸 상상하고 신경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실례’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고(18화), 자신이 철저히 이성애주의자로서 한 인간을 ‘정신병자나 변태’로 취급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19화).
조금씩 할 수 있는 방식대로 공존하는 법을 모색하며
변화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김호모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서로 닮은 구석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면 다름을 불편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약자를 배려하려 노력할수록 피로해지고 죄책감이 든다. 그의 곁을 잠시 떠나기로 하고 305호를 나올 때는 “네가 나쁜 것도 아니잖아, 그만 사과해”라는 위로에 홀가분하게 그 마음을 떨어내지만(24화), 막상 밖에서는 자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술자리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그를 적극 변호하는 등 신경을 끄려야 끌 수가 없다. 정현은 하나씩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성 소수자와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나간다.
그의 변화에 주변은 감응한다. 가까이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던 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동성애자이면서도 호모포비아인 오윤아,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 정나미, 남자와 여자를 모두 좋아하는 양성애자 이시한 등 성적 다수자만 있을 것 같던 그의 세계에 실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현이 처음에 꿈꿨던 평범한 대학 생활은 아니었다. 하지만 뻔히 존재했던 이들을 20년 만에 보게 된 이 상황이 좀 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의 모습이었다. 10월24일 김정현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와 그의 친구들이 공존하는 세계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여겨질 수 있길 바란다.
-
남녀 구분, 깔끔하지 않아요
남녀 구분, 깔끔하지 않아요
문정우 기자
때로는 질문이 전부다. 그 자체가 수많은 답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천재로 불리는 이론물리학자이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에르빈 슈뢰딩거는 말년...
-
그날 이후, 변이체와 비체가 왔다 [독서일기]
그날 이후, 변이체와 비체가 왔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윤김지영의 〈헬페미니스트 선언-그날 이후의 페미니즘〉(일곱번째숲, 2017)과 이현재의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들녘, 2016)은 현재 상태를 뒤흔든 하나의 공통...
-
여성 혐오, 교실을 점령하다
여성 혐오, 교실을 점령하다
장일호 기자
페미니즘 논쟁이 학교로 번졌다. 경기도 위례신도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성평등 수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슈는 빠르게 성 대결로 치달았다. 교사에 ...
-
데이터로 소수자 인권을 말하다
데이터로 소수자 인권을 말하다
장일호 기자
지난 5월 동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 군인이 범죄자가 되었다. 유죄 선고가 있었던 다음 날 저녁, 한 대학교수가 ‘A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 집회에 참석했다. 예정에 없이 무...
-
잔잔한 호수 같던 ‘구탱이 형’
잔잔한 호수 같던 ‘구탱이 형’
중림로 새우젓 (팀명)
자신이 가진 끼와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있고, 장점이든 단점이든 ‘포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김주혁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처...
-
건담은 일본 학생운동의 끝나지 않은 투쟁이었다
건담은 일본 학생운동의 끝나지 않은 투쟁이었다
중림로 새우젓 (팀명)
“V 건담은 아주 싫어합니다.” 자기가 만든 작품을 비판하거나 제작 중에 생긴 마찰을 언급하는 일은 영상물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정면으로 부정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
‘연뮤덕’의 성지 아트원씨어터
‘연뮤덕’의 성지 아트원씨어터
중림로 새우젓 (팀명)
2013년 11월19일. 〈맘마미아〉 〈맨오브라만차〉 등 ‘뮤지컬 대작’이 개막을 앞둔 시점에 생소한 이름의 소극장 연극 〈나쁜 자석〉이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예매율 1위를 차지했...
-
나는 레즈비언이요, 게이의 딸입니다
나는 레즈비언이요, 게이의 딸입니다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전 편집장)
앨리슨 벡델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전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발견하며 자신의 ‘참 존재’를 깨닫는다.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