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촛불 체제’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2016년 가을과 겨울을 달궜던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다. 이것만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던 과업이었지만, 촛불은 그보다도 멀리 나아갔다. 촛불집회 이후 한국 정치는 근본적인 재구성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오래 묵고 철옹성 같던 정치의 문법이 이제는 더 이상 견고해 보이지 않는다. 촛불이 한국 정치의 근본적 재구성까지 도달한다면, 우리 시대는 ‘촛불 체제’로 불려야 할 수도 있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주최 측 추산 약 190만명이 모였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의 풍경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와 달랐다. 토요일 오후면 밀물처럼 몰려왔던 2016년 촛불 인파는 대중교통이 다니는 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일요일에는 공식 집회가 없었고, 주중에는 조용히 국회 상황을 주목했다. 2008년 촛불은 그렇지 않았다. 2008년 집회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강제해산 당하기 일쑤였고, 주중에도 규모가 줄어들지언정 집회의 흐름이 끊기지는 않았다.

이 차이는 보기보다 의미심장하다. 2008년 촛불은 분노가 누적되면서 증폭되는, 어느 정도 전형적인 시위의 궤적을 따라갔다. 반면 2016년 촛불은 마치 100만명이 하나의 전략 기조를 공유라도 한 듯이 칠 때 동시에 치고, 빠질 때 함께 빠졌다. 분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도의 집중력이 유지됐다. 집회가 이어지던 기간 중에 기자와 만난 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집회가 있는 토요일보다 고요한 주중이 더 무섭다. 주중에 우리가 실수라도 했다가는 얼마만큼 폭발이 있을지 상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광장이 들썩거리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말의 시점에서 보면, 촛불이 ‘흩어지지도 증폭하지도 않는’ 고도의 집중력을 12월까지 유지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런데 2016년 촛불은 그 터무니없는 일을 해냈다. 광장의 대오가 흩어졌다면, “퇴진 시점을 국회가 정해달라”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막판 흔들기(11월29일)에 국회가 후퇴했을 수 있다. 광장의 대오가 분노의 증폭으로 급진화했다면, 중도층과 보수층이 이탈하면서 촛불이 고립되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입법부의 탄핵 동맹은 유지되기 어려웠다.

이 놀라운 집중력은 분명하고 알기 쉬운 목표가 널리 공유되었던 덕이 컸다. 촛불은 대통령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헌정 중단과 격변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망쳐놓은 헌정을 복원하기를 원했다. 대표 구호는 “이게 나라냐!”였다. 촛불의 목표가 복잡한 상상력과 논란을 요구하는 체제 변혁이 아니라 체제 복원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합뉴스2016년 12월9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복원되어야 할 체제란, 국가권력이 특정 세력의 하수인이 되지 않는 체제, 통치자가 위임받은 권한을 법에 따라 사용하는 체제, 권한을 잘못 휘두르면 통치자라도 처벌받는 체제,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핍박을 받지 않는 체제 등을 뜻했다. 무엇 하나 ‘혁명적’인 것이 없었다. 광장에서 사회경제적 혁신 요구는 크지 않았다. 주된 요구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헌정체제와 다원적 민주주의 원리를 복원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2016년 촛불이 박근혜식 통치를 ‘체제 밖의 어떤 것’으로 결론 내렸다는 의미다. 박근혜식 통치는 우리 체제가 용인해줄 한계선을 넘었다고 광장은 선언했다.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체제의 용인선을 넘어버린 통치’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특유의 예외적 일탈인가, 혹은 한국 보수의 본질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인가? 답이 전자라면, 2016년 촛불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조기 퇴진시킨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자라면, 2016년 촛불은 자유한국당 등 한국 보수 정치 세력까지도 ‘체제 밖’이라고 선언하면서 이후의 한국 정치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느 쪽일까?

답을 내리려면 한국 보수 특유의 세계관과 역사관으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보수를 대표하는 이론가인 고 김일영 교수(정치학)나 이영훈 교수(경제학) 등이 보여주는 한국 현대사 해석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이 ‘예외적인 성공’을 거둔 국가라는 인식이다. 성공 중에서도 핵심은 ‘올바른 경로’를 설정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공산주의는 신흥 국가에 매력 있는 대안이었다. 당대에 초기 경로를 잘 설정하는 것은 국가의 운명에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승만 정권이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으로 경로를 잡은 것은 결정적 분기점이었다고 이들은 본다.

한국이 예외적인 성공을 거둔 국가라는 인식, 자유 진영과 자본주의라는 올바른 체제를 선택했다는 자부심이 보수 세계관의 뿌리를 이룬다. 이 세계관을 증명하려면 체제 경쟁의 승리가 필요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대결주의는 한국 보수의 근본 정서로 자리 잡는다.

총력전 정부의 전시 사령관, 대통령

한국 보수는 국가 자체를 북한과의 대결을 집행하는 총동원 기구로 간주했다. 이 구도에서는 북한과의 대결을 규율하는 국가보안법이, 자유와 다원주의와 법치를 말하는 헌법보다 실질적인 상위법이 된다. 반공국가는 ‘적’을 대상으로 국가권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정당화해준다. 적은 북한만이 아니다. 남한 내에서도 북한과 내통하거나, 북한을 우호적으로 보거나,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은 마찬가지로 적이다. 국가권력은 이들 내부의 적을 공격하는 데 쓸 수 있다.

ⓒ연합뉴스2016년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나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상징하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2014년 1월4일 수석비서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특검 공소장). “모두가 불퇴전의 각오로 투지를 갖고 좌파 세력과 싸워나가야 한다.” 2013년 12월18일에는 이런 말도 했다. “반국가·반체제 단체에 대한 영향력 없는 대책이 문제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 영화 〈변호인〉과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렇다. 하나하나 잡아나가자.” 국가권력을 내부의 적을 향해 휘두르라는 지시를 꺼리기는커녕 사명감을 갖고 내린다. 이들에게는 〈변호인〉과 같은 상업영화도 ‘국가 밖의 존재’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여러모로 박근혜 정부를 상징할 만한 장면이다. 2015년 연말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은 중도층과 보수층 사이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확산시켰다. 자유주의라는 올바른 경로를 선택하여 승리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한국 보수 특유의 신념이 넘쳐흐른 나머지, 교육 현장의 자유를 희생하면서까지 이를 관철하려 했다. 교과서 파동은 한국 보수가 말하는 자유가 다원주의적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때의 자유란 공산 진영에 맞선 자유 진영을 뜻하는 그 ‘자유’였다. 한국의 보수에게 자유란 근본적으로 진영론의 언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제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일종의 ‘총력전 정부’였다. 휴전선 이북과 이남 모두에 널려 있는 ‘국가의 적’을 공격하려 권력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정부로 스스로를 상상했다. 이런 총력전 정부에서 대통령은 비상 대권을 가진 전시 사령관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박근혜라는 기묘한 정치인의 일탈이 아니다. 차라리 반공국가라는 한국 보수의 본령에서 곧바로 도출되는 태도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내부의 적에 대한 공격은 감행되었다. 이런 면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박 전 대통령이나 돌연변이라기보다는 한국 보수의 적통에 더 가깝다. 박 전 대통령은 그저 유난히 노골적이고 유난히 조심성이 없었다.

한국 보수는 이 대결주의를 기반으로 다수파의 지위를 누려왔다. 보수가 주도했던 발전국가가 먹고사는 문제에 유능하고, 북한이 목전의 위협으로 실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1987년 민주화 이후로도 한국 보수는 다수파 지위를 잃지 않았다.

이 맥락에서, 2016년 촛불은 진정으로 중대한 사건이 된다. 2016년 촛불은 이 총력전 정부와 전시 사령관 대통령이라는 한국 보수의 통치원리를 처음으로 전면 기각했다. 1987년 민주화에서 결정적인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다원적 민주주의 원칙을 복원하라는 명령은, 대결주의 통치원리를 사실상 ‘체제 밖’으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사실상 단 한 번도 다수파의 지위를 놓지 않았던 세력이 돌연 오른쪽 끝에서 주변화하는 처지가 되었다.

새누리당 본류를 계승하는 자유한국당은 107석을 보유한 제1야당이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은 지금도 10%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전망은 극히 어둡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기획이 옛 보수 영토를 복원해줄까. 이것도 간단하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 이후 실망하고 이탈한 지지층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복원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계기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노무현 정부는 ‘체제 밖’으로 낙인찍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은 ‘체제 밖 통치’의 뒷배였다.

‘적폐 청산’과 ‘협치’라는 이중의 요구

이제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 지지로 돌아가려면 단순히 우클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밖’에 있다는 부담스러운 경계선을 뛰어넘어야 한다. 손을 내밀기조차 어렵다. 그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자유한국당이 헌정체제와 다원적 민주주의 체제를 존중할 것이라는 강하고 구속력 있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정도가 구속력 있는 신호일지는 무척 불투명하다. 지지층이 빠르게 복원되리라는 보수 일각의 기대는 이 결정적 차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연합뉴스10월27일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문재인 정부는 공영방송 장악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2016년 촛불의 성격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받는 이중적이고 심지어 모순되어 보이는 요구도 납득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협치’라는 이중의 요구를 받는다고 흔히 간주된다. 2016년 촛불의 의미도 이 둘에서 찾는 논평이 많다. 적폐 청산을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은 협치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이분법은 딜레마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다시 ‘체제 복원’이라는 2016년 촛불의 키워드가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체제를 복원하려면, 헌정체제와 민주주의 원리를 어기며 통치했던 세력을 단죄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을 적폐 청산이라 부른다. 동시에 협치는 다원적 민주주의 원리에 내재한 요구다. 다원적 가치를 조화·타협시킬 책임이 민주정의 통치자에게 있으므로, 서로 다른 가치를 대변하는 세력 간의 협치는 체제가 다시 작동한다는 증거다.

2016년 촛불이 명령하는 체제의 복원이란 ‘체제 밖에 대한 단죄’와 ‘다시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를 한 쌍으로 한다. 적폐 청산과 협치는 체제가 복원되었다는 증거로서 둘 다 필수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과 협치를 동시에 요구받는 것은 모순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체제를 복원하라는 2016년 촛불의 명령을 서로 다른 표현으로 받는 중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적폐 청산이라는 말은 ‘체제 밖’에 대한 단죄에서 멈추도록 섬세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적폐란 근본적으로 적대의 언어이므로, ‘체제 안’에까지 적용했다가는 다원적 민주주의 원리를 해치게 된다. 노동조합, 전문가 그룹, 국정 농단에 직접 책임이 없는 야당, 심지어 여당 내 비주류 그룹 등, 체제 밖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단순한 반대파들을 정부는 언제나 만나게 된다. 이런 체제 내의 반대파들에까지 적폐 딱지를 붙이다 보면, 그때는 정부가 오히려 다원적 민주주의 원리를 훼손하는 주체가 된다.

반면교사가 바로 옆에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 정부는 북한에 대한 대결주의를 부풀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종북’으로 지목된 대상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민주당 전체, 문재인 의원, 박근혜 대통령 반대 집회를 연 프랑스 교민 등이 있었다. 종북의 의미는 너무나 확장되어서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적대의 언어는 터무니없이 자가 증식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의 식사 초대를 거절한 후 정부의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적폐로 낙인찍혔다. 적폐 청산은 체제 밖에 대한 단죄에서 멈추도록 섬세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섬세하게 제한해서 휘둘러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섬세하지 않은 전방위 적대는 반대파의 결집을 부른다. 이는 2016년 촛불이 체제 밖으로 낙인찍어 주변화한 보수 본류가 다시 주축 정당으로 부활할 가능성을 높인다. 자유한국당의 보수 재통합 기획은 한때 전망이 없어 보였으나, 적폐 청산 공세를 빌미로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다. 보수 본류가 주축 정당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2016년 촛불이 던진 체제 변동 가능성이 다시 낮아진다는 의미다.

ⓒ사진공동취재단5월9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세종로 소공원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

2016년 촛불은 압도적인 지지층을 보유한 문재인 정부와, 헌정사상 가장 주변화된 보수 야당이라는 정치 지형의 격변을 남겼다. 촛불은 체제의 안과 밖 경계선을 그었다. 변화가 구조적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경계선이 절대적이지는 않으므로, 한 세대를 넘게 버텨온 진보·보수 양강 구도로 회귀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광장의 주권자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여기까지 판을 깔아주었다. 어느 경로를 탈지는 정치 지도자들 손에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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