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빵집 ‘파리바게뜨’ 매장에 들어서면 안쪽에서 흰색 작업복 차림으로 반죽을 만드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매일 새벽 출근해 그날 가맹점에 진열될 빵과 케이크를 굽는 제빵 기사(파리바게뜨 본사는 제빵사를 ‘제빵 기사’라고 부른다)다. 이들은 파리바게뜨 브랜드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이하 파리바게뜨 본사) 소속이 아니다. 가맹점주가 고용한 것도 아니다. 휴먼테크원, 아람인테크, 국제산업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11개 ‘협력업체’가 이들의 고용주다.

협력업체가 제빵 기사를 고용했지만, 실제로 이들에게 일을 시킨(지휘·명령을 한) 것은 본사였다는 사실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드러났다. 이처럼 노동자가 자신을 고용하지 않은 다른 기업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일하는 형태를 ‘파견’이라고 한다. 현행법상 파견은 비서·타자원·사무원·텔레마케터 등 32개 업종에서, 허가받은 업체만 최장 2년간 허용된다. 제빵업은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9월21일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 4362명과 카페 기사(샌드위치·음료를 제조하는 기사) 1016명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해 11월9일까지 본사가 직접고용하라고 명령한 이유다.

시정 명령 직후 파리바게뜨 본사뿐 아니라 경영계, 경제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고용노동부가 프랜차이즈 업계에 파견법을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파리바게뜨 본사 홍보실 관계자는 “가맹본부로서 가맹점 품질관리를 위해 제빵 기사와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고 노동부에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파리바게뜨 매장에서 한 제빵 기사가 갓 구운 빵을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가맹사업법의 허용 범위를 넘어 실질적 지휘·명령을 하는 사용사업주 구실을 했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파리바게뜨 본사는 통합 채용 사이트에서 (협력업체 8곳에 대한)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 입사 지원을 일괄해 받았고, 면접 합격자를 10주일간 직접 교육한 뒤 평가해 그 점수를 협력업체에 통보한 것도 파리바게뜨 본사였다. 근태관리시스템 역시 파리바게뜨 본사가 운영했으며, 제빵 기사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승진, 임금수준, 본사 입사 여부를 결정한 것도 파리바게뜨 본사다. 

그뿐 아니라 본사 소속 품질관리사(QSV)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출근시간 관리는 물론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시·감독을 했다. 지난 6월 파리바게뜨 본사가 속한 SPC그룹 허영인 회장이 점포를 순회할 때 오전에 매대에 생크림케이크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본사 품질관리사가 카카오톡을 통해 ‘오후 1시30분 전 케이크 생산’과 본사 감사팀·관리자 방문 시 응대 방법을 지시했다. 이런 본사 지침에 따라 제빵 기사들은 출근시간을 앞당기거나 점심을 걸러야 했다. 한 제빵 기사가 단체 카톡방에 물었다. “본사에선 기사들이 점심을 먹고 못 먹고는 관심이 없는 건가요?” 관리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거 같아요. 회사가 회장 거니….”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프랜차이즈 특성상 어느 정도 품질관리에 개입할 수밖에 없더라도, 출퇴근 등 전반적인 노무 과정까지 관리했다면 이는 가맹사업법에서 말하는 품질관리와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가맹사업법이 가맹본부에 요구한 것은 가맹점주와 그 직원에 대한 교육·훈련 내지는 가맹점주에 대한 경영활동 지원이지, 협력업체와 소속 직원에 대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협력업체 11곳 중 대다수는 파리바게뜨 본사 퇴직 임직원이 차린 회사다. 이 업체들의 운영 재원은 가맹점주가 제빵 용역에 대해 지급하는 금액이 약 70%, 본사가 지원하는 금액이 약 30%로 구성된다. 파리바게뜨는 가맹점에 제빵 용역을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각 협력업체와 체결했는데, 계약 이름은 도급계약이 아닌 ‘업무협정’이다. 이를 두고 고용노동부는 “한층 위장된 외형을 형성했다”라고 지적했다.

제빵 기사를 제3의 업체에 고용시킴으로써 본사와 가맹점과 협력업체는 ‘윈-윈’을 이뤘다. 본사는 가맹점 수 감소에 따른 리스크를 외부에 떠넘겼고, 가맹점은 숙련된 제빵 인력을 고용 부담 없이 우월적 지위에서 공급받을 수 있었으며, 협력업체는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겼다. 본사가 ‘최적의 시스템’이라 판단하는 이 구조에서 지워진 주체가 있다. 바로 제빵회사에서 가장 핵심적 업무를 맡은, 빵 굽는 노동자 ‘제빵 기사’다. “보호해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현장에서 만약 사장님(가맹점주)하고 트러블이 생기면 본사에서는 일단 사장님 편이에요. 협력업체도 자기 직원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와서 싸워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요. 이 기사는 빼더라도 다른 기사를 넣어야 하니까 어떻게든 사장님을 다독이려고 해요.” 11년차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 임종린씨(33)가 말했다.

임씨는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의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린 당사자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지난 4월 동료 제빵 기사와 함께 정의당 ‘비상구(비정규노동 상담창구)’ 문을 두드렸다. 이 상담을 계기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문제를 제기해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벌인 게 여기까지 왔다.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는 회사가 어디인지 명확해야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도 분명해진다. 11년차인 임씨는 아직도 자신의 급여명세서에 찍힌 금액을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수당은 왜 그만큼이고 어떤 수당은 왜 깎여 나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단다. 한 달에 6번 쉬었는데 8번 쉰 만큼의 급여가 나와서 협력업체에 물었더니 다음 달에 처리해준다 하고 안 해줬다는 제빵 기사도 있다.

ⓒ김홍구임종린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본사의 ‘불법파견’ 문제를 공론화했다.

특히 연장수당의 경우 가맹점주가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나온다. “일이 너무 많아서 연장 근무를 했어도 저희가 직접 사장님(가맹점주)하고 딜(협상)해야 돼요. 협력업체에 ‘오늘 한 시간 연장했어요’ 하면 ‘사장님(가맹점주)이랑 얘기된 거니?’라고 물어봐요. 점포당 1명이 대부분이고 20·30대 여성 기사들이 많은데 점주에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아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협력업체 11곳이 소속 제빵 기사들의 근무시간 전산 자료를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연장·휴일근로수당 등 총 110억원을 체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제빵 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치거나 상을 당해도 대체인력이 배치되기 전까지 제대로 쉬지 못했고, 산재를 당해도 치료비가 40만원이 넘지 않으면 공상 처리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렇게 제빵 기사의 권리는 본사와 협력업체, 가맹점주 사이에서 겉돌고 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제빵 기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하며 제빵 기사 노동을 통해 이익을 누려온 것은 가맹점주보다는 본사였다. 본사가 제빵 기사에게 지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본사는 가맹점주와의 긴장관계에서 점주를 간접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본사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이 고용 형태를 적극 활용한 측면도 있다. 한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27)는 “주로 본사 품질관리사로부터 개인 카톡을 통해 지시를 받았다. 특히 신제품이 나올 때는 서너 가지를 보여주며 사장님(가맹점주)하고 얘기를 하라고 한다. 점주들은 보통 (기존 제품 판매가 더 수월하기 때문에) 신제품을 별로 안 들이고 싶어 하는데, 품질관리사는 사장을 설득해서 신제품 주문을 하도록 한다”라고 말했다.

신제품 주문 외에도 본사 품질관리사는 ‘품질관리’ 명목으로 제빵 기사들에게 매장에서 물건이 놓인 위치나 밖에 놓인 간판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본사가 협력업체 소속 제빵 기사를 통해 가맹점을 통제할 수 있는 우회 경로가 됐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들은 고용노동부가 본사에 명령한 ‘제빵 기사 직접고용’을 발 벗고 나서 반대했다. 이재광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장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는데 본사 인력이 점포에 상주하게 되면 ‘상시 감시체제’가 완성된다. 우리 점주들은 그것이 가장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재광 협의회장은 “제빵 기사를 본사가 직접고용하면 인건비가 늘어날 텐데 그 부담도 결국 가맹점주에게 전가될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대안을 만들 때에도 제빵 기사는 소외

불법파견 판정 3주일 만인 10월12일, 파리바게뜨 본사-가맹점주협의회-협력업체 3자가 대안을 냈다. 세 주체가 합자회사를 만들어 제빵 기사를 고용한다는 방안이었다. 이들의 ‘합의’ 과정에 정작 당사자인 제빵 기사들은 또 한 번 배제되었다. 당사자 그룹이 조직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인 지난 8월17일 제빵 기사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파리바게뜨지회다. 40명이던 조합원이 500명까지 늘었다. 이 문제를 최초로 알린 임종린씨가 지회장을 맡고 있다. 도재형 교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권리를 가진 구성원이고 논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자꾸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취급하고 해답을 만들 땐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판정 건도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불법파견 판정 이후 ‘프랜차이즈 업계 전반의 문제가 아닌 파리바게뜨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번 불법파견이 파리바게뜨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 특히 대기업이 이익은 취하면서도 상품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일선 직원들의 ‘고용을 털어버리는(데이비드 와일, 〈균열일터〉, 2015)’ 과정에서 확산되고 변형되고 진화하는 간접고용 문제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빵 기사 노동상담을 진행했던 정의당 ‘비상구’의 최강연 노무사는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사건은 프랜차이즈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고용 책임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문제점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로, 프랜차이즈 업계의 변칙적인 고용관계를 개선하는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3년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사했던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제빵 기사 불법파견 문제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과 연결된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 중에 빙산의 일각이라고 본다. 뚜레쥬르도 유사한 고용 형태를 가진 만큼 정부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은 해마다 열리는 ‘SPC 혁신경진대회’에 참가한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를 받은 1명만 본사 입사 기회가 주어진다. 같은 팀에서 합격자를 배출한 임종린씨를 향해 본사 과장이 말했다. “봐, 노력하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있어.” 나머지는 노력을 안 할까? 전국 파리바게뜨 3300여 매장 제빵 기사들은 매일 오전 7시 전에 출근해 하루 9~10시간 일하며 한 달 6일도 채 쉬지 못한다. 이들이 만든 빵을 팔아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영업이익 665억원, 당기순이익 551억원을 기록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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