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어느 봄날, 시민단체로 제보 전화가 왔다. 의대생이라고 밝힌 이 학생은 “수업 교재로 쓰는 법의학 책에 나온 사진이 윤금이씨 같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간부는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구했다. 1992년 10월 사건 당시 경찰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던, 난행(亂行)을 당한 윤씨의 주검 사진이 그 책에 실려 있었다. 저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출신이었다. 지금의 젠더 관점에서 보면 비판의 여지가 크지만, 어찌됐든 그해 봄 이 사진이 대학가에 나붙었다. 범인은 스무 살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 이병이었다. 분노가 다시 들끓었고 한·미 행정협정(SOFA) 개정 운동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주한미군은 범인 신병 인도를 거부하는 등 한국의 사법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경기도 미 육군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케네스 마클도 ‘한국 교도소에 수감될 경우 생명에 지장이 있다’며 자신의 신병 인도를 막아달라는 청원을 미국 대법원에 내기도 했다. 나중에 신병을 넘겨받았는데 한국인 재소자와 똑같은 시설에 구금할 것이냐가 논란이었다. 한·미 합의 의사록에 따르면 미군 범죄자는 운동장이 있고 72평방피트(약 2평) 이상의 독방, 수세식 화장실, 샤워 및 조리 시설, 침대 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당시 이 조건을 갖춘 곳은 천안소년교도소가 유일했다. 그런데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그가 국내 〈코리아타임스〉 영자신문 인터넷 게시판에 “영어 한마디 못하고 재판 내내 졸고 있는 재판관들”이라고 사법체계를 비하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알고 보니 교도소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박근혜 피고인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독방도 주한미군 사범들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당연히 일반 재소자에 비해 방이 넓고 시설도 낫다. 그런데도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인권침해라며 국제법무팀(MH그룹)을 통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박근혜 피고인의 독특한 사법의식을 엿본다. 권력자로서의 ‘긴조(긴급조치) 사법의식’이다. 박정희 시대 헌법과 법률은 이현령비현령이었다. 아버지 ‘박통’의 말이 곧 법이었다. 항명하던 의원들은 ‘남산(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수염이 뽑혔고, 체제에 저항하면 사형 확정판결 뒤 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대 ‘영애’는 그 긴조 사법 시대를 권력자로서 지켜보았다. 내가 스무 살 때 겪은 윤금이씨 사건을 잊지 못하듯 피고인 박근혜의 머릿속에 긴조 사법의식이 각인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야 특검도 검찰 조사도 거부한 데 이어 이제는 재판마저 거부하는 사법 불신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김연희·신한슬·이상원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법정 중계를 지면에 담고 있다. 힘들어도 우리는 긴조 사법의식의 민낯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기록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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