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린 민메이’라고 하면 보통 극장판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의 린 민메이를 떠올린다. 텔레비전판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린 민메이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극장판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시리즈의 대표작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속사정이 있다.

나는 텔레비전판을 한국에서 방영하던 당시 ‘본방 사수’를 했는데, 그 안의 린 민메이는 이전의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애니메이션의 여자 주인공이라고 하면 변신 마법을 쓰는 소녀이거나, 출생의 비밀이 있는 고귀한 존재였다. 린 민메이는 마법 능력이 있지도 않고, 알고 보니 왕족의 후예도 아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식당에서 일하는 소녀였다. 이전에는 보기 힘든 캐릭터였다.

더구나 텔레비전판 전반부에서 린 민메이는 이치조 히카루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우린 친구지?”라는 말로 내내 히카루를 헛갈리게 만든다. 후반부에서는 아이돌 가수로서 몰락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매니저의 횡포에 지치자, 다시 히카루에게 돌아간다. 린 민메이는 이런 자신의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놓고 후회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 시각에선 어장관리라고 욕할 만도 하다. 결국 히카루가 이별을 고하는 결말을 두고, 텔레비전판 린 민메이는 ‘자기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생긴 자업자득’이라는 빈정거림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이우일 그림

텔레비전판보다 극장판 린 민메이가 잘 정돈되어 있다는 평을 많이 한다. 이미 성공한 아이돌이고, 일편단심 히카루만을 바라본다고 설정한 극장판 린 민메이가 극을 진행하기에는 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판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박제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여기서 린 민메이는 순수한 소녀 같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히카루를 향한 사랑을 제외한 나머지 욕망은 완벽하게 제거된 캐릭터였다. 

사람들은 우유부단한 이치조 히카루를 비난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한결같이 히카루를 좋아하는 린 민메이의 모습에 좀 더 집중했다. 흔들림 없이 나만을 바라보고 좋아해주는 존재. 많은 사람이 아이돌 스타에게 원하는 모습과 같은 의미다.

상처로 끝난 사랑을 자양분 삼아 노래를 부르고

‘아이돌 가수로 자아실현할 일 있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인간적인 면모들 역시 아이돌 스타라는 테두리 안에서 소비되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조차도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부르는 극장판 린 민메이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글을 시작한 게 사실이다. 극장판 린 민메이는 자신이 부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히카루가 부탁해서, 그의 행복이 곧 자기의 행복이었기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불렀다.

그에 비해, 세상을 구한 여신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의무를 부여받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소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고 욕을 먹을지언정 언젠가 큰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가수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텔레비전판 린 민메이가 훨씬 단단한 느낌을 준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시리즈의 후일담인 〈마크로스 플래시백 2012〉에서 린 민메이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치조 히카루와 그의 연인이 된 하야세 미사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린 민메이는 상처로 끝난 사랑이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한 ‘노래’의 자양분이 되어준 두 사람에게 감사한다. 인류를 구원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했던 것을 스스로 얻어내고, 끝내 성공한 우주 최고 불세출의 아이돌이 1993년 10월10일, 여기 지구에서 태어났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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