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를 둔 엄마가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다른 엄마들이 줄지어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 “쇼하지 마라!” 하고 외쳤다. 고개 숙인 엄마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부끄러움을 일깨웠다”라고 말한, 지난 9월5일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의 한 장면이다.

ⓒ미디어몽구 갈무리9월5일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 토론회’에서 장애 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주민들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특수학교가 싫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해당 부지는 서울시교육청이 소유한 학교 땅인데도, 총선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여기에 국립한방병원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비난 여론은 이기적인 주민들과 무책임한 정치인 사이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특정 지역에서 유별나게 욕심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다. 헌법에서 보장한 ‘모든’ 국민의 교육권이 현실에서 얼마나 작동하기 힘든지를 보여주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한 주민은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수학교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수학교는 설치돼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다 설치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22년 전 똑같은 말을 하던 이들이 있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발달장애아 특수학교 밀알학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다.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는 1995년 아파트 회의실에서 당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던 주민들과 처음 공식 대면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주민들은 말했다. “이 부지는 초등학교 부지입니다. 이 지역이 과밀 학급인데 특수학교를 지어버리면 우리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합니까. 특수학교 필요하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초등학교 부지에 지으려 합니까? 다른 데 가서 지으세요. 그럼 우리가 부지 확보도 도와주고 자원봉사도 해주고 후원금도 내겠습니다. 여긴 안 됩니다.” 학교 설립 계획을 승인받은 뒤 강남구청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가, 주민 동의를 받아오라는 요구에 주민들을 만나러 간 자리였다(이미 설립을 승인받은 학교 건축 허가에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당시 강남구청장은 허가를 내주고 싶은데 주민들이 재산상 불이익이 있다고 한다며, ‘허가를 내줬다가 지역 집값이 떨어지면 밀알복지재단이 배상할 건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수차례 허가 신청이 반려되던 중에, 법이 개정되어 학교 건축 허가권자가 구청장에서 서울시교육감으로 바뀌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주민 의견을 반영해 설계를 변경해오라고 했다. 밀알복지재단은 학교 정문을 아파트 쪽으로 내지 말라는 등 몇몇 주민 의견을 반영해 설계를 변경한 끝에 1995년 1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학교 건축 허가를 받았다.

건축 허가를 받아도 학교를 짓기가 쉽지 않았다. 1996년 1월15일 학교 기공식을 열던 날, 정형석 상임대표의 기억이다. “현수막을 달고 있는데 갑자기 주민 수십명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너희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학교 못 짓는다’며 욕을 했다. 잘못하면 큰일 날 것 같아 도망갔다. 비참했다.” 그날 이후 대치 상황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공사 장비 반입을 막고 현장 사무소를 점거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했다. 초등학생들도 공사 현장에 나와 주민들과 함께 ‘2부제가 싫어요’ ‘정말 싫어요, 콩나물 교실’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당시 주변 초등학교 두 곳에서 2부제 수업이 실시됐지만 이후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1997년 이후에는 2부제 수업이 없어졌다).

특수학교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

결국 밀알복지재단은 반대 주민을 상대로 출입금지 및 공사방해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 승소했다(1996년 2월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 판결).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전국의 정서장애 아동들이 헌법상 보장된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령 주민들 주장대로 초등학교 부지에 정서장애아 특수학교가 설립되어 입주민 아동들이 2부제 수업 또는 과밀 학급 수업을 받는 등 다소 불편을 겪더라도, “입주민 아동들이 받는 그 불편함이라는 것은 정서장애아가 그에 필요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받는 불편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밀알복지재단의 가처분 신청을 대리한 김주영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그때부터 상황이 반전되었다”라고 회상했다. “그 전에도 ‘나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지 않는다’며 주민이 편지를 보내오는 일은 있었다. 일부 강경한 주민들이 반대를 주도했는데, 가처분 결정과 언론 보도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신문에 나니까 주민들이 (공사장에) 안 나오더라. 전에는 작동하지 않던 공권력도 태도를 바꿔 ‘이제 공사 방해하면 체포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밀알학교는 우여곡절 끝에 첫 삽을 떴다. 1997년 3월에 개교했고, 준공식은 그로부터 넉 달 뒤인 7월에 열렸다. 밀알학교 건립이 늦어지면서 첫 입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교회 건물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갈등이 일거에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반대 주민 6명은 1996년 3월 밀알복지재단에 땅을 판 서울시와 학교 설립 계획을 승인해준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학교설립계획 승인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 모두 ‘특수학교 설립으로 입주민 자녀들의 교육 환경이 악화되었다’는 주민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원동 인근 아파트 주민 825명은 1996년 “밀알학교에 대한 설립 허가를 내줘 교육 환경이 훼손되고 부동산값도 하락해 손해를 입었다”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102억8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역시 패소 판결을 받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그때 반대했던 주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9월23일 찾은 밀알학교는 건립을 격렬히 반대했던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와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당시 반대 집회에 나가고 소송비도 냈다는 ㅅ아파트 입주민 이정민씨(62)는 “집값 떨어질까 봐 반대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지 않았다. 집값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이 아파트가 많이 올랐다. 그게 특수학교랑 상관이 없더라”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은 문제가 없다. 여긴 마땅히 카페가 없는데 학교 건물에 카페도 있고 주민들을 위해서 음악회도 여니까 우리가 많이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장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밀알학교 지을 때만 해도 장애는 선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교통사고도 많고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땐 그걸 생각 안 했다.”

1996년 1월29일 밀알학교 건립을 반대하며 공사 장비 진입을 막는 주민들의 모습.

역시 설립을 반대했다는 ㅅ아파트 입주민 배 아무개씨(54)는 “당시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하는데 입학한 엄마들 말을 들어보니 2부제 수업이고 선생님들도 힘들어한다고 해서 반대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파트 분양가에 초등학교 부지 가치가 들어갔다는 말도 있었다. 저희는 원래대로 초등학교를 지어달라는 거였는데,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강남 주민 님비 현상으로 다뤄서 좀 억울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때의 큰아이가 스물아홉이 된 지금은 어떠냐는 질문에 배씨는 “사실 짓고 나서는 밀알학교 때문에 어떻다든지, 집값이 떨어진다든지 그런 건 잘 모르겠더라. 특수학교 들어서는 것 자체에 약간 두려움도 있었는데 지내고 보니 괜찮았다. 밀알학교 학생 가정이 이사를 오면서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 세대별로 돈을 걷어 어쩔 수 없이 소송비를 냈다는 주민도 있었고, 반대 자체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만난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던 말은 “처음에는 혐오 시설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밀알학교는 ‘혐오 시설’을 넘어 지역 명소가 되었다. 1995년 출범한 남서울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와 교인 수천명이 학교 건립 재원을 마련했다(이 교회는 매주 일요일 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진행한다). 기부 손길도 이어졌다. 유명 건축가 유걸씨가 설계해 KBS 선정 한국 10대 건축물로 꼽혔으며 미국건축가협회 명예상, 김수근 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강남의 여느 대형 교회 같은 외관의 학교 맞은편에는 삼성서울병원이, 담장 옆에는 고등학교가 있다. 인근 아파트와 바로 접하는 건물에 카페와 베이커리, 밀알미술관, 음악홀이 있다. ‘세라믹 팔레스홀’이라는 이름의 음악홀은 중국의 현대 도예가인 주러겅(주락경)이 건물 외벽과 내벽을 도자기로 장식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사IN 조남진밀알학교는 건립을 격렬히 반대했던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와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일원동에서 30년을 거주한 남서울은혜교회 교인 김소영씨(58)는 9월21일 동네 주민 2명과 함께 이날 오전 열린 오페라 공연을 보러 왔다. 김씨는 “처음에는 반대했던 지역 주민들이 지금은 사랑방처럼 이곳을 쓴다. 카페가 싸고 쾌적해 엄마들이 모여서 빵 먹고 커피 마시며 얘기한다. 애들이 누굴 해치지도 않는데 주민들이 잘 몰라서 반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수학교가 이렇게 멋진 학교인지 몰랐다”

하루아침에 지역 주민들과 섞인 것은 아니다. 2001년 부임한 김용한 밀알학교 교감은 “개교 뒤에도 한동안은 주민들과 긴장 관계가 계속됐다. 시설 증축 기간에는 소음과 분진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근 학교 학생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고, 주민들이 자원봉사하면서 학교를 직접 경험하게 하니 지금은 주민들이 학교의 ‘지원 세력’이 되어주었다. 학생이 길을 잃으면 밀알학교 학생 같다고 학교에 연락해 찾아주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반대했던 주민이 학교에 자원봉사를 오기도 한다.

ⓒ시사IN 조남진밀알학교는 카페와 미술관, 음악홀 등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정형석 상임대표는 밀알학교의 사례를 모든 특수학교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원리’는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 강력한 옹호 집단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을 설득하라. 밀알학교의 경우 남서울은혜교회 교인 5000명(대부분 일원동 주민이다)이 ‘홍보대사’가 되어 설득했고, 언론도 설립에 반대하면 안 된다고 사회 이슈화했다. 둘째, 법과 제도가 인식 개선에 유효하다. 공사방해중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진 것이 주민 반대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셋째, 반대하는 주민도 한편으로 이해하고 끌어안을 필요가 있다. 특수학교는 ‘섬’이라는 인식을 개선하려고 좋은 시설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반대했던 주민들이 특수학교가 이렇게 멋진 학교인지 몰랐다고, 잘 몰라서 그랬는데 미안하다고 하더라.” 

밀알학교 사례는 법원이라는 중재자가 대립하는 가치들을 정리했고, 교회 교인과 언론이라는 지역사회·시민사회 옹호 집단이 학교 설립의 당위성을 단단히 뒷받침했으며, 넉넉한 재원으로 주민 편의시설을 지어 개방하는 등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운 좋은’ 사례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는 흔치 않아서, 서울시교육청이 2013년부터 설립을 추진 중인 강서구 서진학교뿐 아니라 서초구 나래학교, 중랑구 동진학교 모두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애초에 통합교육이 잘 실시되면 특수학교 문제가 대두될 일이 없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분리를 전제로 하는 특수교육보다는 통합교육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통합교육 역시 쉽지 않다. 강서구에 살면서 아이를 구로구에 있는 특수학교에 보내고 있는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특수교육법상 장애 학생을 받은 학교가 교육과정을 조정하고 보조 인력을 지원해 통합교육을 내실화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보조 선생님 한 명 배치하기가 어렵다. 입시 위주 공교육 현실에서 통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특수학교를 택하거나, 반대로 특수학교가 부족해 일반학교로 밀려나는 부모도 적지 않다. 결국 통합교육과 특수교육 어느 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2017 특수교육통계’를 보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나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 학생(장애 영아 포함)은 8만9353명이다. 이 중 대부분인 6만3154명(70.7%)이 일반학교에, 2만5798명(28.9%)이 특수학교에 다닌다. 전국 특수학교 173개 가운데 약 16%는 학생 수가 법정 정원을 넘는 과밀 학교이다. 서울의 경우 8개 구에 특수학교가 없어서 이 지역 학생들은 인근 지역으로 2~3시간 걸려 원거리 통학을 한다. 이렇게 특수학교 수가 부족하지만 설립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2002년 종로구 경운학교를 끝으로 특수학교 설립이 끊겼다가 지난 9월1일, 15년 만에 강북구에서 효정학교 하나가 개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특수학교 설립은 유관부서들 간에도 협조가 잘 안 된다. 부서들 처지에서도 그게 다 민원이지 않나. 다른 대안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이은자 부대표는 “장애 학생이 만 17세까지 의무교육을 받도록 정해놓았지만 그에 맞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아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시교육청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주무부처인 교육부가 정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21년 전 밀알학교 공사방해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던 권광중 당시 판사(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는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밀알학교가 개교하던 1997년 발달장애 아들 박창현씨(28)를 입학시킨 졸업생 학부모 최영선씨(59)는 2000년 강남구에 개교한 정애학교가 설립 과정에서 주민 반대에 부딪혔을 때 밀알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주민들이 포클레인 공사를 막아서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그때 들었던 한마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잘 차려입은 40대 분이 저희한테 그랬다. ‘너네 병× 새끼들 이 학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지 보자.’ 그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가 너무 가슴이 아픈데….”

ⓒ시사IN 조남진최영선씨(오른쪽)의 아들 박창현씨(왼쪽)는 밀알학교가 개교한 1997년에 입학했다.
최씨는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장애 학생에게 마음을 나눠달라”고 말했다.

강남구 삼성동 고급 빌라촌 옆에 자리한 정애학교는 개교 17년이 지난 지금 별다른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개교 20년이 지난 밀알학교와 마찬가지다. 특수학교 인접 지역(1㎞ 이내)과 비인접 지역(1~2㎞) 간의 땅값과 아파트 가격 등은 의미 있는 수준의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년 전 ‘험한 꼴 겪으며’ 세운 특수학교에서 아들을 졸업시킨 최영선씨는 그때와 한 치도 변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말했다. “막상 생기고 나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싶다. 달라질 줄 알았는데 지금도 똑같다. 별것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집값 내려가고 그런 것도 없을 테니까 제발 주민들이 장애 학생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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