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일반’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가족이라도 가족 내에서의 위치, 성별이나 나이, 또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명절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전통적으로 모든 문화를 막론하고 가족의 개념은 생물학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형성되어왔다. 이러한 생물학적 연관성은 일반적으로 논의하는 가족 담론에서 한 부분을 의미할 뿐이다. 가족은 생물학적 범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학적 실체이다. 가족이 위치해 있는 다른 사회제도에 의하여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위계 구조들 또는 차별·배제·혐오 문제들이 가족 안에서도 일어난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명절이 되면 미디어는 ‘정상-가족’의 모습을 재생산한다. 정상-가족의 서사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는 지속해서 강화되고 낭만화된다. 낭만화된 가족 서사의 위험성은 그 가족의 장밋빛과 같은 밝은 면만을 부각시킬 뿐, 그 가족이 지닌 다층적이고 어두운 면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데 있다.

명절 때마다 이성애자 부모와 이성애자 자녀로 구성된 가족의 전형적 틀만이 정상-가족으로 고정되는 것은 개인사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현대 사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외면되고 비정상으로 비하되며, 그들에 대한 혐오와 권리 박탈, 인권유린이 가정과 사회를 보호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양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양부모 가족은 물론 한부모 가족, 재혼으로 인한 다부모(poly-parent) 가족, 무자녀 가족, 비혼 가족, 장애인 가족 같은 양태들이 있다. 또한 이성애 가족만이 아니라 동성애 가족도 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는 사실상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면서 우리의 현실 세계를 구성한다.

명절에 행해지는 조상 제사는 대부분 남편과 아버지 집안의 조상이다. 여전히 조상의 범주에 따라서 효의 우선 대상은 남편과 아버지 집안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에도 명절의 그림은 여유롭게 놀고 즐기는 남자 세계, 그리고 온갖 명절 음식과 차례 음식을 마련하느라 ‘명절병’까지 앓으면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여자 세계로 분류된다. 비(非)이성애자인 성 소수자는 언제나 2등 시민의 자리로 몰린다. 그들은 가족에 의하여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규정되며, 가족의 의미와 평안을 파괴하는 위험한 사람으로 가족 내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연합뉴스추석을 앞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앞에서 한국노총원들이 가사노동을 여성만이 아닌 온 가족이 함께하자는 의미로 평등명절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가족 간 소통을 넓히고 가족 내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해 이날 캠페인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명절은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 비장애인 중심의 가치가 작동하면서 가부장제, 나이 차별, 성차별, 장애인 혐오, 성 소수자 혐오, 비혼자 혐오, 재혼 가정 비하의 현실이 재생산되고 확산되는 절기가 되어버렸다. 명절이 삶의 축제성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절기가 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명절의 창출은 ‘명절의 민주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남성·이성애·비장애인 중심의 서사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모든 인간의 자유·평등·연대이다. 명절에 이러한 민주주의 가치를 조금씩 확산하고 실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첫째, 양부모 가족, 한부모 가족, 다부모(多父母) 가족, 무자녀 가족, 비혼 가족, 장애인 가족, 이성애 가족, 동성애 가족 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모두 정상 가족으로 간주되고 포용되는 명절이어야 한다. 둘째, 명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요구되는 엄청난 양의 가사노동을 남자와 여자가 나누어서 해야 한다. 남자에게는 휴식, 여자에게는 중노동을 의미하는 명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아버지-남편-친가-시댁과 어머니-아내-외가-친정 사이에서, 전자가 언제나 우선적 위치로, 후자가 부차적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위계 구조를 평등 구조로 전환하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러한 명절의 민주화가 확산되지 못할 때, 명절은 가족과 친족들이 공동체성을 확인하고 즐기는 삶의 축제가 아니라 지배와 종속, 차별과 배제, 불평등과 혐오가 재생산되고 강화되는 위험한 절기가 될 것이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