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9월15일 영국 런던 파슨스그린 지하철역에서 터진 폭발물의 모습.

9월15일 영국 런던 남부 파슨스그린 지하철역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문제의 시작은 출입문 옆에 놓인 페인트 통이었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페인트 통이 폭발하며 화염이 튀었다. 객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시민 30여 명이 다쳤다. 런던 경찰청은 “사제 기폭장치에 의한 폭발”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에 체포된 테러범은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의 18세와 21세 등 젊은 청년이었다. 이슬람국가(IS)는 선전 매체 아마크 통신을 통해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영국에서 올해 들어 일어난 다섯 번째 테러 사건이었다. 지난 3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인근 자동차 돌진 테러(5명 사망), 5월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 자살 폭탄 테러(22명 사망), 6월 런던 브리지 차량·흉기 테러(7명 사망, 한국인 1명 부상), 6월 런던 이슬람 사원 인근 차량 테러(1명 사망) 등이 잇따랐다. 다섯 차례 테러 가운데 이번을 포함해 네 차례가 런던에서 일어났다.

사실 런던 지하철 테러 때 이용된 사제폭발물은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만일 완벽하게 폭발했다면 더 많은 희생자를 냈을 것이다. 이는 테러범들이 폭발물 제조에 아마추어라는 방증이다. 지난 8월16일 스페인 알카나르의 한 주택에서 일어난 폭발로 1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잔해에서 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TATP), 즉 과산화수소 폭발 물질을 발견했다. TATP는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라 테러범들이 애용한다.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 지난해 3월 벨기에 브뤼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대량 인명 피해를 낳은 폭탄 테러 때 사용되기도 했다. 인터넷상에 폭발물 제조 방법이 널려 있어서 테러범들이 손쉽게 제조에 나선다. 아마추어가 고성능 폭탄을 이용해 대형 테러를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위협적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든 대형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열 번을 실패하다 운 좋게 한 번 ‘성공’하면 그것이 결국 대형 테러가 된다.

유럽 전체가 보이지 않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동안 프랑스·벨기에·영국·독일 등 서유럽의 주요 국가에 집중됐던 테러가 최근 남유럽의 스페인, 북유럽의 핀란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유럽 사람들의 테러에 대한 체감온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는 중무장한 군인이 여행객의 짐을 수색했다. 시내 곳곳에는 자동차 돌진 테러범을 막기 위해 길거리에 방어벽이 설치되었다. 대형 쇼핑몰이나 유명 관광지 길거리에서 이런 방어벽을 발견할 수 있다. 축제 현장이나 공연 행사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반드시 검문검색대가 설치되었고 경찰의 경계도 한층 강화되었다. 시민들은 단 한 번 일어나는 테러가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이른바 테러 강박증에 시달렸다. 대학생인 장클로드 씨는 “사람들은 관광지 등 유명한 장소에서는 큰길보다는 좁은 뒷골목으로 다니고 자전거나 자동차로 이동하기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나도 자전거로 학교를 다닌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시민들은 조금만 이상한 물체를 보아도 테러와 연결시켰다. 9월19일 이날 하루에만 영국 도처에서 폭발물 의심 신고가 빗발쳤다. 먼저 런던의 재래시장인 레든홀 마켓에 폭발 의심물이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즉각 주변을 폐쇄했고 시민들의 통행을 통제하며 1시간가량 수색 작업을 벌였다. 문제의 상자가 폭탄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런던 홀본 지하철역 인근에서도 수상한 물건이 발견되면서 대피 소동이 일어났다. 경찰이 특수대원들을 투입해 현장을 살폈지만 역시 폭발물은 없었다. 잉글랜드 중부 노샘프턴과 밀턴케인스를 잇는 고속도로에서도 폭발 의심 물체가 발견되어 일부 구간이 폐쇄되었다. 이것도 해프닝으로 끝났다. 시민들이 테러 강박증에 시달리다 보니 조금만 이상해도 ‘경찰 신고→출동→수색→문제없음’이 반복되고 있다.

경계 근무하는 군인의 높은 스트레스

검문검색도 강화되어 공항이나 터미널, 지하철에서 수시로 가방을 확인하자는 경찰들이 많다. 이 때문에 시민과 경찰 간의 마찰도 종종 생긴다. 공항 입국은 긴 줄이 늘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유럽 사회 전반에 테러 피로도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사그라질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만 올해 12건의 테러 모의가 적발되었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1월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슈퍼마켓에서 인질극을 벌이려던 일당을 사전에 적발했다. 또 파리 시내 게이 클럽에 테러를 감행하려던 이들도 수사기관에 포착되어 검거되었다. 지난 5월 프랑스 남부 살롱드프로방스 지역의 공군훈련소를 테러 표적으로 삼은 이들도 있었다. 사전에 테러 모의를 적발하는 비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의심이 들면 무조건 경찰이나 군 병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해 수색하거나 용의자를 체포해 조사한다. 출동이 잦아지면서 테러 경계 근무에 나선 군인들의 근무 환경도 열악해졌다.

ⓒEPA테러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낀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에서 육군 공수부대원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지난 8월27일 파리 중심가의 종합 전시장인 앵발리드 앞에서 군인 가족들의 시위가 열렸다. ‘분노하는 군인들의 아내들’이라는 단체는 테러 경계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앞서 지난 8월25일 프랑스군의 특별 테러경계 및 치안유지 작전인 ‘상티넬’에 투입된 여군 병사 한 명이 파리 시내 중심가의 국방부 2층 해군본부 건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군인은 입대한 지 갓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상티넬 작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병력 7000여 명이 투입되었다. 전문가들은 테러에 대한 강박증이 만연한 사회에서 파리에서의 근무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어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테러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은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든 채 관광객 사이를 순찰하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는 군인들을 노린 테러도 빈번하다. 8월9일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서 북쪽으로 3㎞쯤 떨어진 마을에서 테러 경계 순찰을 위해 막사를 나서던 군인들이 차량 테러를 당했다. 파리 시내 한 대형 쇼핑몰 근처에서 만난 프랑스군 소속 마리 일병(23)은 “언제나 긴장감 속에 있다. 테러 경계 근무는 전쟁에 투입된 것보다 더 위험하다. 쓰레기통과 군중 모두 테러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하는 게 피곤하다”라고 말했다.

IS가 시민들의 테러 강박증과 유럽 사회 전반의 테러 피로도 증가를 노렸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기자명 파리·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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