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천안의 중학생 피해자가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목적으로, 혹은 ‘어그로(관심을 끌거나 자극을 가하려고 인터넷에서 하는 악의적인 행동)’를 끌어내려고 글을 올리는 분들은 내려달라”고 호소한 내용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피해자가 또 다른 고통을 당하든 말든 인터넷에서는 피해자의 사진과 신상이 마구 퍼져나갔다.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성희롱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결국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데 온힘을 쏟아야 할 피해자 자신이 2차 피해를 줄이려고 직접 나서야 했다는 게 기막히다. 게다가 가해자가 올린 동영상과 사진을 재미 삼아 퍼 나른 누리꾼을 향한 비난은 넘치지만 그런 일을 방치한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어떤 옥외광고 업자가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포르노든 아동폭력물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틀어댄다. 경쟁 정치인을 겨냥한 근거 없는 인신공격, 새빨간 거짓말, 사회적 약자나 다른 인종을 공격하는 악질적 선전 선동물도 상관없다. 청소년에게 테러집단에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동영상도 ‘오케이’다. 그렇게 광고를 해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오프라인 세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얼마 못 가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만약 인쇄 매체가 이런 일을 저지른다면 100번 폐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세상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오랫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는 한 술 더 떠서 유저들의 클릭 성향을 분석한 뒤 입맛에 맞는 글과 광고만 편집해 제공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양극단으로 갈라놓아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 기술(Filter Bubble· 필터버블)이다. 이런 일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어느덧 그 업자는 세계 최고의 부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인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바로 페이스북·구글·트위터 등 인터넷의 강자이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망라함으로써 기성 언론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게이트키핑(뉴스 결정권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일)이 알고리즘에 권좌를 내놓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언론사가 아닌 단순 기술 기업임을 자처하며 중립지대에 머물렀다. 권력은 넘어갔는데 책임은 사라졌다. 그들은 입주자가 범죄자라도 임대료만 챙기면 된다는 건물주나 다름없었다.

이런 이들의 행태가 지탄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유세 기간 내내 거짓말, 음모론, 온갖 형태의 선동이 홍수를 이뤘다. 대개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한 것들이었다. 막판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드디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는 따위의 가짜 뉴스가 횡행했다. 트위터는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반대자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140자 일제 사격을 퍼붓는 신무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나는 트위터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페이스북·구글·트위터 등은 선거가 끝난 뒤 몇 주간 줄기차게 정보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한 책임을 추궁당했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가 ‘아랍의 봄’ 때 민초들에게 독재자를 쫓아낼 힘을 불어넣었던 경이로운 존재인 동시에, 유럽의 청소년을 이슬람국가(IS) 품으로 인도하는 사악한 안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가 옳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복잡하다”라며 여전히 우물쭈물했다. 미국에서 인터넷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논쟁이 길어지는 중에 전선은 대서양을 건너 독일에서 형성됐다.

ⓒ한성원 그림

지난해 11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독일 뮌헨 공과대학의 시몬 헤겔리히 교수는 메르켈 총리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받고 놀랐다. 총리는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의 감정을 조종하는 데 대한 그의 연구 결과를 듣고 싶어 했다. 2주일 전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막을 내린 참이었다. 총리는 먼저 필터버블, 봇, 가짜 뉴스, 디스인포메이션 같은 유행어부터 이해하려고 했다. 그녀는 특히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는 점을 께름칙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지난 일(미국 대선)은 도입부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라고 심각하게 말했다. 2015년 그녀의 정치 우군이 이메일을 도둑맞은 적이 있었다. 미국과 독일의 정보기관에 따르면 미국 대선 때도 당시 용의선상에 떠올랐던 해커가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메르켈의 태도는 단호했다. 특히 미국 선거에서처럼 2017년 9월 독일 총선 때 러시아를 비롯한 외부 세력이 장난을 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메르켈과 그 우호 세력은 국회에서 ‘불법 콘텐츠’를 즉각 제거하지 않을 경우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 최고 5000만 유로(약 673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불법 콘텐츠’란 증오 스피치, 포르노, 중상과 비방을 망라한 메르켈 정부 특유의 표현이다. 독일 법무부 장관 하이코 마스는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상에서도 민중을 선동하는 범죄행위에 인내심을 발휘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이 법을 앞세워 독일 정부는 총선 기간 내내 소셜 미디어를 압박하는 한편 러시아의 개입을 견제했다.

인터넷을 둘러싼 논란의 뿌리를 캐다 보면 우리는 저 멀리 라디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1938년 10월30일 라디오에서 믿기 힘든 얘기가 흘러나왔다. 외계인이 침공해 미국 전역을 유린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오손 웰스가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의도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제작자들은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심각했다. 전국이 한때 집단 패닉에 빠졌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경찰서로 돌진했으며 두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어떤 이는 아내가 독약을 먹고 자살하려는 것을 뜯어말려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당시에는 미디어 간 통합의 심판 역에 머물렀던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권한이 커졌다. 미국 국민은 인쇄 매체에 비해 파급력이 엄청나며, 공공성이 강한 이 라디오란 매체를 사기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FCC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원했다. 더구나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는 나치와 파시스트들이 라디오라는 신매체를 이용해 국민을 좀비로 만드는 데 재미를 붙여가던 중이었다. 오손 웰스 사건을 계기로 독립기관으로서 권위를 확립한 FCC는 황색 언론, 광고의 범람, 보수 정치세력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미국 방송의 공공성을 비교적 잘 지켜냈다.

인터넷 여론 조작 싸움은 이제 도입부에 있다

쓰라린 교훈을 얻게 된 나라는 물론 독일이다. 독일 국민은 라디오를 통한 히틀러의 현란한 선동에 속아 넘어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과 유태인 학살을 용인했다. 나치에게 얼마나 데었는지 지금도 독일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18년간 집권한 헬무트 콜 전 총리나 12년 가까이 권좌에 있는 메르켈 총리는 달변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인물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1990년대에 일어난 유고 내전을 통해 라디오를 통한 대중 선동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유고 연방 사람들은 티토 대통령이 사망한 뒤 정파 지도자들이 각자 손에 넣은 라디오 방송사를 통해 증오를 유포하자 갈가리 찢기고 말았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도 참혹한 인종 청소의 배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라디오가 도사리고 있었다. 독일이 인터넷에서 불량 콘텐츠가 유통되는 걸 저지하는 최전선에 서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싸움은 이제 도입부에 있다는 메르켈 총리의 판단이 옳다. 인터넷 기술 기업의 총본산이라고 할 미국 연방정부가 라디오 시대에서처럼 강력하게 개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젊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그들은 웹상의 신기한 것들이나 염세적 유머 등을 동원해 자기들의 운동에 윤택을 더한다. 무시 못할 하위문화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란 뜻이다.  

미국 FCC에 수십 년간 진보 정치를 옹호한다는 혐의를 거두지 않았던 보수 진영은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에 강력한 게이트키핑 기능을 부여하는 걸 망설이는 중이다. 1961년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케네디 행정부에 FCC의 공정방송 원칙을 앞세워 우익의 견해를 억누르자는 메모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흑인 운동에 우호적인 트위터의 CEO 잭 도시와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을 자주 드나들었던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그룹 CEO 에릭 슈미트가 객관성이란 탈을 쓰고 보수 의견을 청소하려 들지 않을까 의심한다. 페이스북은 불량한 정보를 거르는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궁여지책을 썼다. 비영리 단체로 저널리즘 연구소인 포인터 인스티튜트와 협력 관계를 맺었는데 보수 진영에서는 여기에도 딴죽을 걸었다. 이 단체가 진보적인 금융가 조지 소로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는 라디오 시대처럼 권위주의 체제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러시아는 인터넷을 통해 선전 선동물과 가짜 뉴스를 유포해 노골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각 나라 선거를 흔들려고 한다. 미국의 한 언론단체에 따르면 러시아 관영매체인 〈스푸트니크〉와 〈러시아 투데이(RT)〉가 이번 독일 총선에 끼어들었다. 정보 유통은 이제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이 인터넷을 건전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어쩌면 러시아 덕분일 수 있다. 과거 소련이 자본주의의 맹점을 많이 보강해줬던 것처럼.

우리도 중학생 피해자가 홀로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권위주의 이웃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인터넷 여론 조작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국정원도 있고.

참고한 활자:〈뉴요커〉 〈타임〉 〈워싱턴포스트〉 〈나의 지구 편력〉(이와나미)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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