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모 제공전국민주연합노조 서울양천지부원들. 오른쪽 두 번째가 한용태씨.
올해 쉰한 살인 한용태씨. 7년째 서울 양천구청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한용태씨의 하루 일과를 보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저녁 7시부터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 있는 쓰레기를 길가로 빼내면 다음 날 새벽 2시가 된다. 새벽 2시30분에 쓰레기 수거 차 운전기사가 오면 그때부터 쓰레기 차에 매달려가면서 모아놓은 쓰레기를 차에 실은 뒤 소각장으로 가서 쓰레기를 비운다. 그걸 일고여덟 차례나 해야 한다. 그리고 예비로 한 차를 더 하면 어느덧 정오. 더위와 추위보다 밥을 먹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어느 날은 라면 한 그릇 먹으려 했다가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치는데 밥 먹을 시간이 있어? 그렇게 일하려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인력시장에 일할 사람들이 줄을 섰어”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뒤부터 한씨는 밥 먹을 엄두를 못 냈다.용역회사는 환경미화원에게 작업복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입다 버린 옷가지를  주워 입었지만 요즘은 살림이 어려워져서 그런지  그마저도 안 나온다고 한다. 연차나 월차 휴가도 없었다. 1년에 사흘, 그리고 명절 때 하루를 쉴 수 있지만, 내가 쉬면 다른 동료가 그 일을 떠맡기 때문에 쉴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17시간 일하고 손에 쥐는 월급은 150만원.
노조 만든 운전기사들은 해고돼

한용태씨처럼 순박하게 일만 하던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노조가 뭔지 몰랐다. 그런데 엉뚱하게 그들을 태우고 다니던 쓰레기 수거 차 운전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사실 중간 관리자 구실을 했다. 용역회사 관리자가 운전기사에게 “(쓰레기를 차에 싣는) 상차원은 인간 취급도 하지 말아라” 하고 교육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그 운전기사들은 같은 노동자로서 청소용역 노동자의 처지를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운전기사 서준석씨와 몇몇 기사가 힘을 합쳐 노조를 만들었다. 전국민주연합노조 서울양천지부. 산별노조였다. 전체 20명 가운데 모두 14명이 가입했다. 회사는, 과거에 만든 유령 노조를 내세워 민주노조 양천지부를 탈퇴하라고 갖은 회유와 협박을 했다. 결국 7명이 떨어져 나갔다.한용태씨는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월급도 30만원 올랐다. 하지만 실상은 월급이 오른 게 아니라 그동안 받지 못했던 시간 외 수당을 받은 것뿐이었다. 노조가 생긴 뒤에는 저녁에 일하는 것도 없어졌다.“노조를 만들고 많이 달라졌어요. 관리자도 함부로 못해요.”

한용태씨는 노동자에게는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청소 일을 하는 한씨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땀에 전 채 쓰레기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자기 모습을 아들이 봤다. 그런 아버지를 피해 집으로 들어간 아들은 엄마한테 “아빠가 왜 꼭 그런 일을 해야 돼?” 하고 물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들이 자기 눈길을 피하더란다. “아들이 창피했겠죠. 그런데 엄마가 잘 얘기했나봐요.” 한씨는 그 소리를 하면서 눈시울이 빨개졌다.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됐다. 한씨는 엊그제 아들 학자금 때문에 생명보험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노조가 생긴 뒤 한씨를 비롯한 환경미화원의 처지는 좀 나아졌지만, 회사는 노조를 만든 운전기사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쓰레기 운송 차까지 팔아버리고 운전기사를 해고했다. 핑계는 ‘유가 급등’. 해고당한 이는 서준석(42) 강준규(43) 김민식(34) 문명훈씨(54) 등이다. 다행히(?) 한용태씨는 해고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일깨워준 노조가 고마워 해고 무효 싸움에 함께한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쭈뼛쭈뼛 주먹을 쳐들며 구호를 외친다. “청소부도 사람이다. 부당해고, 원직복직!”

기자명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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