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섬이다. 처음 가보는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빨갛고 노란 중국풍 간판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양꼬치, 훠궈, 마라탕은 물론이고 서울 다른 거리에서는 찾기 힘든 초두부집까지 즐비하다. 세계 최대 은행 중국공상은행 지점도 있다.

특히 대림역 12번 출구 앞 작은 길은 오롯한 중국이다. 한국말과 한글 대신 중국말과 한자가 공간을 점령했다. 화교들이 모여 사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관광지라면, 이곳은 중국 동포에게 삶의 터전 그 자체다. 주말이면 한국인 커플들이 ‘가성비 최고’라는 양꼬치집이나 훠궈집 앞에 진을 치며 이 섬의 낯선 신비함을 만끽한다.

영화 〈청년경찰〉 속 대림동은 퍽 다르다. 이곳은 범죄자의 소굴이다. 범죄자는 양고깃집에서 일하는 ‘조선족’이고, 숯불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돌아가던 양고기 꼬챙이는 무기로 돌변한다. 이들 범죄자는 가출 청소년의 복부에 주사기를 꽂고 난자를 적취한다. 납치범의 우두머리는 다쳐도 다쳐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신이다. 영화 속에서 택시 기사는 “이곳은 경찰도 잘 안 다니는 위험한 동네”라고 말한다. 영화 속 대림동은 향·소·부곡이고, 게토다.

영화는 성공을 거두었다. 8월9일 개봉한 이래 한 달여 만에 손익분기점 (200만명)의 세 배 가까운 흥행 성적표(560만명)를 받아들었다. 개봉 초기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일고 평론가들의 평점도 박했지만, 두 주인공(박서준·강하늘)의 인기에 힘입어 대박을 쳤다. 〈택시운전사〉 〈공조〉 〈군함도〉에 이어 올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4위를 기록 중이다.

ⓒ시사IN 이명익9월13일 서울 구로구 대림동에 있는 대림중앙시장 앞에 영화 〈청년경찰〉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뜻밖의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중국 동포들이 들고일어났다. 영화가 중국 동포를 범죄 집단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다. 재한동포총연합회, 중국동포한마음협회 등 국내 중국 동포 단체 40여 개가 모여 대림동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다.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진 공개 사과 등을 요구했다. IPTV 등에도 영화 전송이 중단되게끔 소송전도 불사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중국 동포가 이처럼 조직적으로 강한 ‘액션’을 취한 적은 없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건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중국 동포를 범죄 집단으로 묘사한 것은 〈청년경찰〉이 처음이 아니다. 〈황해〉 〈신세계〉 〈차이나타운〉 같은 영화에서 중국 동포는 청부살인, 마약 밀매, 인신매매, 장기 매매를 일삼는 사회악으로 묘사됐다. 그래도 이들 영화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이른바 ‘동북 3성’에서 건너온 ‘외부자’들이었다.

〈청년경찰〉은 대림동과 그 거주민을 대놓고 자극한다. 중국 동포들은 자신과 삶의 터전을 ‘악마화’했다는 점에 분노한다. 영화 개봉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림동에서 벌어진 강력범죄 사례를 모아 만든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일색이었다. 〈청년경찰〉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곽재석 한국영화바로세우기 대책위원장은 “영화 개봉 이후 실제로 대림동을 찾는 내국인들이 줄었다. 사드 문제로 직격탄을 맞은 와중에 대림동 지역경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라고 말했다.

10월에는 ‘옌볜 흑사파’ 다룬 영화 개봉 예정

이런 중국 동포 혐오에는 언론도 크게 한몫했다. 예컨대 〈청년경찰〉 개봉을 앞둔 지난 7월 한 언론이 ‘한국서 활개, 외국 폭력조직 해부’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를 보자. “가장 세력이 크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게 옌볜 흑사파다. 주로 중국 북동부의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3성의 조선족 출신이다. 한국에 들어와 현재는 16개 조직에 2300명의 조선족 흑사파 조직원들이 조직력을 뻗치며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손도끼를 크게 휘두르며 ‘피를 뒤집어쓸 때까지’ 싸우는 잔인함을 보여 타 외국인 폭력 조직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중국 동포 단체는 크게 분노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와 언론사에 항의하고, 결국 이 기사는 인터넷에서 삭제되었다. 그런데 이 기사의 출처를 살펴보면 의아한 점이 눈에 띈다. 정보 출처가 무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한국 경찰이 흑사파 조직원 30여 명을 검거하면서 국내 흑사파 규모가 2000여 명에 이른다고 밝힌 것이 출처다. 국내 조폭 수가 5378명(2014년 경찰청 자료)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때만 되면 똑같은 기사가 확대·재생산된다. 흑사파가 강남 유흥가 장악까지 시도하고 있다는 기사도 돌아다닌다.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다.

이쯤 되면 중국 동포의 범죄 비율이 내국인보다 낮다는 각종 통계는 무의미해진다. 2012년 발생한 오원춘 사건은 중국 동포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 보도된다. 각종 보이스피싱 사건도 한몫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중국 동포가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 20년 넘게 흘렀다. 주로 동북 3성 농촌 지역 출신 동포들이 몰려들면서 공중도덕과 치안에 위배되는 행태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지만, 그동안 이들의 처지도 바뀌었다. 자영업으로 성공한 이들이 여럿이고, 여의도 금융가에도 진출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중국 동포 소유 부동산 비율은 해마다 올라간다. 김정룡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주간은 “동포들 스스로 거리정화 운동에 나서는 등 과거에 비해 대림동은 훨씬 안전해졌다. 그럼에도 미디어는 과거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조선족을 한국의 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년경찰〉을 만든 김주환 감독은 “냉전 시대 미국 영화에서 적군은 항상 러시아였다. 우리나라도 〈신세계〉 이후에 조선족이 적으로 나오는데 편견이라기보다는 영화적 장치로 봐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감독의 말처럼 대중문화 속 중국 동포의 존재는 과연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영화계 한 관계자는 “단언컨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북한과 중국 동포만큼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도 없다. 결국 이들 집단을 대상화하는 것이 흥행의 보증수표가 된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10월 초에는 ‘옌볜 흑사파’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 〈범죄도시〉가 개봉한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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