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확실치 않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어느 순간 내가 열등감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는 점이다. 대략 고등학교 즈음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조금’ 잘해서 들어간 학교에서 나는 공부를 ‘엄청나게’ 잘하는 내 친구들을 옆에 두고 3년을 보냈다. 경험에 의거해 단언하는데, 공부도 재능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결론 낸 뒤 나는 미친 듯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결정해야 했다. 음악을 직접 할 것인가, 아니면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직업을 찾아볼 것인가. 이 갈림길에서도 열등감에 휩싸인 나는 재능 부족을 핑계로 후자를 택했다. 어떻게든 음악과의 끈을 이어가고자 이후 음반사에 입사해 3년을 보냈다. 잡지에 글도 쓰고 방송 출연도 가끔씩 하면서 나름 외연을 넓혀갔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책을 3권 냈다. 방송에 출연했고, 이곳저곳에 글을 쓰고 있다. 진심으로, 이게 최대치라고 할 만큼 일에 푹 빠져서 살고 있다. 심지어 가끔 내가 쓴 글에 만족하기도 한다. 고백하건대,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게 찾아올 뿐, 대부분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왜 음악평론가는 자격증이 없지? 나 같은 인간은 무조건 불합격일 텐데.” 결국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애정은 곧 능력이다”라는 문장이 기억난다. 저 말을 간절하게 믿고 싶었다. “글은 엉덩이가 써주는 것”이라는 문장도 떠오른다.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양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봤건만, 괜찮은 표현과 문장은 아주 가끔씩만 내게 강림했다. 그러면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의 책을 사서 되풀이해 읽었다. 평론집으로 한정해볼까. 나는 아직도 〈몰락의 에티카〉를 처음 읽었을 때 절망감을 잊지 못한다. 평범한 축구 선수가 메시의 플레이를 직접 봤을 때 기분이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만큼 열등감 키우기 딱 좋은 환경을 지닌 곳도 없다. 효용 가치만을 숭앙하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에게 열등감 따위 버리라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유혹했던 어른들의 위선을 기억한다. 뱀의 혀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이 사회를 바꿀 능력 따위 있을 리 만무하다. 이 열등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타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식으로 열등감을 해소하진 말자고 다짐했다. 긍지를 갖지는 못할지언정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고 거듭 결심했다.

‘기분 좋은 열등감’ 느낄 그날을 기다리며

음악평론가 차우진은 그의 책 〈청춘의 사운드〉에서 음악 비평을 “(본질적으로 모호한 속성을 지닌 음악을) 잘 더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른 말로 바꿔보면 음악이란, 흔들림 없는 진실이 아니라 언제든 흔들릴 여지가 있는 가능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냉정하게, 나는 아직도 더듬거리는, 능력이 한참 모자란 쪽에 속한다. 가능성을 포착하는 재주가 영 서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제공파업으로 방송 중단된 〈배철수의 음악캠프〉 DJ 배철수씨(아래)의 클로징 멘트가 화제가 되었다.

차우진 평론가만이 아니다. 탁월한 통찰력으로 깊이 있는 안목을 길어올릴 줄 아는 음악평론가들이 내 주변에 여럿 활동 중이다. 그들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얕은 재능에 한숨짓고, 애정이 능력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걸 절감한다. 비단 음악 평론뿐일까. 내게 일을 통해 자극을 줬던 PD와 작가들, 그들이 현재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부디 그들이 다시 내게 ‘기분 좋은 열등감’을 선물해주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미디어와 그 미디어의 구성원을 향한 건설적 비판은 평상시에 얼마든지 해달라. 지금은 비상시이고, 비판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때다. 그나저나 이 문장 하나 쓰려고 참 먼 길을 돌아왔다. 역시나, 재능 부족이다. 아무튼 MBC 파업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쉬고 덕분에 나도 쉰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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