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이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한 8월29일 아침 6시7분(NHK 발표), 일본의 모든 텔레비전 방송사는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소방청의 전국순간경보시스템 화면을 내보냈다. 이 순간, 지지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0%조차 무너졌던 아베 신조 총리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마이니치 신문〉의 7월22~23일 여론조사에서 아베 지지율은 26%를 기록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기지개를 켜려는 이들이 또 있다. 대표 인사가 아베 정권과 재계의 다리 노릇을 하는 규슈의 재벌 아소 가문의 아들, 아소 다로 재무상 겸 부총리였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같은 날 열린 자민당 내 자신의 계파 모임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회에서 설화를 자초했다. “(정치인은) 결과가 중요하다. 수백만명을 죽였던 히틀러는 아무리 동기가 옳다 해도 안 된다.” 그의 발언은 “그럼 히틀러의 ‘동기’는 옳았다는 이야기냐”라는 비판을 받았다. 파문이 확산되자 문제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총리 재임(2008년 9월~2009년 9월) 때부터 망언을 일삼았던 그가 ‘자숙 모드’를 깨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날 아소 다로 부총리의 설화는 일본 극우 정치 세력과 그들의 지지 기반인 군수업계가 기사회생의 전기를 맞아 폭주를 재개하려는 복선으로 비춰졌다.

군수업계의 환호성은 예상보다 빨리 들렸다. 방위성은 8월31일 ‘2018년도 예산 요구 개요’를 발표했다. 방위성의 내년 방위비 예산 요구안에 따르면, 미사일방어(MD) 관련 경비로 최소 2911억 엔(약 3조3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예산은 MD 관련 직접 경비(1791억 엔)와 인공위성 등 우주 공간에서의 MD 관련 경비(1120억 엔)로 구성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아베의 방위비 증가 정책은 최근 이뤄진 게 아니다. 북한 미사일이나 북핵이라는 ‘외부적 자극’에 대한 반응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의미다. 아베와 군수업계의 관계는 연원이 깊다.

ⓒAFP PHOTO아베신조일본총리는북한핵실험에대해“절대 용인할 수 없다. 강하게 항의한다”라고 말했다.

2012년 12월 출범한 제2기 아베 정권은 출범 1년 만인 이듬해 12월17일 이른바 ‘국가 안전보장 전략’을 발표했다. 전략에는 세계의 주요 ‘플레이어(player)’인 일본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일본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군사 안보 측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이 선언에는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아베의 야망이 반영되어 있었다. 야망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국가 안전보장 전략’이 실행된 뒤 2014년 4월 일본 군수업체에 채워져 있던 유일한 족쇄인 ‘무기 수출 3원칙(공산권, 유엔 결의 등에서 무기 수출을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의 당사국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하는 일본의 법령)’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으로 무기 수출 독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무기 수출이 금지되어왔다. 하지만 아베는 ‘무기 수출을 통해 방위산업을 육성한다’며 무기 수출 3원칙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개정했다.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던 것을 반대로 원칙적으로 수출이 가능하도록 바꾼 것이다. 이후 일본 정부가 나서서 방위산업체들의 해외 무기시장 개척을 독려했다. 이 호기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전투기 ‘제로센’을 만든 미쓰비시 중공업이 놓칠 리 없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2014년 5월 ‘방위·우주 분야 신사업을 강화하겠다’며 ‘육·해·공의 시너지를 통한 국내 방위 분야에서의 수주 확대’를 도모하는 사업 계획을 내놓으며 화답했다. 이 계획에 따라 미쓰비시 중공업 고마키미나미 공장에서는 F35의 최종 조립 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다.

 

아베 정부와 1등 군수업체 미쓰비시 중공업의 ‘콤비네이션 플레이’는 이후 더 강화되었다. 2015년 4월29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마친 아베 총리는 사사가와 평화재단이 주최하는 안전보장 포럼에 참석했다. 사사가와 평화재단은 일본의 A급 전범 용의자 출신 사사가와 료이치가 설립한 친일 싱크탱크다. 아베는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외교·안전보장 정책은 아베노믹스와 표리일체입니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제를 성장시키고 GDP를 늘리겠습니다. 그러면 사회보장을 위한 재정 기반을 강화할 수 있고, 당연히 방위비를 확실하게 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안전보장 정책’과 ‘방위비 증가’를 정부 수장이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 발언은 일본 재계에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미 미쓰비시 중공업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록히드마틴 사의 F35 기체 일부 조립을 맡았고, 미쓰비시 전기는 비행기 레이더 부품 제조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 IHI도 엔진 부품을 담당하는 등 일본 재계가 속속 차세대 전투기 프로젝트라는 ‘빅게임’에 합류한 상태였다.

 

ⓒAP Photo2015년 5월1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국제 방산전시회에서 관람자들이 일본 ‘소류급’ 잠수함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2015년 5월14일 아베 정권은 전쟁법안(안보법제)을 국회에 상정했다. 13만명이 국회를 포위하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났지만 그해 9월19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한 안보법제가 의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일본 자위대는 일본과 동맹·우방 관계에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과 동일하다고 간주하고 대응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은 9월15일 ‘방위산업 정책 실행을 위한 제언’을 발표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게이단렌은 “정부의 관련 예산 확충과 실현을 위한 강한 리더십 발휘가 요구된다. 자위대의 국제적인 역할이 확대될 테니 자위대의 활동을 지원하는 군사산업의 역할도 커질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게이단렌은 또 “무기 수출이 국가 전략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게이단렌의 주장이 나온 지 정확히 나흘 뒤 안보법제가 통과되었다. 일본공산당은 “일본이 전쟁을 위한 재무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은 유지될 수 없다”라는 ‘포츠담 선언 11항(1945년 7월6일)’을 들어 적극 반대했다. 일본공산당은 안보법을 ‘일본판 군산복합체 만들기’ 법안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최근 이어진 북한의 ‘폭거(아베의 표현)’를 반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도시샤 대학 하마 노리코 교수는 지난해 12월4일 일본저널리스트회의 강연에서 ‘외교·안전보장 정책과 표리일체’인 아베노믹스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 가지 근거를 들었다. 아베 총리 본인의 부정부패 혐의, 강하게 부정하던 분배 정책을 갑자기 추진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 결여, 발표할 때마다 명칭이 길어지는 경제정책 실패다. 물론 아베노믹스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반론도 있다.

아베 정부가 몰락하더라도 군수산업계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끝없는 ‘자기운동(motio autonomica)’을 거듭하는 군산복합체라는 괴물은 안보 환경 악화로 더 성장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바로 괴물이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아베로 대표되는 극우 정치세력과 군수업계가 원하는 일본 재무장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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