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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국방 의무를 분담하라는 말의 속내?

최태섭 (문화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9월 21일 목요일 제5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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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생긴 지 좀 된 말이지만 ‘군무새’라는 신조어가 있다. 인터넷상의 논쟁에서 남자들이 앵무새처럼 군대 얘기만 한다는 것을 비꼰 단어다. 실로 군대를 둘러싼 성별 간의 논쟁은 PC 통신 시절부터 유구하게 반복되고 있다. 젠더 이슈로 논쟁이 벌어지면 그게 어떤 문제든 상관없이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 오죽하면 여자들 중에서도 ‘이럴 바에야 차라리 군대 갔다 오겠다’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을까.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여성징병제를 시행하자는 청원 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도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분담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 안다. 전역한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말은 순화된 표현에 가깝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욕설을 동원해서 핏대를 세우며 설명하게 되는 그 군 생활을 여자들도 맛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유를 구속당한 채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유쾌한 경험이다. 재화·시간·신체·관계가 모두 통제의 대상이 되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풀릴지는 철저히 운에 달려 있다. 당장 내 한 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과 국제관계의 동향, 국내 정세, 다른 부대원의 일탈과 지휘관의 변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국방부가 군 생활에 대해서 뭐라고 광고를 하건 간에, 현재 한국의 군대에서 그 시간은 박탈과 무력감의 시간이다.

ⓒ정켈 그림

하지만 남자들이 이 경험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매우 뒤틀려 있다. 이들은 군대가 개선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여자들을 군대에 보내지 못해 안달이다. 군에는 약 1만명에 달하는 여군이 활약 중이며, 그중에는 장성에 오른 이들도 있다. 남자들은 여군이 사병이 아니라 간부이고, 편안한 보직을 맡기 때문에 진짜 군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교관의 말 한마디에 바들바들 떠는 훈련병 시절에도 지나가는 여군 간부의 얼굴이며 몸매를 품평하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


만에 하나 한국에서 여성 징병을 시행한다면 지금의 군대는 물구나무 수준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화장실도 분리되어 있지 않은 건물, ‘사나이’로 점철되어 있는 군가, 여성을 전우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사와 간부들, ‘성폭행을 저지르느니 성매매를 하라’는 교육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성 인식과 성 문화. 내가 여성 징병 청원을 더욱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여자도 동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치르며 육체적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성차별적 문화를 전제하여, 여성으로서의 곤경을 겪어야 한다는 숨은 저의 때문이다. 논란 속에서도 계속 연재 중인 웹툰 <뷰티풀 군바리>가 묘사하는 성 착취적인 욕망이 여성 징병의 목소리에 포함되어 있다.

‘여성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 분담하라’는 포장지를 벗기면…


사실 남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여성 징병이 아니다. 여성들이 남자들의 군 경험을 대단하게 생각해주면서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돌봄과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2등 시민’으로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나를 괴롭힌 선임도, 간부도, 휴가를 자른 지휘관과 ‘고문관’인 후임도 모두 남자다. 국방부 장관, 참모총장, 병무청장을 비롯해서 남자만을 징병의 대상으로 삼았던 ‘건국의 아버지’들도 남자다. 왜 자꾸 이상한 곳에 가서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고 있는가? 이쪽은 무섭고, 저쪽은 만만해 보여서라는 답 말고 다른 게 있다면 부디 말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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