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부시가 깜짝 방문한 안바르 지역은 수니파 반군의 핵심 근거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에게 우호적인 지역이 되었다.
지난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 신문·방송의 톱뉴스는 이라크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미국인이 이라크 얘기만 나오면 냉소적 반응을 보이거나 외면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년간 재건비용으로 퍼부은 돈이 5천억 달러에 달하고, 8월 말 현재 미군 희생자가 3천7백명이 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황이 좀체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실제로 미국 의회 산하 정부감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라크 상황 개선의 지표가 되는 18개 가운데 3개만 ‘합격’ 판정을 내렸다. 또 미국의 ABC 뉴스,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방송이 이라크 현지인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이라크인 10명 중 7명이 부시 행정부가 성공 사례로 꼽고 있는 미군 증강이 오히려 더 치안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꿈쩍 않던 부시 대통령이 수상하다. 이라크 정책을 전환할 뜻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첫 전조는 지난 9월3일 나타났다. 그날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인접한 안바르 지역을 전격 방문했다. 올봄 이라크 치안 개선을 위해서라며 미군 3만명을 증파했는데, 그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그는 “이라크 증파 계획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계속 이런 진전을 보이면 지금보다 적은 규모의 미군으로도 치안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며, 감군 가능성을 슬쩍 흘렸다. 아니나 다를까. 9월13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 미군을 내년 7월까지 최고 3만명까지 감군해, 13만명 선에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 종파 지도자 포섭 중?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정책 변화는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끌고 있는 이라크 정부와의 거리 두기이다. 부시 행정부는 과거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핍박받아온 다수 시아파 출신의 말리키가 이끄는 이라크 중앙정부를 철석같이 지지해, 통합된 ‘민주 이라크’를 건설하려 했다. 특히 이라크전을 입안하고 실행했던 부시 행정부 내의 네오콘들은 중동의 심장부 이라크에 시아파와 수니파 그리고 쿠르드족 등 3대 종족으로 이뤄진 다종족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 이라크 주변국에도 확산시킨다는 거창한 목표를 꿈꿨다.

그런데 요즘 부시 행정부가 이같은 목표를 접은 것 같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중앙정부보다는 각 지방 종파 지도자들을 각개전투 식으로 포섭하고 포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대표적인 예가 부시 대통령이 전격 방문한 안바르 지역. 수도 바그다드와 이웃한 이곳은 수니파 반란군의 핵심 근거지이다. 미국은 이 지역에 해병대를 파견하고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재건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동시에 수니파 지도자들을 포섭했다. 그 덕에 지난해 매달 수천 건씩 터지던 테러 공격이 지금은 수백 건으로 줄어들 만큼 치안도 좋아지고 지역 경제도 살아났다. 다시 말해 시아파의 말리키가 이끄는 중앙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수니파 반군의 거점이었던 안바르를 성공적으로 접수한 것이다.

전직 외교관 출신으로 지난해 〈이라크의 종언〉이라는 책을 낸 피터 갈브레이스는 “부시가 재건하려던 통합 이라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시아파와 수니파, 그리고 쿠르드족은 단 한 번도 이라크 공통의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워싱턴 조야에 부쩍 이라크의 ‘연성 분할’(soft partition) 혹은 연방제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말리키가 이끄는 약체 이라크 중앙정부를 무작정 지원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라크 전역을 3대 종파가 이끄는 연방제로 끌고 가자는 것이다. 이 연방안은 민주당 소속 상원 외교위원장이자 대선 주자인 조지프 바이든 의원이 주장했다.

부시, ‘이라크 연방’ 언급 안 해

에드워드 조지프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교수는 “좀더 안정적으로 이라크를 건설할 수 있는 길은 국토에 대한 연성 분할뿐”이라면서 “이라크 내 세 종파가 각자 주요 지역을 관할하면서 치안을 유지하고, 지방정부를 꾸려가게 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현 말리키 이라크 정부가 실패해 이라크가 종파 간의 유혈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연성 분할은 필연이라고 보고 있다.

ⓒReuters=Newsis9월3일 이라크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이 누리 알 말리키 총리(왼쪽)와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악수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나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 나아가 페트레우스 장군을 비롯한 최고위 군 수뇌부는 공식적으로 이런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이라크 중앙정부에 덜 의존하면서 자립성이 강한 지방의 종파 지도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이라크 현지의 한 고위 미군 지휘관은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중앙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면 지방 인사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셈인데, 어쩌면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라크가 과연 연방제로 갈지 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완전한 자립 화해 정부를 구성하기 전 미군이 철수할 경우 내전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아이보 달더 선임 연구원은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면 이라크는 과거 보스니아나 르완다, 수단에 비할 바 없는 대규모 유혈 내전 사태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지난 1920년대 이래 최악의 외교 실정”이라고 지적한 뒤 “추후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외교 실정을 수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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