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3 생활’을 견뎠다. 시험을 망쳤다고 우는 친구 앞에서 표정관리를 하는 데도 익숙해졌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경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며 내 안에 걸었던 주문은 하나였다. ‘다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서야!’

ⓒ김보경 그림

대학에 와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임용고시를 봐야 했던 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혔던 ‘고3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노량진 학원과 독서실만을 오갔다. 힘들 때면 내가 왜 교사가 되고 싶은지 기억하기 위해 한 대안학교 교가인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를 주문처럼 부르곤 했다. 임용고시를 한 달 앞둔 어느 날 갑자기 그 노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왜 교사가 되려고 하는가, 괴물이 된 건 아닌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임용고시에 떨어지는 건 아닌가…. 온갖 생각에 노량진 한복판에서 펑펑 울었다.

그해 임용고시는 출제 경향이 완전히 바뀌어 ‘장수생’은 떨어지고, 나처럼 ‘초시생’이 붙는 이변이 일어났다.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까지 불거지면서 온라인 카페까지 생겼다. 승자독식의 논리 앞에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묻혔고, 나는 교단에 설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임용고시의 불합리성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가장 황당한 게 선발 인원, 그러니까 ‘TO’ 문제였다. 40명을 뽑을 때는 40등을 한 사람도 교사가 될 수 있다. 1명을 뽑을 때는 2등을 한 사람도 교사가 될 수 없다. 매년 달라지는 TO에 대해 매년 불합리하다는 말이 나왔다. 수험생들은 그 문제를 제기할 힘도, 여력도 없기에 그대로 묻혔다. 수험생일 때는 임용고시의 문제점에 대해 논문을 쓸 수 있을 만큼 불만을 가졌다. 합격되고 나니 현재의 나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라도 제도의 불합리성에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만든 교육 당국은 갑 중의 갑이 되었다. 사실 교육 당국이 교사 수급에 관심이 없어도 되었던 것은 임용고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의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평가 이외에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임용고시 준비생과 기간제 교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일까?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시험을 치른 후, 한 번에 합격하는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 대다수 학생은 기간제로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다시 임용고시를 보기도 하고, 떨어지면 다시 기간제 교사가 되기도 한다. 서로 적일 수 없는 둘은 사실 한 사람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 둘의 갈등만 부각되고 책임져야 할 교육부 책임은 가려졌다.


‘기피 대상 1호’ 업무 도맡은 기간제 교사들

기간제 교사에 대한 정규직 전환 이슈가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임용고시를 교사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성스럽고 신뢰성 높은 제도인 양 이야기한다. 임용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들을 교단에 설 수 없는 무자격자인 양 말한다. 그 논리라면 기간제 교사에게는 제한된 일만 부과하거나 제한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장에서 기간제 교사들은 정규직 교사들의 업무는 물론 ‘기피 대상 1호’인 담임과 온갖 행정 업무까지 도맡아 한다. 일을 하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기간제 교사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다. 기간제 교사들은 계약 해지, 그러니까 잘리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기피 업무를 맡아줄 때는 ‘임용이 되어야 할 필요한 사람’이었다가 제대로 된 처우를 요구하니 자격 시비에 휘말린 동료 기간제 교사의 등을 본다. 17년 전 임용고시 성적을 들먹이며 전문성 운운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기자명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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