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여성혐오 문화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청소년들이 여성혐오를 주제로 쓴 짧은 논술을 보면 온라인을 통해 학습한 논리를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즘 논쟁이 학교로 번졌다. 경기도 위례신도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성평등 수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슈는 빠르게 성 대결로 치달았다. 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어지고 찬반으로 갈린 민원이 ‘폭탄’처럼 정부 부처에 쏟아졌다.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SNS에서는 해시태그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를 통해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모으고 있는가 하면, 이를 ‘이념 교육’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높다.

비슷한 시기, 유튜브에서는 여성 유튜버의 신상을 털어 살인을 예고하고 그 여성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중계하는 방송이 논란이 됐다. 살인 예고를 엔터테인먼트화한 것으로, 사건은 범칙금 5만원으로 종결됐다. 논란을 주도한 김윤태와 신태일이라는 유튜버의 구독자 수를 합치면 100만명이 넘는다. 두 사람은 한때 ‘느금마엔터테인먼트’(느금마는 너네 엄마를 뜻하는 사투리를 줄인 말로 엄마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일명 ‘패드립’)를 이끌었고, 10대들 사이에서 ‘모르면 왕따’일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건’에는 맥락이 있다. 학교와 10대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교실에서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각종 기행과 혐오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1인 방송이 10대들의 ‘또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그 수위와 정도도 높아졌다. 시대를 막론하고 ‘나쁜 문화’가 있어왔지만, 그 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일부가 아닌 다수가 되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개의 교사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교육보다는 ‘관리’를 택한다. 이 지점에서 혐오를 놀이처럼 여기는 또래 문화에 적극 개입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 교사로부터 시작됐고, 거센 백래시(backlash:반발)를 불러왔다. 그 덕분에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왔던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이 사실상 처음으로 교육계 안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금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사회에서는 ‘맘충’, 교실에서는 ‘니애미’

“센세, 앙 기모찌(気持ちいい:선생님, 아 기분 좋아).” 조용하던 종례시간에 맥락 없이 터진 한 중학생의 목소리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50대 담임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얘, 그게 무슨 뜻이니?” 다시 한번 교실이 왁자지껄해졌다. 일본어를 따로 공부하는 학생이 “그냥 기분 좋다는 뜻이에요”라고 얼버무렸다. 교사는 교무실에 내려와 단어를 검색해보고서야 그 말이 일본 포르노에서 출발한 말이라는 걸 알았다. 한번 귀에 박히자 그때부터 그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등하굣길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쓰고 있었다.

서울 ㄱ중학교의 8년차 교사 이누리씨(가명·33)는 기모찌가 교실에서는 더 이상 ‘포르노발’ 언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거요? 완전 탈의미화됐어요. 애들이 한창 많이 썼던 말 중에 ‘개이득’이라는 게 있는데 그거랑 같은 맥락인 거죠. 이제는 오히려 의미 부여해서 혼내는 사람이 이상해져요.”

엄마라는 존재는 사회에서는 ‘맘충’이고 교실에서는 ‘느금마’ ‘니애미’다. 괴롭히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의 엄마 이름을 알아내 나쁜 의미를 담아 ‘○○(엄마 이름)스럽다’고 말한다. 그렇게 커진 싸움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까지 열게 만들었다. 올해 초 한 학교에서는 한 반 24명 중 9명의 학생이 패드립으로 처벌받았다.

누가 학창 시절을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라고 했나. 지금 교실에서는 낙엽 대신 패드립 한마디면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방학 중 있었던 일을 나누는 자리에서 미국을 다녀왔다는 학생이 갔던 곳을 얘기하다가, 마이애미 지명에서 ‘애미’를 강조해 말하면 학생들은 자지러진다.

서울 ㄴ중학교의 28년차 교사 오희경씨(가명·53)는 “엄마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 알면 정말 놀랄걸요”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관련된 문학작품을 가르치는 일도 어렵다. 학생들은 패드립이 떠올라서 집중 못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학기 초에 시 창작 과제를 내줬더니 ‘우리 집에는 아빠가 있고/ 니애미가 있고’라고 써온 학생도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는 “‘엄마지만’ 나에게 잘해준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엄마가 ‘좋은 사람’이면 이상하다는 문화가 교실에 만연해 있다. 애초 패드립이 상대방을 모욕하기 위해 시작됐다면 이제는 자해하듯이 자신의 엄마까지 모욕하는 분위기로 번졌다.

“이 사회에서 돌봄노동을 여성이 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어요. 훈육이 여성을 통해서 이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억압하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게임하지 마라, 공부해라…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얘네 입장에서는 다 여자거든요. 그러다 보니 엄마를 대상으로 한 모욕적인 말이 쿨하고 멋있는 것처럼 된 거예요(오희경 교사).”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6월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 11명이 수업 중에 집단 자위를 해 논란이 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6월 교사 6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으로부터 여성혐오 표현을 접한 교사가 37.6%나 된다. 남학생들은 자신의 성별이 권력임을 직감적으로 안다.

서울 ㄷ초등학교의 9년차 교사 정소영씨(가명·34)는 언론에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교사들이 말 못하고 지나가는 자잘한 성희롱이 무수하다고 말했다. “가슴이 크다” “다리가 예쁘다” 같은 말을 교사에게 직접적으로 하거나 같은 반 여학생을 대상으로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외모 순위를 매기는 일은 ‘애교’다. 지하철 임신부석은 ‘질싸(질내 사정) 인증석’이고, 임신 중인 교사는 섹스한 교사의 다른 말이다. 정씨 역시 지난해 육아휴직 중 학생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자신의 임신과 관련된 ‘섹드립’을 경험했다.


■ 방관하거나 각개전투하는 교사들

2015년 10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녀 청소년이 생각하는 여성혐오의 제1원인은 여성가족부(53.8%)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함경진 활동가는 “지금 다시 조사하면 ‘페미니스트’나 ‘메갈리아(메갈)’가 1위로 나올걸요?”라고 말했다. 함씨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면 제일 먼저 듣는 질문이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쌤, 여성가족부에서 나왔어요?”였다면, 최근에는 “쌤, 메갈이에요?”라고 묻는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여성가족부와 메갈리아와 페미니스트는 모두 한 묶음으로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서울의 ㄹ중학교 학생들이 여성혐오를 주제로 쓴 짧은 논술을 보면 온라인을 통해 학습한 논리를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제를 폭넓게 여성혐오로 줬을 뿐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최근의 유튜브 살인 예고 사건과 메갈리아를 주제로 썼다. “신상 털리며 손해 보는 행동은 안 하는 게 좋겠다”부터 “남성은 군대를 가고 여성은 출산을 하기 때문에 여혐과 남혐은 무의미하다”까지, 그 사이에 별다른 설명 없이 “나는 메갈을 혐오한다”라는 문장만 적혀 있는 답안지도 있었다. 한 학생의 답변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메퇴지’ ‘메오후’ 두 단어는 모두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의 유저들을 욕할 때 쓰는 혐오 표현이다. 메갈리아는 남혐의 메카로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는데 이는 메갈 유저들이 여러 곳에 나타나 한남거리며 분탕질을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베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서는 메갈을 적대시한다. 그들은 메갈리아를 피해망상에 젖은 찌질이로 보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렇다. 왜냐하면 메갈은 인터넷상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양성평등을 외치고 한국 남자는 쓰레기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고칠 생각은 없나 보다. 남혐의 성지가 이 수준인데 나머지는 말 다했다.”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자체적으로 연구회를 조직하거나 직무연수를 개설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도 있지만 그 수는 여전히 적다.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를 구하기도 어렵다.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교사들은 스스로 교안이나 교재를 개발하거나 자신의 수업시간을 쪼개 특강 시간을 만든다. ‘쓸데없는 짓’ 한다고 여기는 학부모들의 반발도 견뎌야 한다. 한 교사는 “성평등 교육이 제도화된다고 하면 제일 먼저 들고일어날 집단이 어디일 거 같으세요? 학부모일걸요”라고 말했다. 특히 남학생들이 느끼는 ‘역차별’의 감각을 학부모들도 체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환경연대 초록상상 제공동북여성환경연대 활동가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젠더스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성평등기금 지원 사업이다.

그나마 관심 있는 교사들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ㅁ고등학교 2년차 교사인 박신영씨(가명·29)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을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성 교사를 종종 만난다”라고 말했다. 이퀄리즘은 온라인상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이념으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되곤 했다.

이처럼 현실은 젠더 이슈와 관련해 스스로 자기 점검을 해보거나 따로 교육받은 경험이 없는 교사가 다수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사회의 변화보다는 더디지만 교사 내부의 분위기도 변하고는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선생님들이 온라인 공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특별한 관심이 없다. 온라인에서 생산된 많은 것들이 현실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도 애들이 철없이 하는 말 정도로만 이해하는 수준의 교사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고 있는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씨는 “교실 내 여성혐오 문화는 결국 어른들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만나는 ‘어른’인 교사들은 현실 감각이 부족하고, 학교에서 시행하는 젠더 관련 교육은 ‘이벤트성’으로만 진행된다. “10대 청소년기가 이런저런 걸 실험하는 때거든요. 나쁜 말이나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던져봐요. 상대의 반응을 보려고. 이럴 때 주변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교육인데 학교는 어떻게 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관리’에만 급급하죠. 그러다 보니 혐오 발언을 하는 게 애들 입장에서는 안전한 거예요. 각자의 커뮤니티 내에서는 누가 더 수위 높은 발언을 할 수 있느냐로 계속 에스컬레이팅이 되고….”


■ 학교에서 ‘여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많은 여성 교사들이 최근 논란에 휩싸인 초등학교 교사를 보면서 위축됐다. 교육계는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외부로부터 신상이 털리는 등 인신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교권 침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연대하기가 어려웠다. 한 교사는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성평등 수업을 하다 ‘걸리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싶어서 씁쓸했다”라고 말했다.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은 매 순간 느끼지만 여성 교사로서 남학생들을 수년째 다루다 보면 가장 수월한 방법이 남성성을 자극하는 방법이거든요. ‘남자가 쪼잔하게 왜 그러냐’ ‘남자니까 의리 있게 이거 한번 해줘라’ 이런 식으로 뭔가를 지시하게 돼요. 그럴 때마다 나도 성평등 교육은 못할망정 성 역할 고정관념에 일조하고 있구나 자괴감이 들죠.” 

ⓒ여성환경연대 초록상상 제공학교에서 실시되는 젠더 교육은 성교육·성폭력 교육 등으로 분절돼 있다.
이를 성평등 교육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교사’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학생으로부터만 여성혐오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지난 7월28일 교사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수 자리에서 이영우 경상북도 교육감이 “여교사는 최고의 신붓감” “처녀 여자 교사들 값이 높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았다. ㅂ초등학교 3년차 교사 한아름씨(가명·28)는 “늘 듣던 말이라 새삼스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결혼 1순위는 젊은 미혼 여교사, 2순위는 늙은 미혼 여교사, 3순위는 돌싱 여교사라는 소리는 ‘농담’으로 포장되어 교무실에서 이야기되곤 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 지선영씨(가명·30)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빈말이라도 ‘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구나’라는 말을 해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부모가 혹은 시부모가 좋아하시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지씨는 요즘 SNS상에서 해시태그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를 한 번씩 눌러보곤 한다. 학창 시절에 페미니스트 교사를 만났다면 자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씨는 단언했다. “저는 교사가 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저한테 다른 가능성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테니까요. 공부 잘하는 딸들이 도전할 수 있는 최고치가 교대에 진학해 선생이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학생들에게 다양한 삶과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 그럼에도 교육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ㅅ고등학교 2년차 교사인 정준수씨(가명·28)는 성평등 교육이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학생회 간부들과 두발 규정을 점검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남학생의 두발 규정 항목은 두 개인데, 여학생의 두발 규정 항목은 네 개였다. 회의를 마칠 때까지 어느 학생 하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저는 이런 순간을 만날 때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페미니즘이 별건가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왜 남자와 여자의 두발 규정이 달라야 하지?’를 질문하는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먼저 움직이고 있는 곳은 지자체다. 서울시는 ‘성평등 기본조례’에 근거해 ‘성평동(성평등한 우리 동네 만들기)’이라는 민관 협치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마을공동체와 민간단체가 성평등 학교 만들기에 머리를 맞댔다.

ⓒ연합뉴스서울시는 민관 협치사업인 ‘성평동(성평등한 우리 동네 만들기)’을 시범 실시하고 있다.
위는 2012년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성정책을 발표하는 모습.

2학기부터 자율학기제가 시행되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대 5회까지 성평등 수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선도학교 5곳과 별도로 수업을 신청한 학교 26곳, 총 31개 학교에서 우선 시행된다. 서울시 전체 중학교의 10%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성교육이나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벗어나고, 분절돼 있는 젠더 교육을 성평등 교육으로 묶어 일원화해나갈 예정이다.

신청한 학교 대부분은 또래 문화를 주도하는 혐오 표현 사용 문제를 신청 사유로 들었다. 물론 학교의 문제의식이 아직까지 완전히 무르익지는 않았다. 민간단체로 ‘성평등한 우리 동네 만들기’에 결합한 함경진 활동가(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는 학교와 교육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벽’을 만난다. 

“‘요새 남자애들 기가 많이 죽었으니까 남자애들 차별받지 않는 교육 해주세요’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페미니즘 교육하는 거 아니죠?’라고 묻기도 하고, ‘왜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고 하느냐’라고 말씀하기도 하세요. 동성애 교육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성평등은 교육의 일부 주체가 달라진다고 달성되는 ‘무엇’이 아니다. 법과 제도를 이용해 매뉴얼을 만들거나, 수업을 강제하거나 하는 방식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제도화가 강제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와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를 디자인하는 ‘거대한 기획’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 주체인 교육부와 교육청의 변화도 요구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3월, 16개 시·도 교육청 중에서 최초로 ‘성 인지 관점’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성인권정책전문관을 임용했다. 하지만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업무조직이나 체계가 미흡한 상태다. ‘자리’는 있지만, ‘권한’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교육부의 관련 업무도 양성평등 교육·폭력예방 교육·성교육 등으로 분리돼 여러 부서로 쪼개져 있다. 사실상 통합적인 성평등 교육 관련 전담 부서가 없는 셈이다.

교육 현장은 ‘시민’을 길러내는 데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교육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이라면 학생들에게 자신의 상황과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가르쳐주는 것은 어른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그 과정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이제는 사회가 답할 차례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