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신길동의 한 골목길, 주택가에 둘러싸인 ‘비정규노동자의 집’이 있다.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된 쉼터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험난한 현실을 잊고 발 뻗고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늘 필요했다. 이 공간에 붙은 명칭은 그래서 ‘꿀잠’이다.
황철우 꿀잠 집행위원장(47)도 한때 ‘꿀잠이 필요한’ 해고 노동자였다. 1993년 서울지하철(현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한 황씨는 1999년 파업 당시 해고당했다. 이후 숱한 비정규·해고 노동자 투쟁 활동에 참여해왔다. 2008년 ‘기륭전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2009년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를 꾸렸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희망버스’도 기획했다. 2012년 복직했지만 활동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
‘꿀잠’ 아이디어는 황씨 아내에게서 먼저 나왔다. “저와 함께 투쟁 현장을 다니며 제일 마음에 남은 게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는 모습이었대요. 이들이 푹 쉴 수 있는 쉼터를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2015년 7월7일 기륭전자 비정규노동 투쟁 평가 토론회에서 나온 이 제안을 많은 해고·비정규 노동자들이 환영했다. 당면한 싸움 속에서도 밥 지어먹고, 푹 자고, 빨래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 공감했다.
공간 마련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후원자 2000여 명이 7억6000만원을 모았다. 비정규직·해고 투쟁 단체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 종교 단체, 문화 단체, 협동조합 등에서 힘을 보탰다. 황씨도 그간 부어오던 적금을 깼다. 건물 매입뿐 아니라 ‘리모델링’도 연대로 이루어졌다. 지난 5월11일부터 100일 동안 매일 평균 10명이 꿀잠 짓기에 손을 보탰다. 설계, 용접, 조경, 도색 등 리모델링 작업을 모두 재능 기부로 해결했다.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 콜트콜텍·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등이 특히 앞장서줬다.
번듯하게 완성된 ‘꿀잠’ 앞에서 KTX 해고 승무원들이 “정말 우리도 이용할 수 있는 건가요?”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황씨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제가 13년간 해고 노동자로 있어봐서 그들의 설움을 잘 안다. 꿀잠이 그들에게 힘을 주면서, 또 사회적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비정규·해고 노동자들의 꿀잠을 돕는 후원 계좌는 1006-701-442424(우리은행, 사단법인 꿀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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