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서쪽 타치라 주 산안토니오는 콜롬비아와 국경을 마주한다. 이곳은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이 국경을 통해 다리를 건너면 콜롬비아의 쿠쿠타로 갈 수 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쇼핑한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다. 국경에 해가 뜨면 매일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든다. 어떤 날은 무려 1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집결하기도 했다. 해가 지면 다들 비닐봉지에 식량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시 베네수엘라로 들어온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시리아에 버금가는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식료품 가게 진열대는 이미 텅 비었다.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했던 마르코 씨(48)는 “매일 콜롬비아 국경을 넘나들며 물건을 구해오지만 역부족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지금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온종일 먹을 것만 생각한다. 아침에 눈뜨면 오늘은 어디 가서 식량을 구해올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다”라고 말했다. 아이 셋을 키우는 그의 집에도 식량이 바닥났다. 막내는 이제 생후 8개월로 분유를 구하지 못해 몸무게가 늘지 않는다. 마르코 씨 집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굶주리는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시몬 볼리바르 대학이 지난해 6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가구의 75%에서 평균 8.6㎏ 정도 체중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33%는 하루 한 끼 내지 두 끼만 먹는 것으로 조사됐고, 현재 수입으로 음식 값을 감당할 수 없다고 답한 가정이 93%나 되었다. 국민들은 이 현상을 ‘마두로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지금의 상황을 불러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화폐 ‘볼리바르’는 이미 휴지 조각이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폐를 세지 않고 무게를 달아 계산할 정도다. 외환보유액도 8월 들어 22년 만에 100억 달러를 밑돌았다. 이러니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PA2016년 6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중심가에서 경찰이 식량과 생필품 부족 등에 항의하는 군중에게 해산을 종용하고 있다.

이 비극의 시작은 베네수엘라를 14년간 통치하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13년 사망하면서부터이다. 차베스의 오른팔이던 마두로가 그의 유지를 받들어 베네수엘라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도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석유 생산 국가였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원유 생산 시설과 수익금을 국유화했다. 그 수익으로 국민들에게 무상 지원을 늘렸다. 각종 세금을 면제하고 교육도 무상으로 지급하는 이른바 ‘차베스형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 차베스 사망 이후 마두로 대통령도 이 체제를 똑같이 유지하며 제2의 차베스를 꿈꾸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가 하락이었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유가는 최근 들어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사실 차베스 정부 때도 인플레이션과 잦은 물자 부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는 식량자립도가 낮아서 식료품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했다. 그땐 유가가 치솟아 오일달러가 유입되고, 중남미 국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해 식료품 수입이 늘면 문제가 없었다. ‘차베스 없는 베네수엘라’에 유가 하락 폭탄이 떨어졌고, 결국 물가는 치솟고 식량난도 겹쳤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국가 부도 사태까지 예견되는 가운데 경제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었다. 반정부 시위 이면에는 차베스주의자와 친미주의 세력의 대결이 깔려 있다. 빈민과 군부를 축으로 한 차베스주의 세력은 마두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다. 생활고를 겪는 빈민 가운데 일부도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야권은 친미주의 우파 세력이 장악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전직 경찰은 경찰 헬기를 훔쳐 대법원을 공습하기도 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현 정권을 흔들려는 테러 공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드론 비행조차 금지된 주요 국가기관 청사 위를 헬기가 어떻게 비행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일면서 정부군의 자작극 가능성도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제헌의회 선거 투표율 조작 의혹까지

마두로 대통령은 진퇴양난의 처지를 제헌의회 구성으로 돌파하려 했다. 지난 8월8일 마두로 정권은 제헌의회가 최고 권력기관임을 선포했다. 모든 정부 기관보다도 제헌의회가 우위에 있다는 내용의 법령을 통과시킨 것이다. 제헌의회 카드는 차베스의 비책이기도 했다. 차베스는 ‘구체제’ 전체를 제헌의회로 무너뜨리겠다며, 직접 대중과 소통하면서 독자적인 지지 세력을 규합해 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 그 길을 후임자인 마두로 대통령도 따르는 것이다. 이번에는 난관이 만만치 않다. 지난 7월30일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서 투표 시스템을 제공한 현지 업체 스마트매틱(Smartmatic)의 안토니오 무지차 최고경영자(CEO)가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제 투표수와 적어도 100만 표 이상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앞서 베네수엘라 국가선거관리위원회는 808만9320명이 투표해 41.53%의 ‘놀라운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투표수 가운데 100만 표 이상이 조작됐다는 것이다. 스마트매틱의 무지차 CEO는 “투표수가 조작됐다고 보고해야 하는 게 우리로서는 지대한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투표율 조작 의혹이 이는데도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콘서트장에서 제헌 의원 545명의 취임식을 거행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을 비롯해 사회주의당 인사들이 당선했다. 제헌의회는 8월5일 출범 후 첫 조치로 오르테가 검찰총장의 해임안을 처리했다. 오르테가 검찰총장은 차베스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현 정권과 같은 성향이다. 지난 3월 대법원이 야권의 입법권을 대행하는 판결을 내리자 마두로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다. 오르테가 검찰총장은 제헌의회 선거 조작 사건 수사도 지시한 바 있다. 제헌의회는 오르테가 검찰총장을 해임한 뒤 제헌의회 체제가 최장 2년간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AFP8월10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제헌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차베스 없는 베네수엘라가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마두로 정부뿐 아니라 야당조차 대안 세력이 되지 못하면서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 고통을 국민이 겪고 있다. 당장 약품 부족도 심각하다. 한때 말라리아 박멸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지금은 관련 약품이 없어서 말라리아 환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약품이 부족하자 병원이 문을 닫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국경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엘렉산더 씨는 “미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그들은 우편으로나마 약품과 생필품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고통받는 국민 가운데 일부는 조국을 떠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7월 현재 외국에 난민 망명을 신청한 베네수엘라 국민이 5만2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2만7000여 명이 외국 망명 신청을 한 것의 두 배 수준이다. 조국을 떠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미국(1만8300명), 브라질(1만2960명), 아르헨티나(1만1735명), 스페인(4300명)과 우루과이(272명), 멕시코(1044명) 등지로 향하고 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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