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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러츠빌 폭동에 트럼프가 취한 태도의 진짜 의미

8월11일과 12일 미국 샬러츠빌 시에서 ‘통합 우파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우파 집회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비론으로 이들을 두둔하기도 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7년 08월 28일 월요일 제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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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애국자(patriot)’들이 모여 반사회적인 구호를 외치며 난동을 부리는 가운데 사상자가 수십명 발생했다. 이 애국자들은 과거사를 왜곡하고 소수자 혐오를 자랑삼으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통째로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나라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은 이른바 애국자들을 은근히 비호한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시대의 한국과 비슷한 사태가 최근의 미국에서 발생했다.

8월11일부터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의 중소 도시인 샬러츠빌 시에는 외지인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머리를 박박 밀었거나 혹은 장발에 턱수염까지 길게 늘어뜨리는 등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외지인들이 샬러츠빌에 온 것은 이른바 ‘통합 우파 집회(Unite the Right Rally)’를 거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샬러츠빌의 시민사회와 시 당국은 극우파들이 싫어할 만한 일들을 해왔다. 지난해 초, 샬러츠빌 시는 ‘로버트 리 장군의 공원(Lee Park)’을 ‘해방공원(Emancipation Park)’으로 개칭했다. 로버트 리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반대한 남부연합 측 사령관이다. 지난 2월에는 해방공원 내에 설치된 리 장군의 동상까지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통합 우파 집회’는 이런 조치들에 항의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미 지난 5월과 7월에 ‘대안 우파(Alt-Right)’나 인종차별주의 테러집단 KKK(Ku Klux Klan) 등 극우 단체들이 리 장군의 동상을 둘러싸고 횃불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지역의 자유주의자, 민주사회당 같은 진보파, 개혁적 기독교인 등은 촛불집회로 맞섰다. 폭력을 동원한 충돌은 없었지만, 양측 간에 고도의 긴장이 조성되고 있었다.

ⓒAP Photo
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회원이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막고 있다.
극우 세력으로 분류되는 각 분파들은 대규모 집회로 사회적 충격을 주려 했다. 지지했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사회적 변혁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리 장군 동상 철거 계획은, 극우 분파들이 ‘단결 투쟁’할 수 있는 계기로 보였다. 결국 대안 우파, 신남부연합주의(Neo-Confederate), 신반동주의(Neo-Reaction), 신나치, 반유대주의 같은 극우 세력의 다양한 분파들은 8월12일 오후 샬러츠빌 집회를 통해 총궐기하기로 했다. 명실공히 ‘통합 우파’다. 미국 각지에서 6000여 명이 모여든 것으로 추산된다.

극우 분파들은 공식 집회 전날인 8월11일 밤, 버지니아 주립대로 집결했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 “너희들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You will not replace us)”라고 외쳐댔다. 독일 나치의 슬로건인 ‘피와 땅(Blood and Soil)’도 즐겨 제창된 구호였다. 나치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 깃발과 KKK단의 휘장이 어둠 속에 번득이는 횃불의 빛을 튕겨내며 펄럭였다.

ⓒAFP PHOTO
8월12일 미국 샬러츠빌 시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극우 세력이 ‘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외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대 이후 공권력 남용에 따른 흑인 살해가 잇따르면서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를 빗댄 것이다. “너희들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에서 ‘너희’는 유대인 및 유색인종이며, ‘우리’는 백인이다. 음모론에 바탕을 둔 구호다. 미국의 ‘혐오 반대 단체’인 ADL은 홈페이지(6월9일) 게시물에서 극우 세력의 음모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유색인종의 부흥(The Rising Tide of Color)’을 치밀하게 조정·통제한다고 믿는다. 이 음모를 당장 뒤집지 못하면 백인종은 (유색인종에게 대체되어) 절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흑인과 아시아인 때문에 취업하지 못한다고 믿는 가난한 백인들의 위기감을 ‘유대인의 세계정복 음모’론으로 부채질하는 내용이다. 통합 우파 집회에 참석한 KKK단의 전 의장 데이비드 듀크는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실현시켜 나라를 되찾겠다”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정권이 한국의 정치권과 문화계, 언론계 등을 장악하고 ‘한반도 적화 프로젝트’를 착실히 추진 중이라는, 한국 극우파들의 ‘종북 음모론’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독일 나치와 똑같은 논리의 인종 우월론


‘피와 땅’도 같은 맥락이다. 히틀러의 나치는 ‘조국의 대지(땅)’와 ‘땅을 대대손손 경작해온 독일 혈통(피)’ 간에 분리할 수 없는 신비로운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관계가 바로 민족성(ethnicity)이며, 독일 민족성의 문화적·인종적 핵심은, 흙을 직접 만지는 농민이다. ‘피와 땅’은 목가적 낭만주의처럼 들리지만 유대인을 배제하고 가차 없이 절멸시키는 나치의 사상적 무기였다. 당시 독일 농촌의 쇠락을 ‘유대계 독일인들로 구성된 은행가와 상인 때문’이라고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나치의 농민에 미국 백인을, 유대계 독일인에 유색인종을 대입해보면, 극우 세력이 ‘피와 땅’을 외치는 폭력적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AP Photo
8월12일 미국 샬러츠빌 시에서 ‘백인우월주의자’ 제임스 앨릭스 필즈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맞불 시위대를 덮쳤다.
극우 세력의 이런 폭력성은 8월11일 밤 버지니아 대학에서부터 발휘되었다. 버지니아 대학교에는 설립자 토머스 제퍼슨의 동상이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작성자이자 제3대 대통령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 동상 앞에 통합 우파 집회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미국 유력 온라인 매체 <복스(Vox)>에 따르면, 횃불을 치켜든 극우파들이 제퍼슨 동상으로 몰려가 촛불시위대를 에워싸고 위협했다. 촛불시위대에게 횃불을 집어던지는 등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했다. 현지 언론 <캐벌리어 데일리(Cavalier Daily)>는 극우파들이 경찰에게 저지당한 뒤 기자들에게 혐오성 욕설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집회 당일인 8월12일, 극우파들은 오전부터 해방공원으로 몰려가 나치의 상징물과 옛 남부연합 국기를 흔들며 위력 시위를 벌였다.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유대인은 사탄의 자식”이라는 플래카드를 흔들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통합 우파 집회’에 반대하는 맞불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양측 간의 폭력 충돌이 벌어진 끝에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더욱이 극우파 중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경찰은 이날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결국 정오쯤 계획되었던 통합 우파 집회는 성사되지 못했다. 버지니아 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오후 1시45분쯤 차량 한 대가 맞불 시위대로 돌진했다. 차량은 다시 전속력으로 후진하면서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법률 보조원으로 사회활동에도 열성적이었던 32세 여성 헤더 하이어 씨가 숨지고 최소한 19명이 부상당했다. 가해자는 오하이오 주에서 온 20세의 젊은 공화당원 제임스 앨릭스 필즈였다.

ⓒAP Photo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혔던 스티브 배넌(오른쪽)은 ‘대안 우파’와 밀접했다.
샬러츠빌 폭동이 터진 당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입장은 “여러 당사자들이 보여준 지독한 증오와 편견, 폭력을 규탄한다”였다. ‘여러 당사자’란 표현이 논란을 일으켰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맞불 시위대에게 은근히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한 골프 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당신을 지지한다는 백인 우월주의 시위대에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트럼프는 못 들은 척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2014년 12월, 극우 커뮤니티 일베 유저가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통일 토크 콘서트’에 사제 폭발물을 투척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최근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했다.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같은 분위기였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민주당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도 트럼프의 이런 반응을 공격했다. 심지어 극우로 불리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까지 “우리 모두가 증오와 인종주의, 반유대주의를 확산시키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샬러츠빌에서 난동을 부린 극우 분파들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반체제’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폭동의 주요 세력인 ‘신남부연합주의’자들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CSA: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의 계승자를 자처한다. 남부연합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미합중국에서 탈퇴한 11개 주가 구성한 ‘국가’다. 이들은 각 주가 자유롭게 미합중국에서 탈퇴할 권리를 지닌다며 ‘노예제 유지’ 등을 명시한 헌법까지 따로 제정했다. 링컨 행정부는 남부연합을 미합중국 헌법에 위배되는 ‘반국가단체’로 간주했다. 남부연합의 공격으로 1861년 개시된 남북전쟁은 1865년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신남부연합주의자들은 미국의 공식적인 남북전쟁사를 ‘왜곡된 승자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역사의 수정’을 시도해왔다. 그들에 따르면, 남부연합이 미합중국으로부터 독립하려 했던 이유는 ‘노예제도 유지’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주의 자치’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결사 항전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링컨의 당은, 유럽에서 건너온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물들어 ‘큰 정부’를 지향하는 ‘붉은 공화당(Red Republican)’이었다. 북부 측이 승리하면서 미국은 ‘연방정부’라는 괴물의 폭정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여긴다.

한국의 일베 닮은 ‘대안 우파’ 활개

이런 역사 해석에 기반을 둔 신남부연합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는 작은 정부, 경제적으로는 극단적 시장자유주의(리버테리어니즘)를 주장한다. 남부의 전통(흑인 노예가 있는 기품 있는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집착은 이민 반대로, 국가 체제에 대한 반감은 총기 소지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샬러츠빌에서 남부연합의 깃발과 함께 날뛴 분파 가운데는 신나치도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유럽과 달리 인종주의나 반유대주의적 견해를 표명하는 조직에게도 발언권을 허용한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면서 히틀러를 칭송한다.

‘검은 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라 불리기도 하는 ‘신반동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까지 거부한다. 이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스티브 세일러는 지능지수가 인종 및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일러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려면 ‘우익 내셔널리스트(이민 반대 등)’ 전략과 ‘경제 포퓰리스트(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백인 노동자 계급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세일러 전략’이다. 트럼프는 대선 공약에 세일러 전략을 대폭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세일러는 트럼프 당선 이후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강한 보수주의 사상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런 반민주주의적이고 반현대적인 흐름들을 2010년대 이후 총괄한 운동이 바로 ‘대안 우파’다. 겉으로나마 인종주의와 거리를 뒀던 다양한 극우 분파들에게 백인 우월주의를 뻔뻔스럽게 표명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했다. 대안 우파는, 한국의 일베처럼 각종 인터넷 익명 사이트에 오르내리는 기상천외한 게시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기상천외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소수자 혐오’ ‘나치 찬양’ ‘(성)폭력’ 등 반사회적 내용들이 거침없이 게시되고 긍정되며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대안 우파의 유력 선동가인 밀로 야노풀로스는 <뉴요커>와의 인터뷰(2016년 5월5일)에서, 이런 “젊은 반역자(young rebels)”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이 대안 우파에 끌리는 것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대안 우파가 재미있으며, 사회적 관습을 위반하고 도전하는 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현존 사회 시스템의 정치적·윤리적 규범을 위협하는 농담과 허튼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격분하게 하고 관심을 끌며 즐기는 행위가 대안 우파를 발전시킨 동력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마치 ‘사회 시스템 자체’를 증오하고 저항했던 1960년대 신좌파 운동의 2010년대 버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백인 우월주의, 신남부연합주의, 신반동주의, 네오나치, 소수자 혐오 등 반사회적 흐름들을 ‘대안 우파’라는 브랜드로 느슨하게 묶는 플랫폼 구실을 수행한 매체가 바로 <브레이브바트 뉴스>다. 트럼프의 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이 <브레이브바트 뉴스>의 설립자다.

‘여러 당사자’라는 표현으로 호된 비판을 받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틀 뒤인 8월14일, 전향적 성명을 내놓았다. “인종주의는 악이다. KKK, 네오나치, 백인 우월주의자 등 혐오 그룹들은 미국인이 소중하게 간직해온 가치들에 반한다.” 그러나 대안 우파의 지도자 중 하나인 리처드 스펜스는 “대통령의 진심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트럼프는 ‘동지’의 기대에 신속하게 부응한다. 하루 만인 8월15일, 언론의 ‘가짜 뉴스(fake news)’를 비난하며 다시 말을 바꿨다. “(우파 시위와 맞불 시위) 양쪽 모두에 좋은 사람이 많다. 비난받을 사람 역시 양쪽 모두에 많다. 아주아주 폭력적인 대안 좌파(very, very violent alt-left)들 역시 욕을 먹어야 한다.” KKK단 전 대표인 데이비드 듀크는 트위터로 “샬러츠빌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직성과 용기에 감사한다. 좌익 테러리스트를 규탄한 것에도 감사한다”라며 기뻐했다. 대통령 본인이 ‘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의 적’일 가능성이 미국에서도 점점 더 짙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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