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군주 정조의 암살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하급직 젊은이의 시선을 취한 드라마 〈한성별곡-정〉.

사극이 끊임없는 역사 왜곡 시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존재하는 힘은,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소환하여 현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대중의 사회심리와 욕구와 욕망에 있다. 역사적 사실과 달리 ‘사극’이야말로 현재의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텔레비전 사극의 최대 화두인 정조 역시 고증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암살당한 개혁적 군주라는 설정이 정말 사실인지, 혹시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해지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의 설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따위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드라마 연구자로서 내 관심은, 그 〈영원한 제국〉 속의 정조가, 왜 하필 2007년에 되살아났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호기심은 예전의 사극들에 대해서도 가져봐야 한다. 1960~70년대의 사극은 충의(忠義)와 효열(孝烈)이 지배했다. 국가적 사안을 가족윤리와 동일시하고, 모든 것을 멜로?신파의 틀로 환원시켰다. 인물들은 충신과 간신, 현처(賢妻)와 요첩(妖妾), 포악한 시어머니와 불쌍한 며느리 식으로 양분되었다. 연산군 이야기는 어미 잃은 자식이 요첩 장록수에게 빠져 패륜을 저지르다 쫓겨나는 이야기로, 광해군 이야기는 아비에게 인정받지 못한 첩의 자식이 요첩 김개시와 간신배에게 빠져 이복동생을 죽이는 이야기로, 장희빈 이야기는 현처가 요첩에게 내쫓기고 그 바람에 불쌍한 아들만 어미 잃은 자식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로 포장되었으니, 전형적인 신파 스토리라 할 만하다. 

1980년대 신봉승의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는 사극을, 충의효열과 신파의 세계에서 정치의 세계로 끌어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뒤이든 1980년 군부의 재집권이, 국민 모두의 정치의식을 매우 고양시켰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1980년대는 라디오에 머물렀던 정치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텔레비전으로 옮아와 〈제1공화국〉 같은 형태로 꽃핀, 그야말로 정치의 시대였다.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왕’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왕조 사극의 관심은 정권교체로 모아졌다. 이전의 사극들이 굳건한 왕권 아래에서 신하와 후궁들이 벌이는 권력 싸움이 중심을 이룬 것에 비해, 〈용의 눈물〉로부터 〈왕건〉까지 이어지는 이 시기의 사극은 왕의 자리가 결코 굳건한 것이 아니며 정권 장악만큼이나 그 이후가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상력은 대통령이 늘 박정희였던 1960~70년대나(필자는 말을 배우면서부터 대학 입학 때까지의 대통령이 오로지 박정희뿐이었던 세대이다), 세 명의 육사 동창생이 7년씩 번갈아 21년을 ‘해먹을지도’ 모르던(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198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시사IN 안희태조선의 전문가를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던 이병훈 프로듀서는 패기에 찬 개혁 군주 정조의 번민과 그를 돕는 사람들의 협업을 생생히 그려낸다. 위는 MBC 사극 〈이산〉에 등장하는 도화서 화공의 작업 모습.

누군가 왕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혹은 포악한 왕을 무너뜨리는 것이 끝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되니 왕과 신하는, 모두 정치인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고,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정권 창출 의지와 나름의 성실한 노력, 그리고 상당한 정도의 음모나 정략적 이합집산은 당연한 것으로 그려졌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 사극의 관심은 왕을 떠나 전문인으로 내려왔다. 〈허준〉 〈대장금〉은 정치인들만 정략과 음모의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인과 하급 관료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역시 그러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아웃’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 게다가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남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다 점을 보여주었다. 

이런 틀은 이내 영웅 이야기로도 옮아왔다. 〈불멸의 이순신〉이 보여준 이순신은 분명히 영웅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마치 불황 속 상시적 구조조정에 시달리면서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고달픈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었다. 21세기 이순신은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나 최도영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올해 〈한성별곡-정〉과 〈이산〉 두 작품에서 그려지는 정조의 형상은, 이제 이런 설정이 ‘장군’을 넘어 ‘임금’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들 드라마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임금 노릇을 한다는 것은 정말 고달프고 위태위태하다. 노회한 관료와 상궁?내시들이 애송이 임금 하나 물 먹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 개혁을 시도하는 군주의 위태로움은 말해 무엇하랴(이는 〈왕과 나〉의 예종 독살에서도 드러났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절되는 개혁의 아쉬움-이는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은 이렇게 드라마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다. 

물론 드라마마다 그 강도와 질감은 다르다. 〈한성별곡-정〉은, 개혁군주의 암살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하급직 젊은이의 안타까움을, 화려하고 패기만만하나 신인 티가 역력한 제작진이 객관화되지 않은 의욕 과잉의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이산〉은 이병훈 감독의 관점과 태도로 풀어갈 모양이다. 영조는 신하들은 물론 중전과 심지어 손자 정조에게조차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이런 고달프고 위태로운 정치적 줄타기를 잘 해내지 못하면 임금의 자격이 없다고 냉혹하게 일러준다.

이런 영조의 모습에서, 힘든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묻어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성과 성실함에 기술력까지 지닌, 서민과 연대하며 끊임없이 성장해가는 것이야말로, 의미 없는 이전투구처럼 보이는 정치의 장에서 그 본마음과 원칙을 지키며 성공하는 길이라고 믿는 이병훈 감독의 낙관성은 여전하다. 

기자명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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