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매치를 예상보다 빨리 시작했다. 4년 전 ‘판정패’를 당한 쪽이 진용을 먼저 짰다. 공중분해가 되었던 팀을 다시 불러 모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팀을 이끄는 수장은 동일인이다. 윤석열.

검찰이 원세훈 국정원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4년 전 ‘박근혜 국정원’ 앞에서 수사팀은 속수무책이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을 나갔지만 자료 대부분이 치워져 있었다. 댓글 작업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국정원 직원들의 노트북을 압수해 ‘암호를 풀어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국정원 메인 서버는 아예 ‘치외법권’이었다. 그사이 검찰총장이 불법 뒷조사를 당해 날아갔다. 뒷조사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은 법정에서 “음식점 화장실에서 정보를 습득했다”라는 ‘아무 말’ 진술을 했다. 판사가 “검찰의 (댓글)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로 짐작된다”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 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결문에 적시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수사 방해 전력(前歷) 탓에 수사 명분은 검찰이 쥐고 있다. 검찰의 칼은 국정원을 넘어 MB 정부 인사들까지 겨눌 수 있다. 국정원의 과감한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은 검찰 수사에 지지와 환호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불길한 기시감이 든다. “문제아가 갑자기 모범생이 되었다”라며 참여정부 검찰 개혁 실패를 토로한 ‘문재인 변호사’의 말이 떠오른다. 2003년 검찰은, 검찰로 향했던 개혁의 칼날을 대선 자금 수사로 돌려버렸다. 검찰은 이번에도 ‘수사’로 개혁의 파고를 넘으려 할 것이다. 기우가 아니다.

최근 검찰 인사로 이시원·이문성 검사가 ‘복권’되었다. 두 검사의 행태는 최승호 PD의 영화 〈자백〉(2016)에 잘 담겨 있다.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을 조작했고, 두 검사는 이것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검사들은 증거 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각각 정직 1개월, 솜방망이 징계였다. 검찰은 최근 국민의당 증거 조작 사건과 관련해 안철수 캠프의 김성호 전 의원과 김인원 변호사를 기소했다. 조작된 제보를 확인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혐의가 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국민의당 증거 조작과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구조가 비슷하다. 다만 피고인이 제 식구냐 아니냐에 따라 검찰은 판단을 달리했다. 특검 수사를 거쳤다면 두 검사는 형사처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듯 적폐도 디테일에 있다. 검찰 개혁을 꼼꼼히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꼼꼼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분’과 관련한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올렸다. ‘악마 기자’ 주진우 기자가 국외를 오가며 오랫동안 취재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분의 꼼꼼함을 반면교사로 삼아 〈시사IN〉은 검찰 개혁을 감시할 것이다. 물론 그분도.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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