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김해을)은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손에 꼽힌다. 참여정부 시절, 야인 시절, 2012년 대선, 2015년 당 대표, 2017년 대선까지, 문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늘 그가 있었다. 집권 후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청와대와 자문위의 가교 구실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눈으로 집권 100일을 자평하는 일이라면, 김 의원 이상 가는 적임자는 문 대통령 본인 외에는 없을 것 같았다.

 

ⓒ시사IN 이명익김경수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야인 시절, 2015년 당 대표 시절 그리고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며 문재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언론과의 본격 인터뷰를 극구 피하던 김 의원을 어렵게 만났다.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불렀더니 “힘이 있어야 오른팔이고, 나는 오른발이다. 뛰어다닐 책임만 받아왔다”라고 응수했다. ‘대통령의 오른발’ 김경수 의원과 8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90분간 마주앉았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채점한다면?

점수로 말하기보다도, 국정 농단으로 나라가 총체적 혼란 상태였던 상황에서 빠른 시일에 국정을 안정시키는 게 급했다. 또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출범한 정부라서 국정 목표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도 급했다. 이런 걸 비교적 매끄럽게 처리했다고 자평한다.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에는 우유부단하거나 결단력이 없다는 평을 꽤 들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 쑥 들어갔다. 2012년 대선 때 나는 주위에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선거 준비는 좀 부족해도 대통령은 참 잘할 거라고. 그때는 경제 분야를 상대적으로 자신 없어 했는데, 이번에는 소득주도 성장을 축으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서 자신감이 붙었다. 대통령이 최종 발표문을 직접 다 손을 본다. 국정기획자문위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도 3단계 이행계획이 있는데(혁신기-도약기-안정기), 1기를 혁신기로 한 게 대통령 뜻이었다.

원래는 그게 아니었나?

몇 개 안이 있었는데 그중에 대통령이 혁신기를 골랐다. 참여정부 때 초기는 로드맵 짜는 계획기였다. 그리고 로드맵에 따라서 1기 말과 2기가 혁신 추진기, 3기가 마무리 단계였는데, 정작 2기에서 지지도가 떨어지고 여소야대로 아무것도 안 되면서 개혁 동력이 확 떨어졌다.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 1기를 혁신기로 잡고 초기부터 강하게 추진하자는 의미로 보면 된다.

문재인 정부 100일은 노무현 스타일보다는 오히려 김영삼 스타일이라는 평도 있다.

양쪽 다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토론은 여전히 중시한다. 다만 토론의 위치가 정부 내부로 이동했다. 참여정부는 당정 협의, 입법부와 협의 등을 중시했는데 그러다 보니 개혁이 지연되는 일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입법 없이 정부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건 우선한다는 기조다. 우리가 야당을 하면서 준비가 충분히 쌓였는데, 소득주도 성장이나 복지정책 같은 걸 이제 와서 다시 토론해야 할 정도로 내용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 아닌가. 그래서 집권 100일은 거의 우리 구상대로 했다고 봐야지. 국가가 하는 일이라는 게 국민이 주인인 정부 만들기, 외교·안보, 그리고 경제·민생·복지, 결국 이 셋이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란 인권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복원 문제일 텐데?

대한민국의 기본을 다시 바로잡는 일이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보면 문재인 정부 국가비전이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제들이 있다. 권력기관이 권력을 내려놓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는 어떤가?

참여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늦게 하는 바람에 남북 관계가 정권 끝나자마자 거꾸로 돌아가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한·미 관계가 아무래도 컸다. 부시 행정부가 북·미 관계를 경색시키면서 불가피하게 그 영향을 받았다. 그런 경험에 비춰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관계를 강력하게 구축하고 그 기반으로 남북 관계를 해나가는 구상을 했다. 결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의에 응해 와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고 있다.

보수 언론은 한·미 정상회담이 파국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보수층의 기본 시각이 왜곡돼 있다는 증거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 정부는 반미 아니냐, 그러니 미국과 관계를 잘 못한다, 그런 왜곡된 시각이다. 실제로는 참여정부 시절에 한·미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고 건강했다는 평가를 당시 미국 정부 외교관들이 한다. 몇십 년 묵은 한·미 현안을 그때 양국이 다 해결했다. 동맹이라는 게 우리의 국익을 가지고 미국과 협상하고, 그래서 서로 국익을 조정하며 맞춰가는 게 가장 강하고 건강한 동맹 아닌가. 그런데 보수층은 미국 말은 다 들어줘야 한다고, 양국 협상 과정에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의견차를 동맹 균열이라고 한다. 이런 왜곡된 시각으로 보니까 올바른 예측이 나올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좋아하는 티가 많이 난다(웃음). 왜 그런가?

촛불 혁명의 공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국내의 평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단히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 많은 인원이 나와서 유혈사태 하나, 연행자 한 명 없이 지극히 평화적인 명예혁명을 했다. 21세기 들어 이런 사례는 우리밖에 없을 거다. 그 결과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국제사회가 보여주는 존중이 대단하다.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회담 때도 각국 정상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문 대통령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둘이었다. 촛불 혁명은 우리 외교의 아주 든든한 뒷배다.

ⓒ연합뉴스7월7일 문재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에서 발표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지금 북·미 간에 오가는 말은 굉장히 험악하다.


레토릭(수사법)이라고 본다. 과거 사례를 잘 봐야 한다. 대화 국면으로 가려면 위기가 한껏 고조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 테이블이 열렸을 때 한꺼번에 타결이 된다. 북·미 간 메시지를 잘 보면, 험악하다가도 이건 레토릭이라는 신호를 꼭 남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고 나면 국무장관은 미묘하게 다르게 말하고, 북한도 세게 받아치고 난 후에 슬그머니 감옥에 있던 한국계 캐나다인을 석방한다. 양쪽 다 실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제어해가면서 위기 국면을 관리하고 있다. 북·미 관계 전문가들은 그렇게 진단한다.

경제·민생·복지 문제는 어떤가? 부유층 증세와 보편 증세 사이의 선택도 논란거리였다.

초고소득자와 대기업 증세를 제시했다. 지금은 보편 증세를 추진할 때가 아니라고 봤다. 소득이 면세 기준 아래여서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많다는 게 보편증세론의 근거인데, 제가 보기엔 그건 그만큼 국민들 실질소득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서민과 중산층을 살기 힘들게 만들어놓고, 소득이 안 올라서 못 내는 세금을 물리자는 방식은 좀…. 소득을 끌어올리면 자연스럽게 보편 증세가 된다. 자연스럽게 재정도 튼튼해진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거다.

당장 필요한 돈도 많은데 보편 증세는 배제했다. 그렇다면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나?

확장적 재정정책이라는 말은 좀 맞지 않는 것 같고, 자연증가분이 몇 년간 10조원 정도가 있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화해 나간다고 말할 수는 있다.

문재인 정부 100일을 돌이켜보면, 가장 치열한 저항은?

아무래도 원전 문제 아니었을까. 기존 기득권 세력, 보수 정치 세력, 보수 언론 이렇게 연합이 형성될 때 저항이 가장 세다. 그런데 탈원전은 2012년부터 공약이기도 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사실상 공통공약에 가깝다. 홍준표 후보만 좀 다르고. 탈원전이 60년 넘게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데, 이걸 급박하고 독단적으로 추진했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선진국들은 세계적인 추세가 이미 탈원전으로 갔다. 개발도상국들만 신규 원전을 짓는다. 우리가 개도국처럼 매년 급속히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지, 아니면 선진국처럼 안정적으로 가는지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건강보험 개혁도 의사들이 반발하는 갈등 이슈가 될 잠재력이 있는데?

그 부분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게 있다. 건강보험 문제점은 다들 안다. 지금도 가족 중에 큰 병 걸리면 가계가 휘청휘청한다. 명분과 시대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 집단을 설득할 수 있다.

큰 개혁은 결국 입법이 필요하다. 원내 상황이 굉장히 복잡한데 어떤 식으로 풀 건가?

협치를 잘 해야지(웃음). 협치란 게 여러 종류가 있다. 여야 협치만 생각하는데, 당·정·청 협치도 있고, 국민과의 협치도 있다. 우리가 집권 1기를 혁신기라고 규정했지 않나? 1기는 국민과의 협치가 핵심이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중심이 되어서 혁신을 추진하는 게 1기다. 초기 개혁은 국민적인 요구나 시대적 필요가 명확한 개혁과제가 많다. 그렇게 나온 국민과의 협치 내용을 당·정·청 협치를 통해 정부가 추진한다. 그중에 입법이 필요한 내용을 여야 간 협치로 풀어내는 식으로 단계별로 접근한다.

2기 도약기와 3기 안정기의 협치는?

2기는 도약기인데, 도약하려면 확실하게 제도화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때는 여야 협치가 지금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여야 협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정당과 통합해 단독 과반 의석을 만들고 싶은 유혹은?

이제는 국민이 그런 임의적 정계개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본다.

임기 첫해 개헌 논란을 좋아할 대통령은 없을 텐데 대통령의 개헌 추진 의지는 진심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액면과 생각이 동일한 분이다. 기자들이 괜히 없는 행간을 읽는다고 엉뚱한 걸 쓰는데, 대통령 말은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실패할 일 없다(웃음). 국회는 개헌특위에서 안을 만들고 있다. 국회는 권력구조 개헌에 관심이 많은데, 대통령은 자치분권 개헌과 기본권 개헌을 훨씬 중요하게 본다. 그게 대한민국의 미래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권형 개헌도 국회가 합의한다면 논의하겠지만, 그 경우 선거제도 개혁을 함께 검토해달라는 취지로 대통령이 말했다.

지금 한국 정치는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녹여주는 용광로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정치의 갈등이 사회 갈등을 더 높이고 있다. 대통령은 소선거구 선거제도를 그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 것이다. 대통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계속 주장했다. 그런 개혁이 되면 행정부 권한이 어느 정도 입법부로 가는 개헌안도 얼마든지 논의 가능하다.

인사 중에 대통령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 인사와 가장 흔들렸던 인사를 꼽자면?

흔들렸던 인사를 제가 말하기는 좀(웃음). 잘 보여준 인사라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떠오른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랄까, 그런 내용을 인사 하나로 국민들에게 잘 보여줬다. 김 위원장도 국민과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했고. 그런 점에서 아주 잘한 인사다.

임기 첫해 당·청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추경예산 정국 당시에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핑퐁이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추경예산 문제를 푸는 게 워낙 시급하기도 했고, 이제 일종의 프로토콜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과거로 보면 인수위가 겨우 끝난 정도 시점 아닌가. 새로운 정부와 당이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프로토콜을 맞춰가는 거다. 서로 모색하고 하나하나 적립해가는 과정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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