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다. 하루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점심때나 잠시 걷는 형편인데도 요즘 그늘이 귀하다. 오늘 낮에도 볕이 대단하여 그늘을 골라 다녔다. 나 혼자만 그러는 게 아니라서 길가 한편으로 줄지어 걷는 취약한 사람들을 보자니 퍽 정겹기도 했다. 지난밤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가 불쑥 떠오른 건 기분 탓이었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도와 능이백숙집을 하는 아버지가 술에 얼큰히 취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안부를 물어왔다. “더운데 안 죽었어?” 이즈음, 이 더위에 죽지 않았느냐는 안부가 그리 이상할 법도 없는데 훅 하고 자식의 생사를 묻는 부모의 말을 듣자니 당장 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그래도 대뜸 전화해 생사 확인부터 하는 건 좀…. 아버지의 다음 말은 이런 것이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니 돈 아끼지 말고 먹어라.” 웃음이 가셨다. 어지간히 잘 먹고 잘살면서도 부모에게서 이런 소릴 들으면 꼭 지난 일주일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보리차를 한 주전자 끓여놓고 냉장고에 바로 넣지 않았다.’ 때때로 어머니 몰래 용돈을 부쳐주겠다던 아버지, 조미 김과 커피믹스를 자양강장제와 함께 택배로 보내오는 아버지의 점점 검어지는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그늘은 넒은 것일까, 깊은 것일까. 이 더위에 능이백숙은 어찌 삶으시나. 더워서 살 수가 없다던 어머니의 손이 쉬이 놓을 수 없는 돈은 얼마나 오래 먹고살 수 있는 것인지 괜스레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보았다. 어머니의 그늘은 몇 첩 반상일까. 자식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부모와 부모의 그늘이 되는 자식에 관하여 적었다. 다 더위 때문이다.

ⓒ시사IN 조남진한여름의 베란다가 점점 초록으로 짙어지는 것을 보는 일은 생동하는 경험이었다.

젊을 적 부모는 화초 가꾸기를 취미 삼았다. 한갓진 곳으로 이사하여 장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부모와 내가 살았던 집은 식물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분이 많았다. 일요일 아침이면 화분에 물을 주는 게 일이었고 때때로 그 귀찮은 걸 내가 맡게 되어 입을 댓발 내밀었다가 꼭 등짝을 한 대 맞고 나서야 순순히 화분에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한여름의 베란다가 점점 초록으로 짙어지는 일을 보는 것은 생동하는 경험이었다. 그 식물들의 온순한 품에서 오수를 즐기고 마시던 보리차는 또 얼마나 시원했던지.


얼마 전 글쓰기 모임 학인들에게 물었다. 동물과 식물 중에서 하나만 키운다면? 취향에 따라 선택은 반반.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동물은 반응이 있어서 키우고 싶고 바로 그 때문에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것. 동물에게 그늘이 되어주려는 사람과 식물에만 그늘을 보여주려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 여름을 사는 걸까. 젊은 부모가 실 평수 스무 평도 채 되지 않는 연립주택을 그토록 식물들로 채워놓으려고 한 건 또한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그 식물 한가운데로 처음으로 동물을 들였던 부모는 종종 자식들에게 말하곤 했다. “저 개만도 못한 것들.”

폭염 가고 가을 와라

뜻 없이도 담대하던 시절 볕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나의 위안이 되어준 고무나무 이름은 르페였다. 뜻 없이 부르기에 좋은 이름이었다. 요즘 들어 다시 식물에 눈길이 간다. 여름은 초록의 계절이니까. 여름은 그늘의 계절이니까. 여름에는 부모나 자식이나 자나 깨나 몸보신 생각. 여름에는 누구나 더위를 이기는 몸으로 새로 태어나길 염원한다. 술만 마시면 직장 상사에게 전화해 달갑지 않은 소리를 하고 다음 날 출근하면 늘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말하는 이의 별명이 ‘신생아’라는 것은 참, 선선한 웃음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이는 몇 번이고 새로운 여름을 맞는 사람일 테지. 폭염 속에서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맥주잔을 드는 일과 집에 홀로 두고 온 화초 생각에 귀가를 서두르는 이가 키우는 식물의 이름이 ‘파무침’이라는 건 또 얼마나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명명인지. 입추다. 폭염 가고 가을 와라.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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