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특강 시즌이다. 특강을 듣기 위해 상경한 지방 학생들이 이번에도 몇몇 보인다. 학원이 지방에 분점을 내고 강사가 KTX를 타고 출장 강의를 가는 게 일반화되었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 학원가로 직접 올라와 강의를 듣는 지방 수험생들이 더 많다. 이 학생들은 학원과 가까운 거리에 사는 친척집에 맡겨지거나 자취방에 거주하면서 여름방학을 보낸다.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한 시대에 서울까지 찾아올 필요가 있을까? 넌지시 물어보니 유명 학원가 수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 친척들의 권유, 인터넷 강의가 잘 맞지 않는 취향 등 학생들의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상경 수강’은 지방에 사는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계획이다. 서울에서 배워가는 수업이 학생들이 평소에 받던 교육보다 더 질이 높거나 더 취향에 잘 맞는 수업일지는 알 수 없다. 부모 처지에서 학생이 만족하고 학업에 동기 부여가 되었다면 해볼 만한 투자로 여길 것이다. 물론 “서울 가봤는데, 별거 없더라”는 학생들의 반응도 적지 않다.

ⓒ김보경 그림

상경 수강 계획을 실행하느냐, 못하느냐는 수험생들의 의지보다 그들이 처한 환경이 좌우한다. 애초에 선택권이 없는 상황과 선택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상황은 다르다. 서울로 올라온 학생들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기회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비용은 물론이고 학습 경로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의 차이는 대학 입학 후에도

한 지방의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은 서울의 학원에 와서 충격받은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간 입시제도 정보나 효율적 학습법을 제공받고 싶어도, 제가 있던 곳에선 그냥 교과서 잘 보고 자습 잘하면 된다고만 해서 늘 혼자 분투하며 고민했어요. 그런데 서울에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쉽게 되죠?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에 집중하면 되는지 체계적으로 코치받을 수 있는 기회가 지방에는 너무 없어요.”

이런 기회의 차이는 대학 입학 후에도 이어진다. 당장 수능 이후 최대 관문인 취업 문제만 보더라도, 지방대생에게는 취업설명회 기회조차 드물게 주어진다. 학생이 무언가를 시도해보려 하지만 지침서 찾기도 쉽지 않다. 지방대 학생들은 인턴십을 해보려 해도 서울로 올라와야 그 기회가 주어진다. 상경부터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 스터디를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서울 상위권 대학 재학생들은 취업 지원 부서에 가서 현직에 있는 동문 선배의 연락처를 얻을 수 있다. 학벌주의는 끝났다지만 지방 학생이 처한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벌써 두 번째, 겨울방학에 이어 여름방학에도 수업을 들으러 상경한 한 남매가 있다. 서울 고모 집에 머물며 학원 뺑뺑이를 도느라 꽤 지쳐 보였다. 이들의 고생을 보상해주고자 열심히 가르치지만, 솔직히 고교 수준의 학습 내용은 어딜 가도 배우는 게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학생 처지에서는 공교육 현장에서 목마름이 더 크다. 학생들은 수업 후 교사나 주위 친구들을 통해 개인차를 확인하고 극복하기를 기대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학생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일은 철저히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적을수록 학생들은 공교육 제도 밖에서 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런 기회마저 박탈당하면 맞지 않는 수업에 자신을 욱여넣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방법이 없는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게 된다. 학원 강의를 듣기 위해 두 번째 상경한 남매에게 “굳이 서울 올 거까지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 한마디로 잃게 될 기회가 이들의 미래를 제약하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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