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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왜 천만 관객에 집착할까

극장가 최대 성수기가 <군함도> 논란과 함께 시작됐다. 매년 반복되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한국 영화 시장은 언제부터, 왜 ‘1000만 관객’에 집착하게 됐을까.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7년 08월 16일 수요일 제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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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서 이른바 ‘7말8초’라고 부르는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는 극장가 최대 성수기다. 이 기간에 흥행 1위를 거머쥐는 영화가 대개는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 된다. 2016년 ‘7말8초’에 극장을 찾은 관객은 1870만명. 지난해 승자는 <부산행>(NEW 배급)이었다.

올해도 사활을 건 승부가 펼쳐졌다. 포문을 연 영화는 7월26일 개봉한 <군함도>였다. <군함도>가 개봉 첫날 확보한 스크린은 2027개. 2016년 기준 전국 영화 상영관은 총 2575개로 <군함도> 상영관이 전체 상영관의 80%를 차지했다. 자연스럽게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붙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매년 지겹도록 반복되는 논란이고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문제다.

질문을 바꿔보자. 한국 영화 시장은 왜 ‘1000만 관객’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대체 언제부터 1000만명이 보는 영화가 이렇게 당연하고 흔한 것이 됐을까. 왜 매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영화 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PIC)가 제공하는 역대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1000만 관객을 기록한 한국 영화는 현재까지 모두 14편이다(위 표 참조). 2010년대 이전에 1000만 관객 영화는 곧잘 ‘신이 내린 선물’에 비유되곤 했다. 사실상 주먹구구로 굴러가는 시장이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2004년 5월부터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구축되면서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시장은 1000만 영화를 ‘기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1000만 영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현재까지 ‘검증’된 조건은 스크린 수 확보와 마케팅 비용 두 가지다. 영화는 강력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시장이다. 최대한 많은 스크린에서 동시 상영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만 하면 비용 증가 없이(제작비는 관객 1명이 보든 1000만명이 보든 동일하다) 순이익이 쌓인다. 그래서 ‘될 것 같은 영화’라고 판단할수록 스크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KOPIC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상업영화 개봉작의 평균 제작비는 약 53억원이었는데, 이 중 30%인 16억원 정도가 마케팅비로 쓰였다. <박스오피스 경제학>(어크로스, 2016)을 쓴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어떤 산업에서 이 정도 마케팅비를 쓴다고 하면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 텐데 여기에 영화 산업의 특수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군함도> 역시 총제작비 약 280억원 중 60억원을 마케팅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사이클이 매우 짧은 상품이다. 평균 상영일은 52일로, 이 기간에 매출 60∼70%가 발생한다. 이때 성과에 따라 IPTV 등 2차 판권 시장 가격도 정해진다. 영화계에는 ‘일주일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라는 통설이 일반적이다. 이 주기는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길게는 몇 년간 수십억원을 투자해 만든 작품의 운명이 2∼3일 안에 결정 난다. 개봉 전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영화가 ‘입소문’에 큰 영향을 받는 네트워크 상품이라는 점도 마케팅 비용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필수재가 아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이때 마케팅 전략은 영화를 ‘안 보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맞춰진다. ‘1000만 영화’의 내용이 ‘고만고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대한 많은 관객을 동원하려면 여러 연령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내용이어야 하고, 이때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코드가 ‘국뽕’이라 손가락질당하기도 하는 애국심이다.

때로는 호평보다 악평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을 키운다. 아직까지는 영화 티켓값이 다른 여가활동 비용에 비해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제작사가 아무리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 해도 티켓 가격을 높이거나 낮출 수는 없다. 결국 제작사가 사용 가능한 전략은 ‘개봉 시기 조정’밖에 없다. 대작일수록 성수기를 노리기 마련이다.

영비법 개정으로 독과점 해결할 수 있을까

ⓒ김흥구
영화 <군함도>는 개봉 첫날 202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진은 7월31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모습.

드라마나 음악 같은 여타 문화 콘텐츠와 달리 영화 산업은 여전히 ‘내수 중심’이다. 한국 영화 시장의 국내 영화 점유율은 53%로 높은데, 해외 매출은 드라마나 음악에 비해 적은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자 처지에서도 수출을 염두에 두기보다 내수시장에 맞춤한 상품을 내놓게 된다. 이런 영화들은 수출이 어렵다 보니 국내에서 어떻게든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윤지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국 영화 시장은 전체 매출의 80%가 20%의 영화에서 발생하는, ‘파레토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이다.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는 추세인데, 2016년의 경우 8.7%의 영화가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발생시켰다. 영화 편수가 많아져도 그에 비례해서 관객 수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극장 처지에서는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결과 관객은 특정 영화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독립·예술영화뿐만 아니라 300만∼600만 관객의 이른바 ‘중박 영화’도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영화는 대표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이다. 2015년 현재 한국 영화 투자수익률은 5% 미만이다. 결국 자원은 투자비를 ‘거의 확실하게’ 회수할 수 있는 대작 영화로 몰린다. 제작사·투자사·배급사·영화관 등이 각자 합리적 행위를 한 결과로 영화 시장이 왜곡되었다.

이 같은 ‘시장 실패’를 스크린 독과점이라고 부른다. 다양성이 핵심인 문화 산업, 그중에서도 비용 압박이 심한 영화 산업은 경제 논리로만 굴러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공공 차원의 지원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문화경제학의 핵심 가르침이다. ‘대기업은 배급과 상영을 겸할 수 없고, 멀티플렉스는 스크린 상한제를 시행해야 하며, 예술·독립영화 쿼터제를 도입’하는 쪽으로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까닭이다.

물론 단순하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은 예술·독립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객석 점유율이 낮다. ‘취향 시장’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2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 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영화는 아직까지 산업화가 진행 중인 분야인 셈이다. 김 연구위원은 “어느 정도 제재는 필요하지만, 제재 위주의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투자가 되지 않아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영화 산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슷한 문제 앞에 직면해 있다. 어디에 칼을 댈 것인가. 어디에 칼을 대더라도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없는 어느 지점에 한국 영화 시장이 위태롭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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