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지음 개마고원 펴냄
‘희망’ 대신에 ‘명랑’을 말하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펴냄)이 출간됐다. 지난해 여름에 나온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해 그가 쏟아낸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자 대단원을 장식하는 책이다. “하나의 불행이 끝나면 더 큰 불행이 온다”라는 저자의 상황 인식을 전제로 썼기에 이 시리즈에는 ‘공포 경제학’이란 별칭도 붙었다. 요즘 같아선 실감나는 공포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 대통령’ 이명박의 재임 기간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이다. 그리고 만약 일본이 1990년대에 겪은 것과 같은 장기 불황을 겪는다면 한국이 파시즘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도 빈부 격차는 점점 벌어지면서 주거공간에서부터 교육환경에 이르기까지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은 차츰 공고하게 분리돼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듯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반화하면서 탄생하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레비아탄’, 곧 ‘괴물’이다. 이 괴물의 다른 이름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괴물의 탄생은 2007년 ‘경제’라는 구호와 함께 국민이 이명박을 선택함으로써 빚어진 일이 아니다. 우석훈의 진단으로는 2004년 혹은 2005년 사이에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한국경제 자체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이 오가던 시기에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경제’라는 한마디밖에 모르는 좀비로 변해감과 동시에 한국의 국민경제는 죽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늦게라도 돌이키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도래할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는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국가이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MB파시즘’이다.

‘제3 부문’ 빨리 만들고 강화해야

이제라도 정상적인 국가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석훈은 비록 상황은 절박하지만 그래도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좁은 길”이 살짝 열려 있다며 명랑하게 충고해준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의 요체는 ‘제3 부문’이다. 경제학에서 제1 부문이란 기업을 말한다. 그리고 제2 부문이 가리키는 건 정부 혹은 국가라는 공공 부문이다. 저자의 도식에 따르면, 이 제2 부문이 제1 부문을 자기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사회주의(혹은 ‘국가독점 자본주의’)이며, 거꾸로 제1 부문이 오히려 정부를 장악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연합뉴스저자는 한국인이 경제만 아는 좀비로 변하면서 경제가 죽었다고 말한다. 위는 외환위기 당시 가게 모습.
흔히 한국 사회에서 좌파·우파라는 이념적 견해는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정해졌다. 하지만 ‘명랑 좌파’ 우석훈의 대안은 제3 부문이다. 이것은 국가나 대기업에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부문인데, 경제학에서도 잘 이론화돼 있지 않아 ‘사회적 경제’ ‘증여의 경제’ ‘연대의 경제’ 따위로 불린다. 경제학자로서 우석훈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사이의 선진국 국민경제란 제3 부문이 활성화돼 있는 국민경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이 제3 부문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 제3 부문을 형성하는 경로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종교기관 같은 전통적인 사회기관이 생활협동조합의 ‘구심점’이 되어 제 구실을 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에서 주로 그런 것처럼 대기업이 공적이면서 사회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혹은 독일의 경우처럼 정부가 일정한 구실을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제3 부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장기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경제, 그리고 국민경제의 생태학적 전환이 가능해지리라고 우석훈은 전망한다. 그러한 전망은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위대한 선택’을 통해서이다.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는 위대한 선택이란 국민이 경제에 대한 취향과 사회적 행동을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 수만큼 물려줄 99㎡짜리 아파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집이 없거나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진 사람의 생각과 선택,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기에 달려 있다.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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