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연쇄살인범이 동성애자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

콜린 아일랜드는 1993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이름을 떨쳐 역사에 남고자 하는 마음에 연쇄살인범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표적은 동성애자였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8월 15일 화요일 제517호
댓글 0

1993년 정초, 38세 콜린 아일랜드는 새해 결심을 했다.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겨우 열일곱 살 먹은 그의 어머니를 버렸다. 보호시설을 전전하면서 자란 그는 사소한 범죄들을 저지르며 어른이 되었다. 군 복무 후 절도나 강도, 협박과 같은 범죄를 계속해서 저질렀다. 버젓한 직업도 없었고 몇 차례에 걸친 동거와 결혼도 실패로 끝났다. 그는 가진 것도 살 곳도 없었다. 이런 그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는 연쇄살인범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일랜드는 모두 5명을 죽였는데 탐독하던 범죄 서적에서 5명을 죽인 경우 FBI에 의해 연쇄살인범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체포된 후 FBI는 이는 사실이 아니며 3명 이상을 살해한 경우 역시 연쇄살인범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밝혔다.

ⓒMail Online 갈무리
1993년 영국 경찰이 배포한 연쇄살인 용의자 콜린 아일랜드(아래)와 그의 수배 전단(위)).

그가 선택한 살해 대상은 피학 성향을 가진 동성애자였다. 그는 이들이 손쉬운 타깃이기 때문에 골랐다고 스스로 밝혔다. 동성애자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일회성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고 주변과 단절된 경우도 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피학 성향이 있는 사람은 신체 구속에 자발적으로 응한다. 더 나아가 그는 동성애자들이 줄줄이 죽임을 당하더라도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록그룹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죽은 게 1991년의 일이다. 세계적으로 1000만명이 인체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양성반응자이며, 에이즈가 25세부터 45세 사이 남성의 최대 사망원인이라고 알려졌던 시대. 말하자면 1990년 초반은 동성애자들에게 매우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아일랜드의 살인 방식은 늘 같았다. 그가 범행 대상을 물색한 런던 서북부의 동성애자 펍(pub·술집)은 성적 기호에 따라 색깔이 다른 손수건을 갖고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손쉽게 취향에 맞는 희생자를 고를 수 있었다.

1993년 3월, 그는 첫 번째 범죄 대상을 골랐다. 40대 중반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피터 워커였다. 워커는 HIV 양성 판정을 받고 마음을 수습하지 못하던 참이었다. 워커의 집으로 따라간 아일랜드는 그를 침대에 묶고 때린 후 죽여버렸다. 시체의 콧구멍과 입에 콘돔을 뭉쳐 쑤셔 넣고는 곰 인형 두 개를 성교하는 자세로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워커가 죽었다는 사실은 이틀이 지나도록 알려지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아일랜드는 대중지 <더 선(The Sun)>에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살인을 하겠다는 새해 결심을 했는데, 죽인 남자의 집에 개 두 마리를 가둬놓고 와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5월 말께, 아일랜드는 30대 후반인 사서 크리스토퍼 던을 같은 방식으로 죽였다. 경찰은 던의 죽음이 성적 유희 도중 벌어진 것이라고 추정했다. 경찰의 추정은 며칠 후 사망자의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자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두어 달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던의 사망을 연결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음 희생자는 30대 중반의 미국인 페리 브래들리 3세였다. 7월의 일이었다. 유력한 민주당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부유한 사업가였던 그는 동성애자임을 숨겼다. 브래들리는 이전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발가벗은 채 묶이고 목 졸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일랜드는 시신 위에 성적인 자세를 취한 플라스틱 인형을 올려놓았다. 브래들리의 시체가 발견된 지 며칠 후 아일랜드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그 미국인’을 죽였다며 현장의 단서로 어디 한번 범인을 찾아보라고 도발했다. 또 동성애자의 죽음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거냐고 말하고 다음 살인을 예고했다.

전화를 건 지 겨우 몇 시간 후, 아일랜드는 30대 초반의 앤드루 콜리어를 목 졸라 죽였다. 그의 고양이 역시 목 졸라 죽였다. 고양이의 꼬리와 콜리어 사체의 성기에 콘돔을 씌운 후, 고양이의 꼬리를 사체의 입에, 사체의 성기를 고양이의 입에 쑤셔 넣은 채로 두고 현장을 떠났다. 자기 지문이 하나 남았다는 걸 모른 채였다.

ⓒMirror 갈무리

ⓒMirror 갈무리
콜린 아일랜드에게 살해당한 두 번째 희생자 크리스토퍼 던(위)과 세 번째 희생자 페리 브래들리 3세(아래).
일주일 후인 7월15일, 아일랜드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희생자를 골랐다. 40대 초반의 요리사 이매뉴얼 스피테리였다. 경찰은 이튿날 아일랜드가 전화할 때까지 시신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경찰은 그제야 연쇄살인범이 활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대규모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마지막 희생자가 범인과 기차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CCTV 영상을 발견한 경찰은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동성애자의 제보를 꺼리게 만든 ‘스패너 판결’

아일랜드는 영상이 공개된 지 나흘 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스피테리와 콜리어의 살인범으로 기소된 그는 곧 다섯 건의 살인을 인정했다. 그는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 다섯 번을 선고받았다.

아일랜드가 잇달아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잡히지 않은 건 동성애자를 타깃으로 삼은 그의 의도가 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건 초기 경찰은 문제의 펍에 드나들던 동성애자들로부터 아무런 제보를 받지 못했다. 그해 초에 있었던 이른바 스패너 판결(R v Brown 판결) 때문이었다. 스패너 판결은 동성애 혐오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987년 맨체스터 경찰은 비디오 하나를 입수했다. 동성애적인 가학 및 고문 행위가 벌어진 끝에 사람이 죽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살해당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모든 행위는 성인인 당사자들의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들을 상해 혐의로, 피해자들을 공범 및 방조로 기소했다. 16명이 형사 처벌되었다. 이성애자들이 가학적 성행위를 하다 상해가 발생한 경우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대개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점과 매우 대조적이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던 게 1993년 초입의 일이다. 가학 성행위를 한 경험이 있는 동성애자들은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자기들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스스로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던 남자가 ‘유명해지기 위해서’ 다른 취약한 위치의 사람들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겨우 넉 달 만에 다섯 명이나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죽여버릴 수 있었던 시대. 당시보다 인권 의식은 매우 높아졌다지만 HIV 감염이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다는 것이 의학적 상식이 된 이 시대에도 한국의 대선 후보는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라며 버젓이 선동을 했다. 우리는 그 때보다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