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드라마 〈이산〉을 연출하고 있는 이병훈 PD.
“지난해 이산이라는 제목을 쓰겠다고 할 때 어렵다고 반발이 컸는데, 이제는 너도나도 이산이네?” 지난 10월17일 용인 문화동산. 고작 열흘을 앞서가는 촬영 일정 속에서 밤늦도록 큐 사인을 외치던 드라마 〈이산〉의 이병훈 PD는, 최근 출간된 책의 리스트를 일러주자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정조를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과거 〈한중록〉에서 정조를 등장시킨 적이 있으나 그때 주인공은 홍국영이었다. 요즘 그는 정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우선 그는 정조가 즉위하기 전, 그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야 했던 영조에게 눈을 돌렸다. ‘아들을 죽인 영조는 이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영조로부터 정조는 어떤 훈련을 받았을까. 비명에 죽은 아비의 운명을 보고, 아비를 죽인 할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는 정조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지아비의 죽음을 방치한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이산의 두 친구, 대수와 송연을 배치한 것도 지극히 이병훈다운 설정이다. 씩씩한 새침떼기 송연은 도화서에서 일을 하고 있고, 좌충우돌 혈기방장한 대수는 세손의 친위대에 배속이 되었다가 후일 정조가 설치한 장용영에서 활약을 펼친다. 도화서와 장용영은, 규장각과 함께 정조의 치세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 기관들이다. 그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위해 왕의 친구 두 사람을 두 기관에 각각 배치한 것이다.

여인들의 활약을 그리는 것도 이병훈답다. 그동안 영조가 지극히 사랑했던 딸에 그쳤던 화완옹주는, 노론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료 못지않은 노회한 정치가로 등장한다. 혜경궁 홍씨는, 왕비가 되지 못한 비운의 궁중 여인과 지아비의 죽음을 방조한 노론계의 대리인이라는, 극단으로 엇갈리는 평가의 중간 어디메쯤 자리를 잡게 했다. 가문이냐, 지아비냐의 갈림길에서는 노론계  가문을 택했지만, 그 선택이 아들이나마 지키려했던 모성의 발로였다고 그리는 것이다. 눈물의 기록인 〈한중록〉이, 혜경궁 홍씨가 말년에 알리바이용으로 쓴 것일지 모른다는 삐딱한 관점이 대중적인 공중파 사극에 반영되는 것은 충분히 흥미롭다.   

이제는 유행이 되다시피 한 정조 독살설을 어떻게 소화할까. 결말은 열려 있다. 이 PD는 “나도 모른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정순왕후나 노론 세력의 행태가 정조를 독살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면 그렇게, 아니라면 다른 방식을 택하게 되지 않겠나”라고 눙쳤다.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